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본 지가 한참 되었다. 한 20년? 친구가 어느 휴일날 갑자기 불러내 대학로에서 뮤지컬을 본게 끝이었다. 이번에 책을 정리하다보니 연극, 희곡관련 책이 제법 나와서 내가 이런 시기가? 하면서 사뭇 감회에 젖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클래식음악 전집세트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 별걸 다 갖고 있네 하면서 엉터리 번역서는 다 버리고 LP판만 놔두었다. 친구는 LP도 다 버리지 뭐하러 가지고 있냐고 하지만 이번까지는 데리고 가려 한다.
아무리 버리고 버린다 해도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내게 독하게 군 사람이어도 지워지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있는 그런 존재들이 있다.
결국엔 헤어질 거면서 그 이별을 한없이 유예시키는 경우도 있다.
나는 좀 심플한 편이어서, 도 아니면 모 일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어중간하게 상당기간을, 그것도 적지않은 피해를 보면서 질질 끌어가는 인연도 있다.아니, 놓으려 해도 놔지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이 될것이다.
해서 가끔은 이런게 운명이려니 하다가도, 다 내가 모질지 못해서라는 걸 인정하곤 한다.
자주 보는 예능에서, 고민자들이 상담을 의뢰하면 도사 둘이 답을 해주는게 있는데
도사들이 자주 하는 말,
"니들 어차피 결혼 못해. 그래도 좀 더 오래 보려면 서로 양보, 배려하고.."
어차피 헤어지는데, 좀더 오래 보는게 뭔 의미가 있을까 싶어도, 그게 또 아닌거 같다. 가끔은 시절인연도 있고. 악연같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호연으로 바뀌는, 그 반대의 경우도..
해서, 나는 언제부턴가 사람에, 타인에, 관계에 너무 연연해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면서도 하루의 상당부분을 그 생각에 허비한다.
이런 자기모순으로 충만한 사람이 나고, 이런 나를 아주 가끔은 이해하려 한다.
흔한말로 사람의 인연도 사계와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헐벗은 겨울에서 시작해 향기로운 봄을 거쳐 열대의 태양, 그리고 휴식의 계절이 순환하는 거 같다..
가끔은 너무 덥고 너무 춥고 너무 나른하고 너무 지루해도 견디다 보면 다 지나간다. 그래서 다행이고 그래서 또 애달픈것, 그것이 관계의 속성이 아닌가 싶다.
비록 한발만 담그고 있어도 그 발에 찰랑이는 물결에 발을 맡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