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 내사랑

by 박순영

퇴근무렵이 돼서 은진은 s대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환자가 보호자로 은진을 댔다며 빨리 오라는 내용이었다.

이미 헤어진 여자를 보호자로 명명한 윤식이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모른척 할만큼 그에게서 마음이 떠난것도 아니기에 은진은 서둘러 회사를 나와 택시를 잡아 탄다.


응급실 구석자리에 누워있는 윤식은 링거를 서너개는 꽂고 있었다. 은진이 다가가자 때마침 눈을 뜬 그가 은진을 보며 배시시 웃는다. 이 남자 뭔가...석달전에는 그렇게도 악다구니를 써가면서 자기와 싸워대고 등을 돌린 그 남자 맞는가...


"왜 그랬어 ? 가만 있어도 다 죽는데"

"살기 싫어서..."라며 그가 고개를 벽쪽으로 돌린다.

"나 봐"라며 은진이 그의 얼굴을 자기쪽으로 돌려놓는다.

"한번만 더 이러면 , 보호자 아니고 보호자 할아버지라고 대도 나 안온다"라고 말하는데 은진의 눈에 눈물이 글썽인다.



윤식은 '죽고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살았다. 코로나로 사업이 휘청거리면서부터 그는 은진을 불퉁하게 대했고 대놓고 돈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월급장이인 은진으로서는 감당할수 없는 그런 큰돈을. 처음 한두번은 대출이니 지인들로부터 융통을 해서 주었지만 그런 요구가 계속되는 데야 관계자체를 이끌어나갈 수가 없었고 급기야 서로의 인신공격으로까지 번져 둘은 헤어진것이다. 그러면서 윤식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나 죽어버릴거야!"였다. 그리고는 석달만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이렇게 응급실로 실려와서는 은진을 달려오게 만든 것이었다.

"한번만 더 이러면 죽인다 내가!"라며 그녀가 눈을 흘긴다.

"밥은 먹었어?"

윤식은 이제 다 풀어졌다 판단했는지 뜬금없는 밥타령이다.


그러나 퇴원후 한동안 잠잠하게 지내는가 싶던 윤식은 또다시 '죽고싶다' 메시지를 빼곡하니 보내왔다.

정신과에 가보라는 은진의 말에도 '내 병은 그런데서 고쳐질게 아냐'라고 묵살하고는 옥상에서 투신하는게 나을까 ,아니면 손목을 긋는게 빠를까 따위의 말들만 쏟아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그를 달래야 한다는 마음에 은진은 업무를 보는 짬짬이 그에 대꾸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진력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늘은 정말 '결판'을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퇴근후 그의 집으로 향했다.


"어? 왔네?"라며 파자마 차림의 윤식이 피자를 우걱우걱 씹으며 그녀를 맞는다.

익숙한 거실에 들어서면서 은진은 약병 하나를 들이민다. 뭐야, 라며 그가 받아들자 '청산가리'라고 그녀가 말한다.

그말에 윤식의 얼굴이 파리하게 변한다.

"그렇게 죽고 싶으면 지금 다 마셔"라고 하자

"야..."라며 그가 슬쩍 약병을 내려놓고 그녀를 안으려 한다.

"미워 정말..."하며 그녀가 윤식을 밀어내지만 그의 힘을 당할 재간이 없다.


"정말 청산가리야?" 레벨이 안붙어있잖아..

"맘대로 생각해"라며 윤진은 벽을 향해 돌아눕는다.

"우리 결혼하자"라며 윤식이 그녀를 다시 돌려 눕힌다.

결혼....만난지 5년.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둘은 여러번의 헤어짐과 재회를 반복하며 부부가 다 된 양 그렇게 살아왔다.

"맨날 죽고싶은 남자랑 뭐할러 결혼해?"

"나, 작게 여행사 하나 하고 싶다"

"그래서..또 그 돈 대라고?"

"야...왜 그래..."라며 윤식이 그녀를 다시 안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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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예상대로 그날 이후로 그는 여행사 타령을 줄창 해대며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조급하게 굴기 시작했다. 이제 펜데믹도 끝났고 분명 메리트있는 분야라며 어떻게든 이번엔 돈을 벌어보겠다고 호언장담을 해댔다. 문제는 그 기반자금을 은진이 대야 한다는 것이지만.

"니 집좀 잡혀라"

그는 너무나 태연하게 이야기한다.

"이집은 월세잖아...그럴수도없어" 라며 그가 풀죽어 한다.

은진의 집은 부모가 물려준 유산이었다. 은진은 집만은 안된다고 여러번 이야기하였지만 윤식은 아예 작정을 한듯싶다.

"나 왜 다시 만나는 거야?" 은진은 둘의 관계 자체가 의심스러워진다.

"니가 좋으니까"

"내 돈이 좋은거 아니구?"라고 하자 윤식이 다시 결혼이야기를 꺼낸다. 너 나랑 살거야 안살거야...


다음날 새벽 윤식의 집을 나서는 은진은 이젠 결심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이른 아침 마침 빈차로 나가고 있는 택시를 잡아탄다. 그렇게 택시는 새벽공기를 가르며 30여분을 달려 은진의 집에 도착한다.


응급실로 헐레벌떡 들어서는 윤식의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있다. 저만치 구석 자리에 누워있는 은진은 이제 겨우 의식이 돌아왔는지 초점없는 눈으로 그를 맞이한다.

"왜 그랬어. 니가 왜 죽어"라는 그의 말에 "살기 싫어서"라고 그녀가 말한다.

그말에 윤식이 숨죽여 흐느낀다...내가 잘못했어...너를 푸쉬하는게 아니었는데...


윤식은 자기 여행사의 첫 상품을 자신이 직접 체험해봐야 한다며 보라카이로의 신혼여행을 우겨댔다. 은진은 회사가 한참 바쁠때라 그냥 제주도나 하루 갔다오자고 하였지만 윤식은 양보하지 않았다. 해서 둘은 필리핀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고 서로 '한번만 더 그럼 죽어버린다'며 서로를 협박했다...

"여기 보라카이에 지점 하나 내면 어떨까?"

그말에 은진은 스튜어디스가 방금 주고간 주스를 뿜어낸다.

"죽을래?"


볼라카이 연인들.jpg all pics from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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