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스 하센 케미리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낯선거리에서 방황하다
예술선진국 스웨덴에 대한 로망도 있고 헤닝 만켈의 수작들을 읽은터라 그닥 망설임없이 고른 책이 케미리의 이책이었다. 그리고는 나의 선택이 잘못된 걸 금방 깨달았다.
대화와 지문형식으로 죽 나열되는 서두에서 나는 갈피를 잡을수 없었고 스토리 라인도 파악할수가 없었다. 물론 그전에 서점 판매 페이지에 기재된 테마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걸 알고 읽어도 이게 진짜 범행을 했다는건지, 아니면 그걸 목도한 사람의 얘긴지, 할거라는 건지 조차 파악이 안되어서 고육지책으로 책뒤의 역자해설을 참조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두가지는 잡혔는데 이 주인공 '나'가 심한 자아분멸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건 2010년 12,11일 스톡홀름 트로트닝가탄에서 벌어진 한 중동인의 자살폭탄테러였다고 한다.
google언젠가 포털 댓글에 쓰인 현재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의 이민 현황, 그에 따른 각종 사건사고, 갈등의 문제를 읽었는데, 그중에는 '대낮에도 이민자에 의한 강간이 성행'한다는 부분에서 '복지국가'유럽의 이면을 보는 듯하였다.
이 책은 그러한 북유럽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선진국'에 꿈을 안고 온 특히 유색인종들의 이민이 불러온 사회적 갈등과 차별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렇게 분명한 언급이 없다. 다만 감각적이고 낯선 단어사용, 현실과 상상, 상상과 환상 사이를 오가는 저자의 난삽한 의식, 무의식이 뒤범벅돼 ' 그런 이야길수도 있는 희미한 실루엣'정도를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1978년생인 저자는 북유럽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소설가, 극작가로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작품속'나'는 계속 자살테러사건에 옵세스돼서 가상 혹은 현실의 친구나 지인들, 심지어는 이미 고인이 된 조모와도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어디서든 유색인인 자신이 해당 범죄의 당사자로 지목받을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이렇게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에서의 유색인종의 삶은 '하시라도 범죄자로 낙인찍힐 수 있는' 처참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지명수배자와 인상착의가 유사한 사람이 다리 위에 서있다. 그러자 경찰 수신기에서는 마치 울부짓듯 큰소리로 그의 모습에 대해 흘러나왔고 경찰들은...그 남자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는데,"
이렇게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보장받을수 없는 입장에서의 이민자, 특히 유색이민자들의 일상화된 불안과 부적응을 이 소설은 띄엄띄엄한 대화와 지문이라 할수 있는 내러이션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름아닌 '의식의 흐름'을 변조 한것이라 할수도 있는데 (역자 해설) 조이스, 울프보다 한층 간결하고 비사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모순으로 가득찬, 의식의 흐름을 넘어선 의식의 포화, 폭발에 가까운 '아방가르드 문학'이기도 하다.
google문학의 사망, 그중에서도 소설의 사망선고는 오래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작품을 대하면 소설이라는 문학의 에센스는 아직도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되며, 쓰는, 읽는 고역 그 자체가 '고통스런 즐거움'으로 와닿는 순간이기도 하다.
참고로 작가 케미리의 부친은 튀니지, 모친은 스웨덴인이라고 한다.
역자가 스웨덴어를 전공한 현직 교수라 영어나 기타 언어가 아닌 스웨덴어를 그대로 직역해선지, 그만큼 단어와 문장, 소설의 분위기, 미장센이 신선하고 생경했음을 밝힌다. 한마디로 '낯섦미학'이 아쉽고 그리울때 케미리라는 젊은 스웨덴 작가를 떠올리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도서
요나스 하센 케미리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2024.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