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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Feb 02. 2024

철없는 사랑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정도 에 젖어 이별이, 만남이 그닥 와닿지가 않았다. 최소한 미정에게는 그랬다. 지난 한달 그는 경욱에게 또다시 일정액을 건넸고 그럴때면 경욱은 '내가 사람구실을 못해서 니가 고생이다'라면서도 거절하지는 않았다. 그러고보니, 미정의 지인이나 친구중에도 남편은 놀고 아내가 팔 걷어부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다시 만난 만큼, 돈이야 누가 벌든 그게 뭐 중요하랴 생각한 미정은 이번엔 기필코 결혼에 이르기로 작정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비추면 경욱도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는 눈치여서 미정은 지금 사는 평형에서 좀더 넓혀갈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집은 나갈듯 하면서도 나가지가 않았고 그런 일이 거듭되자 경욱은 조금씩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요즘 시기가 그렇잖아"

"내가 뭐래? "하고 그는 툴툴대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한 1000만 줘!"

이 말을 할때만 해도 둘은 그다지 가깝지가 않았다. 가끔 시내에서 만나 맥주나 나눠마시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경욱은 미정의 집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그것이 부모의 유산이어서 오빠 정수와 나눠야 한다는 말에는 발끈했다. 그러면서 돈 1000주고 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런 그를 보며 미정은 두가지 생각을 하였다. 그가 자기와 살 마음이 있다는것, 그리고 그의 물욕이 병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둘의 갈등 포인트는 역시 '돈'이었다. 한번은 결별한 바로 다음날 그에게서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 미정이 전화를 받지 않자 경욱은 연거푸 걸어왔다.

"왜?"

"차가 멈춰섰다. 돈좀 부쳐라"

"내 카드 있잖아."

"몰라. 던지고 나왔다."


당시 미정은 자신의  신용카드 중 하나를 경욱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는 마지못해 받는 시늉을 하면서 '쓸 데도 없는데'라고 하고서는 그 다음날부터 줄창 긁어대기 시작하였다. 저럴줄 알았으면 한도설정을 해두는 건데, 라는 후회가 일었지만 이제 와서 매월 한도를 정해버리면 그건 그에 대한 이별선언이나 다름없어 미정은 그냥 내버려 둘수밖에 없었다...


'미스 호치민 18000' 이란 카드결제 문자를 보고 이게 뭘까, 하고 검색을 해보니 저가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었다. 비싸봐야 5000원인데  뭘 어떻게 먹었길래...하다가,아무래도 2인분의 식사값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 상대가 궁금해졌다.

지난 2년동안 둘이 밥을 먹고 경욱이 밥값을 계산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알지? 나 돈 없는 글쟁인거?'라는 무언의 압박이 그녀 스스로 지갑을 열게 하였고 또 으레 그러려니 하였다.

하지만 이 모호한 결제문자를 보고 그녀는 따져묻기로 하였다.



"이것저것 옵션까지 하면 그 정도 들어"

"내가 봤어 . 옵션도 죄다 싸든데"

그러자 경욱은 폰커버에서 미정의 카드를 꺼내 그녀앞으로 휙 집어던진다. 그리고는 씩씩대며벅 까페를 나간다.

그녀의 무릎에 떨어진 그 카드를 물끄러미 보던 그녀는 '이렇게 또 끝나는구나'하는 마음에 울컥 설음이 복받쳤다. 하지만 지금 나가서 그를 잡는 순간 돈문제도 그의 여자문제도 모두 묻고 간다는 의사표시가 되므로 애써 참기로 한다.


그날저녁, 그녀가 욕조물을 받으며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바깥에서 폰이 울린다. 경욱은 웬만해서는 전화를 하는 일이 없었다 아주 급한 상황이 아니면. 그러면서도 미정 옆에서 다른 여자들과는 부지런히 전화며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왜?"

그녀의 조금은 퉁명스런 말투에 전화너머에서 그가 후, 한숨을 내쉰다.

"너 돈좀 번다고 유세 떨기야?"라며 그가 어줍잖게 화해를 청해온다.

"나 씻어야 돼"

"지금 생각해보니 아들 거 싸달라고 했더라"라며 그는 애써 카드비 내역을 해명하려 한다.  

"아들이 쌀국수 좋아하거든"


그에겐 이제 중학생이 된 전처소생의 아들이 하나 있다. 전처가 의사였고 그러면 돈없는 경욱이 아이를 맡는것보다는 전처에게 양육을 넘길만도 한데 경욱은 기어코 아이를 데려왔다고 했다. 부자는 17평 방 두칸짜리에 월세로 살고 있다.

생계가 어려우면서도 싸구려 글은 안쓰겠노라 고집을 피운 탓인지, 아니면 글 자체가 메리트가 없는지 경욱의 소설은 팔리질 않았고 그에 비해 그의 물욕은 하늘을 찔렀다.

'언젠가 당신의 그 욕심이 당신을 망칠거야'라며 미정이 악다구니를 쓴적도 있다.



미정은 온라인으로 옷을 팔고 있다. 처음엔 조금씩 사입을 하다 팔다가 지금은 위탁판매를 하고 있다. 결혼직전까지 갔다가 상대방에게 오랜 여자가 있음을 알고는 헤어진 쓰라린 기억이 있어 그녀는 혼자 살겠노라 하였지만 결국에는 알음알음 경욱을 만나게 되었고 연애를 하게 되었다.



"이제 아들한테 나 소개시켜줘야 하는거 아냐?"

그녀는 이렇게 그의 의중을 떠보기로 하였다.

"애가 어려서..아직도 지 엄마 찾는데..글쎄, 인사는 시켜야지..."라면서 그가 난처해했다. 이렇게  이 남자와는 또 틀어지는구나 하는 표정을 미정이 짓자 그가 얼른 위기를 모면하려는듯 "일요일날 와"라고 말을 했다.


훈은 여느 사춘기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해 보였다. 일단 외모부터가 남달랐고 눈치도 빨라서 경욱이 "아빠 아는 아줌마"라고 미정을 소개하자  입가에 알지 못할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피해주었다.

"나 이렇게 산다"라며 그가 17평 내부를 공개한다. 잔뜩 어질러진 그 좁은 공간을 보며 미정은 하루라도 빨리 살림을 합쳐 부자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 먹고 갈거지?"

"뭐, 줄 건 있구?"

"라면이지 뭐."라며 경욱이 냄비에 물을 담아  가스 레인지에  올렸다.

그순간, 현관이 열리며 조금전 나갔던 훈이 돌아왔다.

"약속 있다매?"

"취소"

하고 훈은 문간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그런 훈의 행동에 미정은 조금은 난처해진다.

"우리 나가서 쌀국수 먹을까? 훈이랑?"

그 말이 훈의 방까지 들렸던 모양이다.

"저 베트남 음식 싫어요"라는 훈의 대답에 경욱의 얼굴에 작은 경련이 인다.

"그냥 라면 주세요 "하고 훈은 덧붙인다.

"미스 호치민에서 아들 먹을것도 샀다며"라는 미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욱은 부산하게 냉장고를 열어 파와 계란을 끄집어낸다.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는 미정에게 그가 채근을 한다.

"뭐해 좀 도와줘"

그말에 미정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날밤 미정은 혼자 가겠다고 우겼지만 경욱은 전에 없이 바래다주겠노라 고집을 피웠다.

그렇게 서울행 시외버스정류장까지 오는길에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한다.

"정 집이 안 나가면..."

그의 그 다음말이 예사롭지 않을거라는 예감이 미정을 섬뜩하게 한다.

"그럼 뭐..."

"우리 장사해볼까? "

그말에 그녀가 발끈한다.

"무슨 돈으로?"

"한 1억만 대출받으면 외곽에 작게"

"차 세워!"라고 그녀가 소리친다.

그말에 경욱은 힐끔 그녀를 쳐다보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미 창밖 어둠으로 향해있다.

"야, 우리 부부나 마찬가진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차 세우라고 했지?"

그녀가 정색을 하고 말하자 그도 할 수 없다는듯 차를 세운다.

"훈인 베트남 음식 못먹는다며!"

그말에 경욱이 우물쭈물한다.

"너 이동네에 여자 있니?"

그말에 경욱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무슨 상상을 하는거야? 그리구 너라니!"

"그지같은 자식"하고 그녀는 경욱의 차에서 내려 다급하게  걸어간다. 그런 그녀를 잠시 따라오는가 싶던 경욱의 차가 사거리가 나오자 그녀를 버리고 옆길로 빠진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경욱의 차를 보며 미정은 이젠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린 헤어지려고 만난거였어...

그리고는 저만치 서 있는 빈택시를 타고 서울로 가자고 한다.



"야, 너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다음날 , 자기 집에서 경욱의 흔적을 싹 다 치워버린 후 피곤해서 골아 떨어진 미정의 귀에 전화너머에서 마치 철없는 아이 달래듯 경욱이 조근조근 말을 한다.

"당신 모든게 거짓이잖아."

"그냥 친구야. 여자 사람 친구 . 요즘 세상에 이 정도는 패스해줘야 하는거 아냐?"

이어지는 그의 변명을 듣던 미정은 하긴 뭐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도 초등동창 민규와 가끔 연락하고 밥도 먹고 하니...

"정말, 아무 사이 아닌거지?"

"친구라니까...넌 참.."

"그리고 난 이 집 잡힐 마음 없어"

"그냥 잠깐 생각해본거야. 요즘은 누구 집 보러 오는 사람 없어? 너랑 빨리 합치고 싶다"

"진심이야?"

"속구만 살았냐?"

라는데 띵동 하고 차임벨이 울린다. 인터폰 화면에 낯익은 부동산 업자와 젊은 남녀가 서 있다.

"집좀 볼게요"라는 업자의 말에 미정은 다급하게 경욱의 전화를 끊고 현관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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