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흐르는 강물처럼

by 박순영

어젯밤에 친구 심부름을 할 일이있어 비오는 데 나가서 잔뜩 짐을 들고는 택시를 못잡아 짜증이 났다. 한참만에 간신히 빈택시가 와서 올라타서는 구시렁댔더니 '그런 친구는 친구도 아니니 잘라버려러'라는 기사의 조언에 정말 그래야겠다 생각하였다.

google

그래놓고 들어오니 온몸에 피곤함이 몰려왔고 눈꺼풀이 내려올 즈음 친구가 야근을 마치고 와서 마주앉았는데 둘 다 파김치가 돼서 간신히 몇마디 하고, 원래 하려던 원천세신고 연습을 5월로 미루었다.

막상 얼굴을 보니, 내게 심부름을 시킬만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곤에 쩔어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신선이지 뭐, 라는 생각이...


그 친구, 대학때 수재 소리 들었고 지상파에서 근무하다 퇴직하고 지금은 작은 패션회사 경영 컨설턴트 일을 하는데 회사가 어려워 제대로 거의 무임금으로 다니고 있다. 어쨌든, 내가 발품을 좀 팔아줘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끔 관계가 경색되고 갈등은 있어도 어떻게 40년 우정을 버리랴..


관계는 흐르다 멈춘다 한다. 아니, 삶의 거의 모든것이 그렇게 굴곡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어제 축쳐진 어깨로 양손에 내가 사온 짐을 잔뜩 들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는데, 대학시절, 그 명민하고 핸섬했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내가 남의 걱정 할 때가 아니어서 '운전 조심하고'하고는 손흔들어주고 들어와서 소파에 쓰러져 내처 잠을 잤다.

그리고는 조금전 깨서 침실로 들어오니 인형들이 '야, 외박한 여자 왔다'라고 소곤댄다. 아구, 귀여운 동생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핑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