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히가시노 게이고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달밤의 가든파티

by 박순영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정의, 의미, 의의는 저마다 다를수 있지만 그중에서 제일 두드러지는건 아마도 현실세계에선 차마 할수 없는, 어쩌면 불가능한 일과 행위, 사고를 마음껏 할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하면, 대리 만족, 대리 충족 정도가 될텐데...


지독한 염세주의자 게이고 역시 그런 포인트를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요즘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전과는 달리 오히려 가상세계보다 더 가공할 것이 많은것도 사실이어서 문득, 인간의 뇌세포가 더이상은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는 능력을 잃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저마다의 이해득실을 따지며 모여든 별장파티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범인 하나는 작품 서두에 일찍 밝혀진다. 이런 기법은 게이고 정도의 수십년 추리물의 내공을 쌓은자가 아니면 감히 쓰기 어려운 테크닉이라 할수 있다. 동시에 공범이 있을지 모른다는 단서를 제공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후더닛who done it'을 넘어선 '와이더닛why done it' 차원의 이야기를 예견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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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게이고도 100권이 넘는 추리물을 쓰다보니 어지간히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스토리의 주요 포인트들을 에피소드로 형상화하지않고 단순한 서술로 대부분을 처리해버린것인데 ,그럼에도 물론 이야기는 박진감있고 빠르게 ,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며 전개되고 종결된다.


인간의 '악의'란 어쩌면 상대의 '선의'를 나이브하게 받지 못하거나 그것을 악용할때 생기는게 아닌가 한다. 예전에 게이고의 <악의>를 인상깊게 읽어서 드는 생각일수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요약하면 '외로운 시대lonely era'라고 할수 있다 디지털이 인간을 맞먹는 것을 넘어 지배하려드는 이 시대에 인류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선한본성, 즉, 상호간 선의로 이루어진 관계 맺음과 형성,그것이 동력이 된 '살만한 세상'의 구현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현실은 점점 기계 (가상)의 노예화로 전락하고 전통적 모랄은 여지없이 붕괴되고 있다.


한번이라도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던 적이 있다고 장담할수 있는가?

이렇게 인간은 어찌보면 하루의 상당부분을 특정인에 대한 악의에 차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폭언, 폭행, 가스라이팅 ....우리를 괴롭히고 자존감을 하락시키는 유형 무형의 테러는 넘치고 넘친다. 그런 주체에 대한 염오의 감정, 그것이 어찌보면 게이고 문학의 '셀링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게이고는 인간에 대한 혐오는 물론 미디어로 대변되는 조작된 세계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자주 드러낸다.


"나는 그런 유의 방송은 절대 안보려고 하네. 연예인이나 학자 흉내를 내는 인간들이 마음대로 무책임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을뿐이잖아..."


그런가하면 국적을 초월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설정도 돋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빠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공부든, 운동이든, 예술이든 오빠의 성적을 볼때마다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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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런 방치되고 소외된 자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그 어떤짓을 하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것을 현실이라고 생각도 하지 못하는 차원에 이르게 된다.


"부모를 살해하는 계획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상 현실게임 이야기를 하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그렇게 현실적 모랄이 결여된 존재들에게 근친상간 시도 정도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닐수 있다. 그부분을 읽으며 느낀건 이런걸 더이상은 '일본적 정서'라고 치부할수 없다는 것이었다. 심심찮게 지면을 달구는 친족,지인,연인 간의 강간, 폭력, 가스라이팅 혹은 그들 사이의 불륜과 치정, 살인 등은 이젠 '글로벌'화된 정서며 행위가 아닌가 하는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인간은 정녕 '불치의 존재'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노작가의 예리한 물음에 나는 그닥 긍정적 답변을 내놓을 수가 없다...



참고도서

히가시노 게이고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북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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