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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바람 May 20. 2024

'산목련 꽃'향기의 달짝지근한 기억

'산목련 꽃'은 우리나라 자생종으로 '산에서 자라는 목련 꽃'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함박꽃'이라고도 하며, 꽃이 먼저 피는 목련과 달리, 파란 잎이 먼저 나고 하얀 꽃이 핀다. 북한에서는 '목란'이라고 부르는데, 국화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등ㆍ하굣길에 마주치는 풍경은 건물과 도로에 온통 석탄가루가 쌓여, 시커멓고 우중충 하기만 했다. 읍내 새카만 물이 흐르는 개울 주변으로 허름한 주택과 상가건물들이 모여 중심가를 이루고 있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지역이라 바람도 자주 불었다. 바닥에 쌓인 검은흙먼지가 회오리바람에 하늘로 날아 흩어지면, 황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시외버스를 타고 등ㆍ하교를 했다. 낙후된 지역인 데다 정주의식이 없으니, 생활환경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지역이었다. 비포장이나 다름없게 파인 시멘트 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만원 버스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천정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움켜잡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야말로 아침, 저녁으로 '디스코 팡팡'에 올라선 것과 다름없었다. 그나마, 막차라도 놓치면 한밤 중에 20리 언덕길을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읍내에 술집과 다방은 번성했으나, 학생들이 갈만한 곳은 없었다. 심지어 도서관이나 독서실도 없었다.(고등학교 졸업 후 외지에 나갔을 때 도서관과 독서실을 처음 보았다) 자전거 타는 법을 친구한테 빌려서 배웠다. 도로가 전부 누더기처럼 파인 곳이 많으니, 운동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탈 수밖에 없었다.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면 얼마나 신이 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고졸업반'이라는 영화가 인기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공지천과 강변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보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빨리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이 지겨운 동네를 벗어 나리라" 졸업할 날만 기다리며 하교를 하던 초여름의 어느 날, 달리는 버스의 열린 창문으로 달짝지근한 '산목련 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우중충하던 나의 기분을 일시에 날려 버리는 것 같았다.



휴일이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친구들과 산에 올라가서 놀 수밖에 없었다. 산목련 나무 주변으로 산을 오르다가 쉬면서 거친 숨을 몰아쉴 때는 코로 들어오는 달짝지근한 꽃 향기에 취하는 것 같았다.



여름에도 무더운 날이 며칠 안되고 함백산 아래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함백산에 자주 놀러 갔었다. 삼각형 모양으로 솟아오른 주봉아래 만항재 주변으로 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쑥부쟁이와 구절초의 보라색, 하얀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풍경은 유럽에 드넓은 초원의 사진을 실물로 옮겨놓은 듯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쑥부쟁이의 꽃말이 "기다림, 그리움"이라고 하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달래 주느라 만개한 것은 아니었을까?




황량하고 삭막한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던 내 마음에 위안이 되는 것은 산목련 꽃 향기와 쑥부쟁이가 흐드러진 초원의 아름다움이었다.  전부터는 만항재 야생화의 아름다운 풍경이 알려져 매년 여름이면 '야생화 축제'가 개최된다고 한다.



따나고만 싶었던 곳이었는데, 정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는데, 인근에 볼일이 있으면 한 번씩 발길을 돌려 둘러보게 된다. 이것이 수구초심의 마음인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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