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야반도주

by 박순영

"왜 아이를 안 맡았나요?

3대독자라는 민기가 그렇게 은애에게 물어온다.

이혼할때 아이를 맡지 않은걸 탓하는 남자는 처음인지라 조금은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하였다.

"아이를 좋아하시나요?"

"부부야 헤어지면 남이지만 아이는 아니잖아요..."라며 그가 남은 맥주를 비운다.



그날밤, 은애의 오피스텔까지 바래단 준 그는 자정이 되도로 갈 생각을 안한다.

"집에서 어머니 기다리실텐데"라고 말하다 은애는 쿡 웃는다. 나이 마흔인 남자에게 기다리는 노모를 생각해서 얼른 가라고 하는 자신이 우습다.

그는 코를 찡긋하더니 은애의 얼굴을 끌어다 입을 맞춘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잘 살아봐요" 라고. 그말에 은애의 두눈이 휘둥그레진다.. 세번 만나고 청혼을 받은 것이다.



전남편 길섭이 전화를 걸어와 한번 보고 싶다고 한다. 꼭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은애는 그에게 최소한 재혼은 알려야 할거 같아서 안그래도 연락을 한번 해야겠다고 여기던 터라 그를 만나기로 하였다.

그렇게 은애의 회사 근처 까페에서 둘은 오랜만에 마주한다.

"완인?"

아무래도 제일 궁금한건 아들 완이의 근황이었다. 면접권이 은애에게 있었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클때까지는 안보기로 하여 완이를 보지 않고 지내왔다. 아직 어린 완이가 정서적 혼란을 느낄까봐.

길섭의 계속되는 외도를 견디지 못하고 헤어졌고 그래서 별다른 미련도 없었지만 완이만은 은애가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아들이 귀한집이라 굳이 자신이 키우겠다는 그의 고집을 꺾을수가 없었고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윤택한 아버지 밑에서 크는게 완이에게도 좋을거 같아 그녀는 아이를 양보했다. .


들어보니 길섭도 재혼을 코앞에 두고 있었고 추측컨대 상대여자가 완이를 원치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은애는 완이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하자그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듯한 훌가분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걸 보면 자신과 민기가 연은 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남편의 아이인데도 자기가 키우고 싶다는 민기, 때맞춰 아이를 데려가라는 길섭...이모든것이 민기와의 결혼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끔 하였다..

길섭과 은애는 조금은 빈말로 또 조금은 진심으로 서로의 재혼을 축복해주며 헤어졌다.



민기는 완이를 친자식처럼 살갑게 대했다. 그러자 완이도 점자 새아빠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눈치였다. 그렇게 신혼 3개울이 지나자 민기는 슬쪽, 혼자사는 노모를 모셔오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그말에 은애는 '완이와 시모를 트레이드하자는 거였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처음으로 민기가 용의주도한 사람임을 알아차리는 순간이었다.



시모 황은 티가 나게 완이를 거북해하고 완이가 다가갈라치면 노골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런 완이를 보면서 은애는 마음이 너무도 아파, 차라리 이 결혼을 깨버릴까,하는 생각까지 하영으나 그럴즈음 입덧이 시작되었다.

"우리, 애 낳음 ''윤' 아때? 완이도 외자니.."

민기는 은애 뱃속 아이 윤에게 지나칠정도의 집착과 애정을 보였고 은애는 그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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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 황은 자신의 팔순을 외며느리가 제대로 치르지 않았따고 노골적으로 타박을 하였다. 하필 그때 은애는 제주 출장이 잡혀서 시모의 팔순잔치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일 이후로 빈기의 태도도 냉담하게 변해갔고 별것도 아닌걸 트집 잡아 그녀를 괴롭혔다. 그리고 완이를 대하는 태도까지 변해버려 그녀는 몇번이나 뱃속 아이를 지우고 이혼할 생각을 하였지만 병원 앞에만 가면 윤이 힘차게 발을 차는게 느껴져 그대로 돌아오곤 하였따.

그러던 어느날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은애가 주방정리를 하고 있는데 민기가 전화를 걸어온다. 갑자기 출장이 잡혔다며 속옷이며 세면도구, 편한 옷 몇가지를 챙겨 사무실로 오라고 한다.

그정도는 자신이 할수도 있지 않은가,하면서도 그녀는 그의 출장짐을 싸서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자신의 경차에 올라 10여분쯤 달렸을때 산통이 시작되는걸 느꼈다. 어쩌나.....


"여자가 얼마나 준비성이 없으면 길에서 애를 나!"라며 전화너머 민기는 타박을 해댄다. 고생햇다, 수고했다,한마디 없이. 이런 남자인줄 알았으면 그 어떤 말로 자신을 유혹했어도 넘어가는게 아니었는데, 하는 뒤늦은 후회가 그녀를 괴롭힌다. 그러고 있는데, "아이 누구 닮았어?"라고 민기가 물었다. "누군...당신이지"라고 하자 "틀림없이 내 자식이지?"라는 황당한 말을 해온다.. 그말에 그녀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다..."혹시 그자식, 당신 전남편 애는 아니구?"

이런 말을 하는 배경엔 은애와 전남편 길섭이 계속 만나왔을거라는 전제가 깔려있으므로 그녀는 순간 민기가 망상장애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자기 새끼를 낳았다고 민기가 아기옷과 기저귀를 두손 가득 사들고 병실에 들어섰을때 침대는 비어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게 아닌 말끔히 정돈돼있는 침대를 바라보며 그는 뭔가 일이 심상찮게 돌아간다 생각하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녀를 잡아야 한다...



은애는 이제 갓 출산한 산모의 몸으로 , 자꾸만 꺼져가는 몸으로 , 온힘을 다해 가속페달을 밟아댄다. 뒷자리의 완은 방금 태어난 동생 윤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고 만져보곤 한다. 그런 두 아이를 룸미러로 바라보던 은애는 어서 빨리 부산에 닿고 싶다. 주름잡힌 노모의 손을 꼭 잡고 그동안 내내 참아온 울음을 한꺼번에 다 터뜨리고싶다. 힘들었다고...너무나 괴로운 시간이었다고 말하며 노모의 품에 안겨 한없이 울고 싶다...


겨울해변.jpeg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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