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순영 Apr 02. 2024

천사의 눈물

정말 십수년만의 동창모임이라 경미는 뭘 입고 나가나, 더치페이를 할 경우 얼마를 꺼내가야 하나를  고민하다 하마터면 약속시간에 늦을 뻔했다. 해서 지하철을 타기로 했던 그녀는 단지나와  휴일이어선지   곧바로  잡힌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인 대학로로 향했다.


졸업하고 한번인가 모이고 이번이 처음이니 정말 오랜만의 모임이었다. 처음엔 대학근처에서 만날까 했지만 근래 이사간 혜림의 집에서 너무 멀어 셋의 중간지점인 대학로가 모임장소로 결정되었다. 어딘들, 언제든 어떠랴 싶었다. 그 작은 대학교정에서 몰려다니며  웃고 떠들고 때로는 울고 아파하던 20대를 같이 보낸 얼굴들이니 보기만 해도 애틋할거 같았다.



혜림과 미정은 이제 제법 주부 티가 나겠지 , 경미는 택시안에서 상상을 하였다. 그렇게 30여분을 달려간 대학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 경미야!"하고 둘이 입을 모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경미는 소리난 쪽을 쳐다보았고 단박에 혜림과 미정을 알아보았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얼마만이야!"하며 서로 하이파이브에 수선을 피워가며 셋은 자리를 나란히 했고 대학때도 늘 그랬던것처럼 혜림이 나머지 둘을 대신해 알아서 주문을 마쳤다.


"야, 우리 예전처럼 낮술 한잔 하자"라고 미정이 입을 열자 혜림이 "그럴까?"하고는 흑맥주를 석잔 추가로 주문했다.

그리고는 동창들이 만나면 하는 으레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니 음식이 나왔고 침을 튀겨가며 서로의 지나온 시절을 이야기하고 함께 반추하고 끌끌 혀를 차기도 하였다..

"너, 지금도 그 남자 만나?"

불쑥 던져진 혜림의 질문에 경미는 잠시 머뭇거리다

"끊어지질 않아"라고 대답을 하였다.

"너두 참..."하고 혜림이 혀를 차자

"뭔데?"하며 미정이 물었다.


경미는 지금 이혼남을 만나고 있다. 회사일로 알게 되었고 처음에는 이혼남이라는 사실이 걸려서  거리를 두었지만 현수의 적극적 대시로 결국 연인사이로 발전했다. 애가 있지만 전처가 키우고 있어 현수는 싱글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경제력인데, 아내와 이혼하며 다니던 회사를 나와 시작한 사업이 뜻대로 되지않은 것이다. 그 당시 경미와 일로 알게 돼 인연이 이어졌는데  얼마 안가 현수의 회사는 문을 닫고 그는 백수가 되었다.


"아내가 바람을 폈어. 그래서 애 키우라고 하고 집도 넘겨주고 헤어졌지"라며 어느날 현수는 술잔을 기울이며 이혼사유를 말했다. 대부분 그럴 경우 집까지 주지는 않는데 그래도 집을 주고 나왔다는게 경미는 어딘가 믿음직하고 신뢰가 갔다.

하지만 곧이어 불거진 그의 경제적 문제로  둘은 자주 갈등을 빚었고 언제부턴가 그의 생활비를 경미가 대주다시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달전,  sns에서 경미를 찾아낸 혜림에게 그 얘기를 짧게 한적이 있는데 그걸 미정도 있는 자리에서 그녀가 다시 꺼낸게 경미는 조금 야속했다. 하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어릴적 친구들이기에 그냥 속내를 터놓기로 했다.

"어떡하니...그냥 이러다 결혼하겠지 뭐"

라는 경미의 말에 미정의 눈빛이 반짝인다

"야, 지금이야 사랑에 눈 멀어서 그렇지, 결혼해봐. 결혼은 꿈 아니고 현실이다 너"라며 주부 10년차의 그렇고 그런 조언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 아는 돌싱 의사 있는데 만나볼래?"하고 혜림이 슬쩍 거들기까지 한다.

"꼭 남자가 돈 벌어야 하는건 아니잖아. 안그래도 요즘 다시 사업한다고 알아보고 있어"라며 경미가 현수의 쉴드를 치자 혜림과 미정이 '그만해라'라는 표정을 짓는다.

현수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리는 조금 침울하게 흘러가는거 같아 경미쪽에서 화제를 돌렸다. "나 아는 이쁜 까페 있는데 거기 가서 커피 마시자. 케익도 맛있어 그집"이라고 하자 나머지 둘도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자리를 옮기고 잠시 시간이 흐르자 화제는 또다시 현수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돈 막 주고 그러지 마. 남녀 일은 장담할거 아니잖아. 꼭 결혼한다는 보장도 없고"

혜림이 꽤나 걱정하는 투로 이야기를 한다.

"막 줄 돈도 없다....니들이 좀 꿔줘"라고 미정이 말하자 금세 혜림과 미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농이다 농...기집애들"하자 그제야 둘은 안심하는 눈치다.

"가까운 사일수록 돈거래 안하는 거 알지?"라며 미정이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셋이 서로의 타액이 묻은 포크로 디저트 케익을 세개나 먹어치웠을때 혜림이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떴다. 그러자마자 미정이 기다렸다는듯이 말을 하였다.

"혜림이 남편, 지금 놀잖아"라고.

그말에 경미가 의아해한다

"그쪽도 사업하다 잘 안돼서 백수"라고 누가 듣기라도 하듯 미정이 목소리 톤을 낮춘다.

"어, 그래..."라며 경미가 마지못해 말을 받는데 혜림이 돌아와 앉았다.

"나 없는 동안 내 흉 안봤지?"라며 혜림이 둘에게 눈을 흘겼다.

"흉 봤다 어쩔래"하고 미정이 살짝 비아냥댔다.

"니들은 화장실도 안가냐?" 하고 혜림이 둘에게 말을 하자 "나 없다고 내 흉보지 마"하고는 미정이 자리를 떴다. 화장실이 있는 통로로 미정이 사라지자 혜림이 대뜸 말한다.

"쟤 , 요즘 속이 말이 아니잖아"

순간 경미는 이 자리가 조금 피곤해졌다.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나 하고 귀를 세우자

"여자 있잖아 쟤 남편"하고 혜림이 알려준다.

"여자문제야?" 하며 경미가 짧게 탄식한다.

"다른건 몰라도 난 여자문제는 못참을 거 같아"라며 혜림이 이미 바닥난 커피잔을 휘후 돌리며 말을 했다.

아마도 혜림과 미정은 간간이 연락을 하며 지내온듯 했다.


혜림, 미정과 헤어져 경미는 문득 학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듣었다. 졸업하고 한두번 가본게 다인지라 가끔 온라인에서 검색이라도 해보면 교정도 많이 변해있었다.

술기운도 좀 식힐겸 그녀는 지하철로 가기로 한다.

그렇게 전철역에서 내리자 주위는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이젠 제법 고층 건물도 들어섰고 예전의 소규모 옷가게며 화장품가게, 그리고 미장원 대신 커다란 종합쇼핑몰이 떡 버티고 서있었다. 예전의 작고 아기자기한 정취가 그리웠지만 사실 그때는 너무 낙후했던것도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들어선 학교는 예전의 후줄근한 담벼락을 없애고 세련된 정문을 만들어  괜히 으쓱해지는 기분을 들게 했다...


예전에 비는 시간이면 자주 혜림,  미정과 몰려다니던 여기저기를 가서 앉아보고 바뀐걸 실감하면서 작은 탄식도 해보고 하던 경미는 아직도 그 작은 교내서점이 있나 궁금해졌다. 그때 모든 교재며 부교재를 파느라 일손이 부족해하던 그 사람좋은 중년남자도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다.


서점만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걸 보고 경미는 여간 반가운게 아니었다.

경미가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전 그 중년의 남자 대신 자기 또래로 보이는 여린 인상의 남자가 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경미가 책을 들춰보자 남자가 "제가 찿아드릴까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아뇨. 졸업생이예요. 서점은 여전하네요"라는 경미의 말에 남자의 눈이 잠깐 반짝이더니 "알아요...불문과"

"네?"하고 경미가 놀라하자

"우리 같은 학번. 우리 아버지가 여기 하셨고 지금은 돌아가셔서 내가 대신..."

"아, 근데 저를 어떻게...전공은?"

남자는 자신은 경영학과였다며 도서관에서 경미를 유심히 보았다고 했다. 그때 경미 옆엔 늘 혜림이나 미정이 있어 접근할수 없었노라며 그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오늘 좀 일찍 문 닫을건데 어디 가서 저녁이라도..."라는 그의 말에 경미는 굳이 거절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그와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으로 향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려 경미가 눈을 뜬건 인근 모텔이었다.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하고 경미가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는데 남자가 샤워 타월을 걸친채 욕실에서 머리의 물기를 털며 나왔다.

"깼어요?"

라며 그가 허리를 굽혀 화장대 거울을 보며 계속 머리를 말렸다.

"우리,  어떻게 된거죠?"

"그쪽이 하두 술 취해서"

"그럼 우리..."

"그럴수도 있죠 뭐. 동문인데"라며 그가 화장대위의 스킨 로션을 얼굴에 펴바른다.

순간, 경미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현수의 전화였다. 경미가 받지 못하고 쩔쩔 매자 남자가 눈치 채고는 "받아요 전화"하고 자리를 피해주었다.

"어디야. 너 어제 외박했냐?"라며 전화너머에서 현수가 볼멘 소리를 해댔다.


도망치듯 학교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달려오는 내내 경미는 하룻밤을 같이 보낸 그 남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와보고 싶어한 학교였는데... 택시는 더이상 볼수 없는 예전의 혿등가를 지나쳐 빠르게 동대문쪽으로 달렸다...

미쳤어....내가 무슨 짓을....

하는데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혜림이었다.

"어...무슨 일? 어젠 잘 들어갔고?"

"저기...3개월만 쓸게. 너 돈좀 있으면"

그쯤에서 경미는 전화를 끊었다. 택시는 이미 동대문을 지나 종로로 진입하고 있었다. 다정하고 애틋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나도 저랬겠지 그때는...


그렇게 도착한 자신의 아파트 앞엔 잔뜩 화가 난 현수가 서성이고 있다.

"너 외박했냐고 묻잖아!"라는 노기등등한 그를 경미는 두팔로 감싸 안았다.

"어? 뭐하는 거야 지금?"

"조금만....잠시만 이러고 있자..."하며 그녀는 최대한 힘껏 그를 껴안았다.




all pics from google





매거진의 이전글 언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