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 <주유소의 여인>
-이별뒤에 오는 사랑
작가이름은 잘 몰라도 책 제목은 유명한 경우가 많다. 바로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한다.
이 <주유소의 여인>에서 슐링크는 '사랑으로부터의 도피'를 그리고 있다.
그는 우연히 마주친 한 주유소 여인에게 반해 자신의 아내를 배반하고 그녀곁을 떠난다. 그리고는 기다리기 시작한다.
같은 독일어권이어선지는 몰라도 슈테판 츠바이크의 작풍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둘다 사랑과 불안의 주제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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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 화자를 '나'가 아닌 '그'라는 3인칭을 쓴것도 주목할만하다. 이야기로부터 한걸음 떨어져있기 위함인데, 그것은 즉, 나의 욕정과 선택을 '그'에게 전가시키기 위함이라고 볼수 있다.
'그'는 '아내'와 애정이 식어버린, 섹스가 전무한 권태기를 살고 있다. 둘다 그것을 인지하면서도 결혼생활내내 지켜온 '의식'의 중요성, 즉, 서로를 배려하고 예의를 갖춰 가정을 지킨다는 그 '의식'을 저버릴수가 없다. 그러다 어느날 둘은 2주간의 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말은 안해도 아내 역시 식어버린 둘의 관계 복원을 원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그 여정에서 '그'는 주유소의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순간 그녀에게 끌리고 만다. 그리고는 갈등끝에 아내를 버리고 주유소여인을 얻고 싶다는 생각에 결국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서 내린다...그리고나서 그는 기다린다. 주유소여인일까? 아니면 자기가 버린, 버려진 아내일까?
어찌보면 다소 클래식한 분위기의 서술형태지만 인물의 내면적 갈등은 적나라할 정도로 현대적이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신앞에서 맹세를 한 남녀라 해도 어떻게 평생 서로만 쳐다보고 서로만 안을수 있고 사랑을 유지해 갈수 있단 말인가.
사람은 금기된 것에 대한 욕망, 즉, 약속을 파기하고픈 욕망에 평생 시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파국으로 치닫는, 프로이트적으로 말하면 '죽음에의 충동'에 시달리며 산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주위의 눈때문에, 사회의 규범때문에 때로는 '양심에 걸려' 그러질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속 '그'는 결국 그 일을 해낸다. 아내도 그를 붙잡지 않고 선선히 떠나가준다
그리고 그는 깨닫는다. 그가 진정 기다려야 할것, 기다려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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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링크의 단편을 택한건, 얼마전 그의 <책 읽어주는 남자>를 영화로 만든 걸 보게 된 때문이다. 영화자체도 잘 만들었지만 근간이 되는 원작이 궁금했고 , 처음엔 범죄소설로 시작했으나 휴머니즘과 인간의 나약함을 절묘하게 그려낸 현대 독일문학사의 거장이라는것을 알아냈다.
촘촘함 심리묘사, 답답하지 않은 전개, 몽상가의 내면과 현실적 선택.
우리는 과연 우리안의 욕망과 바람을 정확히 알고 있는가,의 문제를 이 작품은 던지고 있다.
내가 확신한다는 그것이 과연 절대진리인가,하는 회의...
환하고 새롭게 열리는 세상앞에서도 우린 시들어버린 꽃 한송이를 버리지 못하고 그 자리를 맴돌곤 한다.
이런 인간의 모순적 삶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이다.
참고도서
베른하르트 슐링크 e북 <사랑의 도피-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시공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