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간은 치유하지 못한다>

상처는 무뎌질뿐 사라지지 않는다.

by 박순영

흔히들 말한다 . 모든건 시간이 해결한다고. 그 어떤 모진 고통과 상처를 받아도 시간이 흐르면 다 아물고 없어진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 그건 어쩌면 육신의 상처에만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칼에 베인 손가락 상처야 연고바르고 밴드 붙이고 소염제 먹고 하면 어느 순간 딱지가 앉고 얼마후엔 저절로 떨어진다 .그럼 언제 그랬냐는듯이 그 부위에 새살이 올라오고 감쪽같이 상처의 흔적은 사라진다.


하지만 마음이 받은, 정신이 감내해야 했던 상처며 고통역시 시간이 해결해줄까? 난 이 물음에 회의적인 답을 낼수밖에 없다. 시간이 흐른다고 그(그녀)에게서 들은 모진말과 거친 행동들이 잊혀지지는 않는다. 그(그녀)가 한 기만과 배반의 행위는 시간이 흘러도 시퍼렇게 살아 내 심신을 갉아먹고 잠식한다.



그러니 애당초 상처받지 않는게 가장 현명하리라...

혹자는 그런다. 시간은 모든걸 치유하지 못해도 그 강도는 줄여준다고.

그말이 다 틀린건 아니지만, 특정 기억은, 그것이 너무나 혹독하고 잔인해 아무리 오랜시간이 지나도 그 통증이 줄거나 감소되지 않는다.



삶이 그렇듯 관계 역시 상처를 기반으로 성립한다. 우리가 관계를 시작함으로써 상처의 give and take는 시작된다고 할수 있다. 평생 내짝인줄 알았던 그(그녀)가 어느날 홀연히 돌아서며 '니가 지긋지긋했어'라고 하질 않나, '너는 내 타입이 아냐. 노력했지만 안됐어'라면서 등을 돌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우린 왜 유아독존 혼자 존재하지 못하는가? 외로움때문인가? 무엇때문에 우린 타인을 필요로 하고 그들의 존재를 나와 연계시키려 하는가.



내 경우에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나 기만의 기억이 호의와 선의보다 더 많았던 거 같다. 그래서 지금 겨우 손가락으로 셀수 있을 정도의 이름들만 내 주소록에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상처를 주려고 한 말이 아닌데...라는 말을 자주들 한다. 그건 내 의도가 아니었어,라고도 한다. 하지만 우린 늘 상처받고 또 그에 대비해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철 멘탈이 될수밖에 없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나만 해도 그야말로 예민한 susceptible한 타입이라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한다. 그러고나서 다시 확인한다 '타인은 지옥'임을.



이러면서도 우린 톡을 하고 sns를 하고 메일을 하고 또 전화를 한다. 상대가 딱히 반기지 않는데도 자신의 이야기를 줄창 해대는가 하면 상대가 피곤해 하는데도 계속 상대의 안부를 캐묻고 내 신세한탄을 해대고.그러다 결국은 손절당하는 일까지 생긴다. 왜 이런 어리석은 stupid 짓을 계속 하는걸까? 그건 아마도 인간 역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리라. 관계속에 있을때 비로소 보호받고 평온한 느낌을 받는, 소속감이 주는 일체감에 연연하기에.





그렇다면 혼자 있으면 상처받을 일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는게 내 결론인데 그것은 우리는 사유하고 기억하고 반추하는 능력과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한번 받은 상처와 고통의 흔적은 아주 오랜기간 현재 진행형으로 나를 괴롭히고 그(그녀)를 떠올려 원망하게 만든다. 이렇듯 시간이 흐르면 다소 둔감해져도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게 상처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외로운걸 선택했다. 덜 상처받기 위해. 여기서 더 받으면 다신 일어 설 수 없을것 같기에...시간이 흘렀건만 그가 준, 그들이 던진 학대와 배반이라는 돌멩이는 여전히 나를 향해 날아온다. 이제 다 털고 홀로서기를 하자. 다소 늦은 감이 있더라도...

이렇게 다짐하건만 하루에도 몇번씩 나는 톡을 확인하고 전화를 기다린다. 상처중엔 내가 내게 내는 상처도 있다. 이게 가장 참혹한것인데 이 상처는 설령 영원의 시간이 흐른다해도 낫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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