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는 어렴풋이 그녀가 기억이 난다. 2,3년전, 자신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던게 떠오른다.
그때 그녀는, 프랑스남자와 결혼할거 같다며 과외를 받고 싶다고 했고 경수는 자신의 조교인 상희를 추천하고 전화번호까지 주었다. 그러나 이후 그녀 장미로부터는 아무 연락도 없어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석사과정임에도 학부 강의를 주었다. 그일로 둘사이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도 돌었지만 그런것에 괘념치 않았고 이후 상희는 박사과정을 프랑스로 떠나면서 소문은 자연히 사그라들었다.
그녀 장미...
이름부터가 특이해 기억속에 남아있는건지도 모른다. 유장미.라고 그때 메일에서 이름을 밝혔던 그녀가 세월을 뛰어넘어 또다시 이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어요..프랑스인과 결혼직전까지 갔다가 깨지는 바람에.."라며 그녀는 사과메일을 보내왔다. 사과하는 이에게 뭐라 할수도 없고 어쨌든 결혼이 안됐다는 것이 안쓰러워 "일이 그렇게 된거군요. 좋은분 나타나겠죠"라고 간략히 답장을 써서 보냈다.
그리고는 오후강의로 잡혀있는 보들레르 강의를 점검한다.
경수는 박사후 과정을 하기 위해 제자인 상희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보르도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채비를 거의 마쳐갈 즈음, 이번에는 장미가 전화를 걸어와 ,뵙고 자신이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한다. 다 지난, 그것도 한참 전 일로 장미의 밝목을 잡은거 같아 그는 정중히 거절을 하였지만 장미도 끈질기게 나와 결국 둘은 경수의 출국 이틀전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가 장미와 약속한 학교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그녀쪽에서 단번에 그를 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게 보인다.
"오기 전에 포털에서 교수님 검색해봤어요"라며 그녀가 살짝 보조개를 파며 웃는다. 그녀는 조용한 타입의 미인이었다. 첫눈에 경수는 그녀에게 끌렸지만 이틀후면 프랑스로 출국해야 했고 그외에도 교수신분이라는게 여러가지를 제약하는 부분도 있어 그는 최대한 조심하기로 한다. 그러고 있는데,
"결혼은 얼그러졌어도 불어는 하고 싶어서 그동안 조금 배웠어요"라며 그녀가 또다시 보조개를 판다.
"남자는 한국계 프랑스인이었어요. 어릴때 프랑스로 입양된..."
"그렇군요...근데 왜, 결혼직전에"
"아무리 피는 한국인이어도 사고방식은 완전히 서구적이었어요. 그때, 제가 근무시간이라 주민센터에 가서 제 서류좀 대신 떼어달라고 했더니, 니 일을 왜 나한테 시키냐며 벌컥 화를 냈어요"
"아...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서구 사대주의가 만연한 이땅의 사람들이 막상 그들을 가까이서 접하면 겪게 되는 흔한 케이스중 하나였다. 그만큼 서구인들이 한국인, 아니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인에 대한 시각이란게 어느정돈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해서, 국제결혼이 곧잘 파경을 맞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파스타 접시가 말끔히 비워졌다. 먼발치에서 그 둘을 지켜본 직원이 커피 두잔과 티라미수 케익을 날라온다.
"bon voyage, monsieur"라며 그녀는 짧지만 유창하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한다. 불어에 소질이 있구나 이 여자...
.
그날 술을 하지 않아 그는 장미의 오피스텔까지 데려다 주기로 마음을 먹는다. 저녁도 얻어먹었으니 그정도는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그녀가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보문동 그녀의 오피스텔로 차를 몰았다.
오피스텔 건물은 신축인지 꽤 높아보였고 깨끗하고 모던한 느낌을 주었다. 이런 데 살 정도면...하다 그는고개를 내젓는다. 지금 자신에게는 프랑스에서의 박사후과정 이상 중요한게 있을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고마웠습니다. 그럼 다음에"하며 장미가 차에서 내리려는순간, 그는 자신의 생각돠는 전혀 다른 엉뚱한 말을 하고만다. "혹시 집에 맥주있으심..."
그말에 장미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본다. "운전도 하셔야 하고 곧 출국도"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하고는 서둘러 차에서 내려 옆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그런 그의 행동에 당황한 장미가 "그럼, 잠깐 들어왔다 가실래요?"라고 제안한다.
그녀의 오피스텔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장미를 격하게 끌어안는다. 여자를 안아본 지 한참 됐다는 생각에 그는 갈급하게 그녀를 탐하고 그녀 안으로 들어간다. 장미는 처음엔 저항하는듯 하더니 이내 체념한듯 그를 받아 들인다.
그렇게 둘의 정사가 끝날 즈음 둘은 담배 한개비를 나눠피운다. 여기 금연 아닌가? 하자, 다들 피워요 그냥,하면서 그녀가 담배를 바닥에 밟아 끈다.
그러자 그가 말한다 "나 기다려 줄건가?"
그말에 장미가 뚫어져라 그를 쳐다본다. 그러더니 "가요 그만 , 늦었어"라며 그의 옷을 입혀준다. 그러는 그녀를 그는 한번 더 안았고 밤이 깊어서야 그는 장미의 오피스텔을 나선다.
그가 수하물 등록을 한뒤 탑승 게이트로 가는데 "이경수씬가요?"라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지?하고 바라보자 첫눈에도 ''형사'로 보이는 골격이 큰 남자 둘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그 눈빛에서 그는 모든걸 읽어냈다. 자신의 과오를. 그녀는 처음엔 저항했어도 결과적으로는 그를 받아들였고 오피스텔 앞으로 배웅까지 나왔다. 그리고는 신고를 한것이다. 강간을 당했다고...
프랑스에 도착해 포닥 과정에 어느정도 적응을 하게 되면 제일먼저 장미를 부를 생각이었고 그녀와 동거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포닥과정을 마치는대로 그녀에게 청혼할 생각이었는데... 그의 머릿속 스케줄이 한순간에 뒤엉켜버린다.
두 남자중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가 그가 저항 않고 내민 두손에 수갑을 채운다. 게이트의 승객들이 무슨일인가싶어 그를 쳐다보고 , 그렇게 경수는 경찰에 이끌려 공항로비를 나온다.. 그 와중에도 혹시나 ,하고 그는 장미를 찾아보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