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작은 전쟁
발칙하고 조금은 기괴하고 역설적인 글을 쓰기로 유명한 벨기에 작가 노통브의 이 책속에서 문학은 '실로 부패한' 짓거리로 요약되고 있다. 나역시 이런 생각을 곧잘 하곤 한다. 쓴다는 행위에 대한 또다른 시선이랄까?그러면서 그녀는 존재의 호전성을 상쇄시키는 '전쟁'은 얼마나 솔직한 '행위'인가를 되묻고 있다.
이 글은 어린시절, 외교관으로 세계를 떠돌던 부친을 따라 일본에 이어 중국 베이징 상리툰 외인지구에서의 3년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후기에서 노통브는 '일체의 모든것이 사실'이었다고 하는데, 그거야 작가만 아는것이고.
이책에서 주요 키워드 세가지를 체크해보았다.
일단은 서양인의 눈에 비친 베이징 , 즉, 공산권의 세계,
다음은 '전쟁'으로 집약되는 인간의 다면적 욕망과 자기환멸, 책임전가, 부조리함,
그리고 흔히 동성애로 시작되는 사춘기의 첫사랑, 나아가 사랑의 본질과 속성등 으로 나누어보았다.
굳히 하나를 더 한다면 중국, 중동등, 아시아권에 대한 서구인의 의식적, 무의식적 우월함이 포함될수 있다.
어린 '나'의 눈에 비친 베이징은 '더러움'그 자체였다. 그런 베이징 상리툰 외인지구에서의 3년은 '중국 안에 있으면서도 중국과 유리돼있는' 자금성같은 시간이었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작은 전쟁'을 벌인다.
"베이징 주변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속세의 서글픔이란게 어떤것인지 모르리라...사막은 아름답다. 하지만 들판으로 변모한 사막은...희미한 문화의 흔적들이 초췌한 모습...그곳에 사는 얼마 안되는 주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지구상에서 가장 황폐한 풍경"
5살의 벨기에 소녀는 베이징을 이렇게 회상하면서, 그럼에도, 중국에 발을 딛자마자 그곳에 '매료'되었다는 모순적 감정을 고백하고 있다.
중국내에 살면서도 철저히 '외인'으로 지낸 그 3년의 시간이 어쩌면 그녀에게는 '자금성'이 뿜어내는 황홀한 마비감과 정적을 선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안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흉내를 내며 연합군과 적군으로 나뉘어 작은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이란게 예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직사각형이 아닌 국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네팔에 선전포고를 하듯이 '근거없는' 증오감에서 비롯되는게 허다하고 그래서 또 무모하고 지독히 이기적이며 근거없는 것임을 비꼬아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전쟁은 어쩌면 '인간의 유일한 소일거리' 즉 '유희'일지 모른다고 표현함으로써 인간이란 존재의 '고독감''무용함'을 에둘러 묘사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있어 전쟁은 그리스도의 성배처럼 성스러운것이 아니었던가?"
어린 노통브에게 당시 중국의 문화혁명 따위는 안중에 있을리 없었기에 그녀는, 또래들은 작은 전쟁을 선포하고 서로를 포획하고 고문하고 항복하거나 항복을 받아내거나 하는 것에서 의미와 가치를 끄집어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보다 못한 어른들의 개입으로 그들은 '굴욕스런 화해'를 하면서 전쟁이라는 유일한 유희마저 잃게 된다....
또한 어린 '나'는 엘레나라는 이탈리아 소녀에게 마음을 뺏기지만 엘레나는 그녀에게 무심하고 도도하기만 하다. 그녀는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을 유발시킨 여신 '헬레나'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의 괴로움을 즐기는 지극히 '가학적'인물로 묘사된다.
이 해결할수 없는 고통스런 사랑의 감정을 어른(부모)은 '똑같은 무감함'으로 대처하라고 조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나'는 엘레나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음으로써 다른 또래들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렇게 어린 '나'는 베이징의 외인지구에서 '갇힌 자'의 삶을 살아내며 '인간의 가장 원시적 욕구'인 전쟁놀이에 몰두하지만 그것도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간섭으로 끝나고, 사랑하는 엘레나마저 결국 등을 돌리게 만드는 비극을 맛본다. 자신에게 천식이 있음을 알면서도 운동장을 여러 바퀴 돌게 한 가학적 엘레나였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그녀를 향한 사랑은 깊었던 것이고 그만큼 사랑이란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허구임이 드러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중국공산당으로 대변되는 '베이징 행정기구'의 비판을 비롯해 대 중국, 넓혀서는 중동까지를 포함하는 동양권에 대한 노골적 반감과 비하가 드러난다. 거대한 대륙 중국의 자금성같은 유리된 공간인 베이징 외인지구에서의 3년은 열정을 다한 첫사랑의 시도와 작은 전쟁이라는 잊을수 없는 추억을 안겨주고 그녀는 부친의 다음 행선지인 미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제2의 엘레나가 돼서 무수한 소녀들을 괴롭힌다.
노통브에 의하면 진정한 사랑은 '나의 파괴'로 이루어진다. 그만큼, 나를 다 내어주지 않는한,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자기를 포기하면서까지 타인을 선택할수 있는가?
이 문제는 거슬러 올라가 실존주의, 부조리 문학에서 해답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의 부조리함은 진정한 타자(성)의 부재, 그들을 향한 끝없는 동경, 그리고 그들과의 소통의 문제로 요약될수 있다.사랑은 그만큼 고독하고 자기 모순적이며 파괴적이고 폭력적임을 조금 뒤틀어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도서
아멜리 노통브 e북 <사랑의 파괴>
열린책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