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s인터넷 신문으로부터 신년특별기고를 해달라는 청탁이 들어왔다. 은주가 s신문과 인연을 맺은건 선우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의 신간을 홍보하라며 s신문을 알려주었고 서평은 전혀 써보지 않은 은주는 서툴게나마 서평을 완성해 s신문에 투고를 하였다. 그러나 하루가 다 가도록 글은 실리지 않았고 해서 선우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였는데 다음날 아침 혹시나 하고 보니 자기 글이 떡하니 실려있는걸 보고 매우 신기해하던 생각이 난다. 그러고는 담당자라며 전화를 해와서 통장계좌를 알려주면 고료를 입금하겠노라 하였다. 얼마 안되는 돈이었지만 난생처럼 기고를 해서 받은 고료여서 은주는 그돈으로 소고기를 사서 뭇국을 끓여 선우와 함께 먹었다.
그 s신문에서 신년기고를 해달라는데, 뭐를 써야 하나 하면서 그녀는 장고에 들어간다. 선우와는 지난 여름 헤어져버린 터라 그 사랑의 흔적이 남아있는 그 신문이 조금은 께름직했지만 거기에 올린 서평이 계기가 돼서 그녀는 지금 서평 전문 기고가로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 그러니 s 신문에 빚을 졌다면 진거라고 할수 있어 되도록이면 글을 보내리라 마음 먹고는 웹을 검색하며 남의 글도 읽고 자신의 문서함에 저장된 쓰다만 미완의원고들도 일일이 훑어본다...
그러다 그녀는 불행하게 살았던 미국작가 호레이스 맥코이의 <그냥 고향에 있을걸>을 원서로 읽은 기억이 나서 그 책의 서평을 쓰기로 한다. 헐리웃 엑스트라들의 이야긴데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출세욕과 욕망으로 가득찬 그들의 심리가 어쩌면 인간보편의 심리가 아닐까 하면서 그녀는 한자한자 타이핑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은주가 원고를 끝내고 퇴고까지 마치자 해가 바뀌어 있다. 이제 은주도 서른 여섯이다. 우스갯소리로 떡국 한두그릇만 더 먹으면 마흔줄이다...그는 뭘 하고 있을까, 하며 선우를 떠올려보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리도 여러번 그녀가 매만지고 바라보았던 그의 얼굴이 갸름한 실루엣을 빼고는 떠오르질 않는다. 이런게 이별인가 보다...
그녀는 내일이나 모레쯤 기고문이 실리려니 하고는 송고를 한다. 그리고나자 나른한 피로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새해 첫날아침을 잠으로 맞고싶지 않다는 마음에 그녀는 밖으로 나간다.
겨울치고는 따스한 날이 계속돼서 그녀는 가벼운 패딩을 걸치고 나왔지만 하룻새에 기온이 떨어졌는지 꽤나 쌀쌀하다. 다시 들어갈까,고민하다 그녀는 그냥 뛰기로 한다. 그렇게 강까지 갔다오면 얼추 땀도 날테고 샤워를 한 뒤 사다놓은 떡국을 요리해서 아침을 먹으면 혼자 살아도 할것은 다 한다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그녀가 강에 이르자 강의 일부는 아직도 결빙된 상태다...며칠간의 따스함에도 겨울강은 완강하게 저항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쯤에서 선우와 나란히 앉아 흐르는 강을 보던 생각이 난다. 그의 어깨에 자기머리를 기대고 자주 바라보던 그 강인데도 오늘만은 새롭게 보인다. 저 강도 나이 한살을 먹었겠구나 하자 왠지 조금은 서러워진다.
그렇게 나이든 강을 이제 그만 떠나기로 하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저만치서 조깅을 하며 달려오는 남자가 하나 보인다. 전체적 실루엣이 선우를 닮은것에 그녀는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가까이 그녀를 지나쳐가는 그는 분명 선우가 아니다. 그녀가 실망하고 터덜터덜 강변을 걷고 있는데 '허은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선우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휙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유유히 흐르는 겨울강만이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s신문은 메인란에 그녀의 신년기고문을 실었다. 호레이스 맥코이에 대해서 자기들이 추가 검색을 했는지 ,은주가 간단히 적어보낸 맥코이의 양력에 살이 붙어있다...
이렇게 해서 괜찮은 작가 하나를 비록 지역신문이지만 알리게 되었다는 마음에 그녀는 뿌듯했다.
어쩌면 선우도 이 기사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의 휴대전화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 떡국을 끓여먹고 그녀는 한숨자기로 한다.
꿈속에서는 여전히 선우와 이어지고 있었다. 선우는 그녀의 어깨에 자신의 한팔을 두르고 남도의 해안가를 걷고 있다. 저만치 뱃고동 울리는 거대한 상선하나가 지나고 있다. 바다위로 눈부신 햇살이 떨어져내린다...그해의 가을같다고. 그가 갯바위낚시 타령을 하도 해서 같이 내려가 사흘을 보냈던 그때와 같다고...
그런데 은주가 선우의 이름을 부르려는데 말이 나오질 않는다. 갑갑한 그녀가 서..선....하다가 깨어보니 벌써 정오를 지낸 시각이다. 자는사이 선우의 전화나 문자가 와있나 싶어 전화기를 살펴보지만 부재전화나 문자따위는 한통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맥이 빠져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이 든다..그러다 문득, 혹시나, 어쩌면, 하는 생각에 현관으로 달려나가 재빨리 현관문을 열어본다. 그러자 선우가 우두커니 서있다. 설마...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서 비벼보기까지 하지만 분명 자기 앞에 서있는 사람은 선우였다.
"뭐야. 떡국먹으러 오라는 얘기도 없고"라며 선우가 삐진척을 한다.
"언제는 핏제럴드 타령이더니 이제는 맥코이로 갈아탄거야?"라며 은주의 s신문 서평을 읽은 티를 낸다. 은주가 길을 내어주자 "아 배고파"라며 그가 은주의 방으로 들어선다.
은주는 이게 꿈인가싶어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네시를 넘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잠에서 깨어 우두커니 선우를 기다린 시간이 꽤 길었다는 얘기다.
"떡국 안줘?"라며 그가 채근을 해서 "어, 조금만 기다려"하고 그녀는 서둘러 새로 떡국을 끓이기 시작한다.
all pics from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