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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Feb 13. 2024

어떤 재회

우혁은 너무나 태연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지난번 그렇게 윤서를 모욕해놓고 그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그녀의 안부를 묻는다.  잘 지냈냐고...


설마 연락이 올까 싶어 전화 차단까지는 하지 않은 그 상대로부터 연락을 받으니 윤서는 막막하고 할말이 없다. 죽은 전처의 처가에는 가면서도 정작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윤서의 부모는 보러 오질 않았던 그였다. 그러면 이미 끝난 얘기 아닌가 해서 윤서는 이를 악물고 그를 자신의 일상에서 몰아냈다. 그랬다고 생각하였는데 어느새 그는 쓱 문을 열고 그녀의 일상에 한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렇지 뭐...우혁씬 잘 지내고? "

여전히 엣처가에 자주 가? 라는 말을 할까 하다 너무 유치한거 같아 윤서는 그만둔다.

"사정이 좀 있어 . 지난번엔 네게 얘기하지 못했는데"

"무슨 사정..."

그가 애써 변명하려는 게 오히려 윤서에게는 반감만 일으켜서 그녀믜 마음은 불편하기만 하다. 옛람에 대한 미련, 외부의 시선, 그런것들을 윤서보다 우위에 뒀기에 이루어진 이별 아닌가. .그래놓고...



"우리 좀 볼까?"

라는 우혁의 말에 윤서는 대답이 나오질 않는다 . 이제 겨우 가라앉힌 이별후유증을 또다시 경험할수도 있다는 불안감, 아니, 이별과정에서 보인 우혁의 비열했던 모습, 이런것들이 마구잡이식으로 오버랩돼서 그녀를 혼란에 빠트린다. 

"나중에 연락할게"라고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러나 그날 저녁, 그녀의 퇴근시간에 맞춰 우혁은 회사 앞으로 그녀를 만나러 왔다.

그가 입구 유리문 너머에 딱 버티고 있는걸 본 순간 윤서는 숨이 턱 막혀왔다. 이사람한테 이런 면도 있었나 싶게 그는 너무나 태연하게 그녀에게 미소까지 날렸다.

그녀는 다신 흔들리지 말자 하고는 주먹을 불끈 쥔다.


"왜 이렇게 퇴근이 늦어. 한참 기다렸잖아"라며 그가  살갑게 군다.

"나 약속 있어"하며 그를 피하려는 윤서의 팔을 그가 힘주어 잡는다. 거짓말인거 다 안다는 표정이다.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라며 그는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그와 식사까지 할 마음은 없었지만 우혁은 이미 예약을 해놓았노라며 우겨대서 윤서는 할수없이 회사 근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하지만 음식이 입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건 우혁도 마찬가지였는지 스테이크를 깨작거리다 마는 정도였다.  디저트가 나올 무렵, 윤서는 아무래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겠다는 생각에  자세를 고쳐앉으며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끝난거 아니었어? 그때 당신은 죽은 전처를 택한거 아냐?"

"순진하긴....내가 데리고 살 여자는 너지 그 사람이 아냐. 아니, 그 사람이 될수가 없잖아"

"말장난 하지 마. 나, 딴 사람 소개받기로 했어"

그말에 우혁은 잠시 긴장하는가 싶더니 이내 믿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너를 아는데, 우리 헤어진게 언제라고, 아니, 난 너랑 헤어진 적이 없어. 그냥 잠시 안본거 뿐이지...벌써 딴놈을? 내가 널 몰라?"라는 그의 말을 윤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만남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 그것 하나는 분명했다.


"이젠 안 봤음 좋겠어"라는 그녀의 말에 "너를 위한 길이기도 해"라는 애매한 대답이 돌아온다.

나를 위한? 윤서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드는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있다가는 돌아버릴것만 같다. 그녀는 붙잡는 그를 뿌리치고 레스토랑을 뛰쳐 나오다시피 한다. 


윤서의 부모는 지난번 우혁을 소개받기로 해놓고 바람을 맞은 후로 그의 이야기라면 진저리를 냈다. 그렇지 않다 해도 이제는 더이상 그를 언급할 일이 없기에 윤서는 그날 우혁과의 만남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지않는 잠을 애써 자려고 뒤척이다 보니 벌써 새벽이 깊어간다. 윤서는 머리맡의 폰을 집어 아무 앱이나 클릭한다. 그러다 '대습상속'이란 문구를 본거 같다. 이게 뭐지? 하고 클릭한 그녀는 단숨에 글을 읽어내려간다. 다 읽고 나자 "너를 위한 길이기도 해"라던 우혁의 말이 그녀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나를 위한...

그렇다면 우혁은 죽은 아내 몫의 처가 상속을 노리고 지금까지 그집엘 드나든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마...하면서도 돈에는 치밀하고 악착같은 우혁의 성격을 놓고 보면 절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상속과 윤서를 동시에 다 갖겠다는 그의 야욕이 무섭게 느껴진다. 무서운 사람....



하지만 사흘뒤 퇴근무렵 걸려온 우혁의 만나자는 전화를 윤서는 거절하질 못한다.

"잘 지냈어?"

고작 사흘만인데 이번엔 오래 못본 사이나 되는 양 그가 물어온다. 이사람의 정확한 의중은 뭘까?

그러고 있는데 "다 너랑 잘 살려고 하는거야"라며 그가 쐐기를 박듯 말을 한다.

윤서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지만  우혁은 이야기를 기어코  매듭짓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보인다. 

"돈 때문이야?"라며 윤서가 선수룰 치기로 하자 "무슨 돈?"이라며 우혁은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렇게 되면 윤서로서는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나갈 명분도 이유도 없다. 아니, 우혁과 마주앉아 있다는 자체가 부조리했다. 

"갈래 나"하고 그녀가 일어나자 "후회 안하지?"라며 우혁이  그녀를 쏘아보며 말한다.


집에 오는 택시 안에서  윤서는 모든게 번잡스럽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집에 와서 샤워를 마치자 온몸에 나른한 피곤함이 몰려들어 그녀는  쓰러지듯 침대로 향한다. 



"남자 잘 만나". 

다음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윤서의 부친이 퉁명스레 이야기한다. .우혁과 다시 보고 있다는 걸 마치 눈치채기라도 한듯이. 

"아무도 안 만나. 나 결혼 안해"라고 윤서가 대답하자

"니가 나이가 있어 그렇지 뭐가 딸려.  우리 죽으면 니가 다 물려받는건데"라는 윤서모의 말에 윤서는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그거였어...

우혁이 노린건 옛처가의 대습상속분과 외동인 자신이 물려받을 전재산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속이 메스껍다. 그녀는 수저를 내려놓고 급히 욕실로 뛰어가 먹은걸 다 토해낸다.

그리고 그날은 월차를 쓰기로 하고는 약을 털어놓고 잠에 빠졌다.



"난 노력했어 너랑 다시 잘 해보려고"

우혁의 성마른 메시지를 받은 건 그날 밤이 다 돼갈 때였다.

윤서가 답을 안해도 그는 계속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줄창 보내왔다.

발끈한 윤서는 아무래도 한마디 해야 할거 같아 답을 하기로 한다.

"노력했다구? 내가 모를줄 알아?"

그말에 상대는 뜨끔한 눈치다. 한참을 답문이 없어 윤서가 폰을 내려놓는데 띠링,하고 알람이 울려 다시 액정을 들여다본다.

"다 좋자고 한 일이야. 그리고 널 사랑해."라는 우혁의 말에 윤서는 '니가 원하는 건 돈밖에 없잖아!'라고 소리치고 싶은걸 간신히 참는다.

"우리 안맞는거 같아. 이젠 연락하지 마"라고 그녀가 답문을 보내자마자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벨은 한참을 울리다 끊어진다. 이참에 그의 번호를 차단하자고 마음 먹지만 하지를 못한다. 그러자 또다시 벨이 울린다. 그녀는 그가 자주 하던대로 음성사서함으로  돌려버린다. 


며칠후  그가 회사앞으로 다시 찾아왓을때 윤서는 어서 달려가 그를 포옹하고 싶은걸 간신히 참는다.

그러자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그가 윤서에게 다가온다.


윤서가 울먹거리며 아무 말도 못하자 그가 와서 그녀를 꼭 안아준다.

"뭐가 됐든 우리가 같이 살면 되는거야. 다만 시간을 좀 늦추는거 뿐야"

'재혼한 사위에게는 대습상속이 안된다'는 구절이 그녀를 스친다. 

하지만 그가 죽은 처 대신 상속을 받든, 자신이 외동임을 노리고 접근했든 윤서는  그가 그대로 가버릴까봐 가슴 졸였던 지난 며칠간의 불안과 슬픔만 떠오른다.

"우리 야외로 빠질래?"

우혁이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묻는다.

"늦지 않았어?"

"가서 일박하고 내일 곧바로 출근하면 되지"라며 그는 세워져있는 자기 차로 윤서를 잡아 끈다.

윤서는 흘린듯 그에게 손을 잡힌채 그의 세계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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