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있음에

by 박순영

하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그가 죽다니...그것도 졸음운전으로.

그녀는 포털에 뜬 그의 부고기사를 보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그래도 기사 하단에 장례일정이며 장지까지 표기돼있는걸 보면 정말 죽었나보다,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조문을 가나마나를 놓고 한참을 고민한다. 그러다 유리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온것도 모른다.

"저기..라떼 한잔"하는 소리에 뒤늦게 고개를 들어 그녀는 손님을 본다.

"네. 자리에 계심 제가 갖다 드릴게요"라고 하고는 그녀가 들어간곳은 주방이 아니라 주방에 딸린 작은 방이었다.



그녀가 그로인해 막대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입고 오갈 데가 없을때 당시 이 까페를 하던 친구 지원이 자기 일을 도우며 지내라던 그 방이다.

그녀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눕는다. 그러나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서성이는 길모퉁이 나그네 같다.



현기준.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모 신문사에서 운영하던 창작 아카데미에 등록을 한것이 그를 만나게 했고 강의가 끝나고 몇번의 뒷풀이를 계기로 둘은 가까워졌으며 봄비치곤 사나운 비가 내리던 어느날밤, 둘은 기준의 자취방에서 한몸이 되었다.

"사랑해?"라고 물으면 "유치하게 뭐 그런걸 물어"라며 그는 모로 돌아눕곤 하였다.

명색이 작가 와이프가 될거면 자기도 작가 언저리라도 가자,라는 심정으로 그녀는 창작에 몰두했고 그러다 모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해 당선없는 가작으로 덜커덕 등단이란걸 하게 되었다.

"니 글은 글이 아냐"라고 싸늘한 반응을 보였지만 기준도 내심 좋았는지 그날밤, 치킨 두마리를 사들고 그녀의 원룸을 찾아왔다.


기준은 "이번책 판권만 팔리면.."이라며 에둘러 그녀에게 청혼을 하였고 그녀는 오랜 시간 이미 그의 아내라고 여기며 그를 대했기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가 뒤늦게 대학원을 가겠다고 했을때 아무말 없이 그 학비를 대주었고 차를 바꿔주었고 널따란 오피스텔로 옮겨주기까지 하였다. 자신은 그야말로 낮에는 공장에 다니고 밤에는 글을 쓰면서...

기준은 대학원 2학기때 이미 학부 강의를 맡았고 따르는 여학생도 꽤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결국은 하영의 연적으로 발전할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기준이 하영을 안고 잠들어있는 시각에도 거리낌 없이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고 하였고 기준은 처음 몇번은 거절을 하더니 급기야는 붙잡는 하영을 뿌리치고 그녀를 만나러 나갔다.

뒤에 알게 된 바로, 그녀는 기준이 적을 두고 있던 문학과 s교수의 차녀였다.

"나도 빽이라는게 필요했어"라며 기준은 울며 붙드는 하영에게 이렇게 변명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결국 그는 교수 딸과 약혼에 이르렀고 그날 하영은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뒤늦게 그런 그녀를 발견한 여고동창 지원이 아니었더라면 그녀는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것이다..


그런 기준이 죽었다고 한다...

그 교수딸과는 결혼직전에 모종의 일로 틀어져버리고 해서 학위를 마치는대로 금방 조교수로 발령이 날줄 알았던 기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 이후 그는 다시 하영에게 연락을 해왔지만 하영은 냉담하게 거절의사를 밝혔다.

기준은 여기저기 시간강의와 강연을 다니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눈치였다. 그러다보니 자신에게 든든한 울타리를 제공해주었던 하영이 그리울만도 했다

하영은 그렇게 그와 헤어진 후 간간이 그의 신간 기사를 보거나 우울하고 그가 그리울땐 포털에 그의 이름 석자를 쳐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10년이다...그리고 그가 이젠 죽은 것이다.

그에 대한 아픈기억으로 어서 그가 죽었으면 ,하고 바란적도 사실 여러번이다. 그리되면 지상에 더이상 없는 이를 그리워할 필요도 없어지겠지 생각하였다.



고민끝에 그녀는 하루 까페문을 닫고 그의 조문을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검은색 정장 원피스를 갖춰입고 밖으로 나온다 . 밖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도 여전히 겨울냉기가 묻어나 사람을 심란하게 만드는 날씨다. 그런채로 그녀는 핸들을 잡는다.

그리고는 10년만에 영정사진 속 그와 마주한다. 그리도 자신을 갉아먹은 그 남자 기준은 뭐가 좋은지 활짝 웃고 있다.

"이제 좀 편해?"라고 그에게 묻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그때 "고맙습니다"라는 어떤 여자의 음성이 옆에서 들려온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하영은 본능적으로 그녀가 '기준의 아내' 정도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두 여자는 가볍게 맞절을 한다. 전혀 예상을 못한건 아니지만 아내가, 아니, 여자가 있었다는 생각이 그녀를 또다시 상실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하영이 서둘러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는데, 조금전 맞절을 한 그녀가 뒤따라 오면서, "혹시 이하영씨?"라고 뒤늦게 묻는다.


"오빠 컴퓨터를 정리하다 유서를 발견했어요"라는 말에 하영은 정신이 아찔하다..그렇다면 자살이었다는 말인데...

"오빠한테, 아내분은 없었나요?" 결국 그녀는 묻게 된다.

"아뇨...오빠는 하영씨만...아니, 언니외에 다른 여자는 없었어요 자신의 오판으로 잃어버린 여자가 있다며 곧잘 눈물을 흘렸어요.."

그말에 하영은 아득해진다. 자신을 무참히 버리고 권력을 좇던 그의 마음에 자기만이 존재했다는게 믿어지지를 않는다.

"장례 끝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오빠 말대로 해주고 싶어요.."


그렇게 장례가 끝나고 삼우제까지 끝난 다음 기숙이라는 기준의 그 여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직까지 간간이 들어오는 오빠 인세가 있어요 그걸 언니한테 주라는..."하며 기숙은 기준이 남긴 유서를 보여준다. 그걸 읽어내려가는 순간 하영의 가슴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진다...

이렇게 갈거면 한번만 더 내게 매달렸어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까페를 뛰쳐나온다.

봄은 올듯 말듯하면서도 가까이 와있다.

비록 출력된 유서나마 그가 쓴 문장을 곱씹으며 길을 건너던 그녀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던 suv에 치는광경을 목격한 행인들은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달려온 경찰에게 순전히 운전자 과실이라고 증언해주었다...


기숙은 오빠 기준의 바로 옆에 하영을 안치해주기로 한다. 그렇게라도 하늘에서 못다한 사랑을 이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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