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김만권 <외로움의 습격>

-론리 사피엔스, 쓸쓸한 유토피아

by 박순영

흔히들 말한다 '바쁘면 외로울 틈도 없다'고.

이 책은 어찌보면 이 단순한 문장의 낱낱의 해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미권에서 '외로운 lonely'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은 셱스피어라고 한다.

그런데 '외로움loneliness와 고독solitude'를 분리해서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후자는 '자신과 마주하는'계기가 될수 있지만 전자의 경우는 그 의미가 복잡해진다.


즉 '외로움'이란 타자와의 건실한 유대관계를 맺지 못하고 버려진 존재,라는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외로움이라는게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전반적 문제며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공산주의나 나치즘같은 전체주의가 발생하고 '능력주의'를 표방해 '일정 수준이 안돼서 밀려난 잉여의 존재들'을 호도하려는 우파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매우 두꺼운 분량의 책이지만 핵심은 초반에 몰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저자 김만권은 정치 철학자답게 외로움을 정치적으로 고스란히 , 매우 설득력있고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근래 들어 영국과 일본에서는 이른바 '고독부 장관'급의 각료를 두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도대체 누가 가장 위의 의미와 같은 소외되고 버려지고 기회를 박탈당한 데서 오는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가 하는 질문에 20,30대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한 도구로써 자살같은 다양한 자해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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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iness=bitterness라는 등식을 보여주면서bitter 속에는 '슬픈''화가난' 이라는 뜻이 함축돼있음도 암시한다. 즉, 초연결망으로 요약되는 21세기의 외로움은 이렇게 '분노로 이어지는 슬픔과 외로움'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즉 '사라짐' 즉, 존재의 '소멸'까지도 일컫는 용어라 할수 있다. 혹자의 말처럼 인간이란 그저 '걸어다니는 그림자 'walking shadow'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즉, 21세기는 디지털 문화가 예상을 뛰어넘어 빠르게 발전한 시기면서 동시에 인류에게는 가장 외로운, 즉, '외로운 인류 loneyl sapiens'의 시대가 된것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디지털문명이 시작될때 세계 많은 석학들은새로운 '기계문명이 인간의 삶을 고양시킬것'이라고 예견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우선, 디지털 문화에 익숙지 않고 기술도 부족한 계층은 그것을 마스터해서 '권력화'한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 예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즉, 소득 격차가 더 늘어났고 '사무직'을 위시한 중간 숙련자들의 일자리가 점점 소멸되면서 청소, 배달등의 비숙련 노동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런 우울한 현실을 '능력주의'를 내세우며 타파하자는 시도나 우파 포퓰리즘이 성행하지만 안타까운것은, '노력한만큼 보상을 받는'것은 꿈에서나,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하고 , 능력도 '세습'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그 예로, 우리의 엄청난 교육열을 들고 있고, 그렇게 특권을 세습한 '엘리트층'의 불안도 만만치 않다는 것인데 그 세계와 이어받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게 애면글면하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중산층이 와해된채 양극만 남은 두 계급은 서로를 적대시하는 배타적 모습만 보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진정한 인류애나 관계맺음따위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어진것이다.


gpt의 등장으로 인류의 외로움이 많이 사그라들것이라 주장한 지식인들에게 21세기 현재의 모습은,gpt가 사람을 대신하는 차원을 넘어 지배, 통제하려 하고, 심지어는 '잘못된 교감'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역시 기계에 불과해서 데이터로 움직이는 것이며 그 작업을 인간이 하는 것이니, 인간의 에고, 편견, 젠더문제 들이 고스란히 그 안에 들어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런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인공지능에 대항해 몇해전 헐리웃 작가와 배우들이 자신들의 고유 영역을 로보트에게 넘기지 말라고 파업까지 한 사례를 들면서 , 외로운 인류가 얼마나 디지털에 취약한지, 맹신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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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와 불신, 말뿐인 능력주의에서 도태된 다수의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특정정당의 기본소득과 기초자산등의 생애 주기 지원금까지 언급하는 걸 보면서 철학자로서의 나이브함이 그대로 유토피아로 연결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소외계층의 외로움은 사회전체, 아니 인류 전반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에는 공감할수밖에 없다.



자살은 사회, 공동체 전체가 벌인 타살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가'연결된'시대를 살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른것은 '책임여부'라는 부분에서 잠시 아득해졌다. 우리는 과연 타인을 얼마나 배려하고 관계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도 언급한것처럼 모든것을 얻은 엘리트계층도 그 상태를 유지, 세습하기 위한 외로운 싸움에 지쳐감을 상기한다면 외로움은 소외계층만의 전유물은 아닌것이다. 하지만, 비록 역기능이 나타나고 있다해도 이 눈부신 디지털 시대를 연것은 바로 인류였고 그래서 인류가 단합해서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려 한다면 그 외로움이 조금은 경감되지 않을까,하는 쓸쓸한 유토피아를 내 나름 그려보았다.




참고도서


김만권 e북 <외로움의 습격>

혜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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