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문학과에 잠시 적을 두었던 적이 있다. 해당 학기 한국문학사 시간에 1980년대 대표작가를 하나씩 골라 발제하라는 교수님의 지시가 있었고 나는 망설일것도 없이 윤후명을 적어냈다. 그리고는 다음시간인가, 다른 작가를 고르는게 어떻냐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다른 작가로 교체해서 발표했지만 그만큼 내게 윤후명이라는 작가는 비록 '메이저계열'의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어도 개인적으로 크나큰 울림과 미학을 제공한 작가다.
시인으로 출발한 작가여서 그런지 그의 문장들은 기나긴 산문시처럼 읽힌다. 그는 늘 '지금 이곳' 내지는 '서울'을 혐오해서 '떠나고 싶어하는' (방랑하고 싶어하는)뿌리뽑힌 인간이 되고자 발버둥친다. 그 여정에서 그는 여러 여자를 만나 그녀들과 형형색색의 길고 짧은 연애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연애들은 늘 아련한 이별로 마무리된다.
사는일은 '그리움을 찾아 헤매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는 서울을 떠나 연변에 가도, 그곳에서 백야의 러시아 거리를 헤매도 헛헛한 마음의 공백은 채워지질 않고 그럴수록 떠나온곳에 대한 회한, 스쳐간 여자들, 그에 따른 반복된 이별에 , 두서없는 그리움에 멀미를 느끼게 된다.
'남자 여자 만나서 지지고 볶는게'사는거지 뭐 별다른건가,라는 그의 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여기서도 반복되고 , 그래서 거대서사가 유행하던 80년대 대표작가에 들지 못한 거라면 달리 할말이 없지만, 사실 남녀관계, 그 다양한 변형과 허위의식 속엔 다양한 삶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는것도 사실이다.
혹자는 그를 '자멸파' (책 해설)계보에 넣기도 하지만 이런 '소멸'의 그림자 내지는 흔적은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나타난다. 그것도 대부분이 늘 자신이 딛고 서있는 곳에 발붙이지 못하는 뿌리뽑힌자가 낯선공간이나 시간속에서 묘령의 여자를 만난다는 설정을 통해서이다.
그의 단편중에 <팔색조의 섬>이라는 작품엔, 환상과 신비로움이 뒤엉킨 비현실적 공간에서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현실세계에서 다시 부딪친 둘은 서먹한 타인으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는 내용이 그려져있다. 특이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연애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프레임속에 그는 '핍진한 현실'에 진저리를 내며 기대와 설렘을 안고 타자 (여인)를 만나 관계맺기를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존재,그 존재의 허무함, 무위를 그려낸다.
미문美文에, 늘 여자가 등장하고, 흔들리는 존재, 등등의 반복되는, 내지는 자기복제식의 이야기에 그래도 식상하지 않는 것은 비슷한 이야기들을 놀랍게 변주하는 그 능력과 상상력에 기인한다 하겠다.
"나는 사랑에 집착하는 마음을 읽고 있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막막해졌다. 사랑하는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죽고, 그 흔적을 밟는 여자가 있다."
그런 그녀와의 동행은 서글프고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근저에는 생명체의 짙은 자기 모순이 깔려있다고 할수 있다. 살고자 하는 욕망만큼이나 죽음에의 욕망이 그것이다. 굳이 프로이트의 '죽음의 본능'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삶을 열망하는만큼 소멸을 애타게 기다린다. 다만 그 기다림의 행태가 저마다 조금씩 다른 것뿐이다.
그가 이 중장편에서 기술하고 있는 '협궤열차'는 그의 문학에서 주요한 테제로 자리한다. 그것은 '더이상 지상에는 없는 소멸된' 이미지고 스러진 생명이다. 그런것들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은 마구잡이로 뒤엉켜 살아있는 자들을 괴롭힌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그가 프랑스작가 르 끌레지오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돎에의 바람' 그러나 그렇게 가닿은 '낯선 곳'에서 조차 안식을 찾지 못하는, 존재의 영원한 부유浮遊. 그것이 윤후명 세계를 집약하는 또다른 말은 아닐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남녀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삶의 이런 이율배반적 속성이라고 감히 요약해본다.
그렇다면 제목의 '외뿔'의 의미는 존재의 고독, 설움, 미망, 불안 , 설렘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수 있을 것이다. '새벽을 가르며 걷는 일각수의 꿈' 그것이 아마도 이 작품의 또다른 함의가 될것이다.
참고도서
윤후명 e북 <가장 멀리 있는 나> 문학과 지성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