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부모님과 휴가철에 변산 반도를 간 적이 있다.
길고 멀미나는 여정이었고 가서도 더위를 먹어서 갔다 온 다음에도 며칠 온 식구가 앓아누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바닷물이 대문앞까지 들어오는 작은 여관에 머물렀다.
아침에 눈뜨면 바로 코앞까지 들어와있는 바닷물이 어린 내 눈엔 너무나 신기해서 노란 슬리퍼를 짝짝 끌며 아침도 거른채 바다로 나가곤 하였다.
검은 폐타이어 튜브를 빌려 하루종일 바다에서 놀다보면
얼굴은 새까매지고 이튿날이면 따끔거리고 아팠지만 그래도 그 여름날은 좋기만 하였다.
그렇게 언니와 나란히 바다놀이를 끝낼때쯤이면 석양이 바다위에 떨어지고 그러면 여관으로 돌아가
엄마가 준비해놓은 조촐한 조녁을 먹고는 대강 씻은 뒤 잠에 골아 떨어졌다.
지금은 부모님 모두 안계시고 이후 변산을 다시 찾은 일은 없지만
그래도 '변산'하면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도 다 이 시점의 기억때문이리라...
그런데 나는 솔직히 제철의 바다보다는 철지난 바다를 더 선호한다.
그래서 대학때도 단짝 친구와 한 겨울에 경포대를 가기도 하였다 .
겨울바다의 낭만은 여름과는 또 달라, 감히 범접할수 없는 위없같은게 묻어난다.
그렇게 바다를 갔다 오면 한동안은 도시에서도 파도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기념품으로 사온 소라껍질에서는 실제로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번 겨울도 바다에 가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마 힘들지 싶다.
그래도 사람일은 장담하는게 아니어서, 훌쩍 동해라도 다녀올지 모른다.
그러고보니 소원해진 남친과 속초에 가기로 했던 기억이 난다.
가서 1박을 하고 회며 낚시를 간단히 하고 오자던...
연애란 이렇게 어떤 식으로든 '기억의 통증'을 남긴다.
바다 이야기를 쓰다보니 새봄에는 반드시 그곳에 다녀와야 할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