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별연습>
우리가 함께 하는건 헤어지기 위해서다.
내가 본격적으로 살림이라는걸 하지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가전 제품에 둔감한 편이다. 보통 10년이면 바꾸는 냉장고도 거의 30년째 쓰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대포 소리가 나서 자가다 놀랄때도 있다. 그런가하면 세탁기도 거의 골동품이 다 된걸 2년전에 큰맘먹고 바꿨다. 뿐만 아니라 오디오도 고장났고 요즘은 새로 산 전기 밥솥이 문제다.
녀석은 올때부터 한쪽이 찌그러져 오더니 거의 생쌀밥을 해냈다. 난 혈당수치가 높아 현미를 잔뜩 넣어 먹어서, 녀석이 잡곡은 못하나보다, 하고는 그 다음엔 하룻밤 불려서 했더니 완전 죽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다음에도 몇차례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모양만은 밥처럼 나오는데 하루만 지나면 온통 눌러붙어 원치도 않는 누룽지 천국이다.
하기사 송비까지 3만원짜리가 오죽하랴 싶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싶다. 그러나 지인이 하는 온라인 스토어에서 주문하거라 불평도 못하고 꾸역꾸역 먹고있다.
살림에 신경쓰는 이들은 하나에 30만원이 훌쭉 넘는 다양한기능의 밥솥을, 것도 밥맛이 좋다는 압력 밥솥을 쓰는것 같다. 그만큼 가족의 먹거리 , 입맛을 중시한다는 뜻이리라 . 그런거보면 확실히 나홀로족들은 그런면에서 대강대강인 듯하다. 모른다. 나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이 시작되면 밥솥부터 바꿀지...
해서 나는 전자레인지에 덥히면 되는 즉석밥을 몇개정도 시켜볼 셈이다. 나야 죽을 먹든 누룽지를 물에 말아먹든 상관없지만 어쩌다 손님이라도 왔는데 저 지경이면 난감하지 않은가.
돌아보면 나역시 전업주부 흉내를 낸 적이 있다. 잠깐 결혼생활이란걸 하던때 그랬고 엄마가 계실땐 최소한 끼니만은 내가 신경썼다. 해서,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도 이따 들어가면서 시금치를 사나, 북어국을 끓이나 뭐 그런 생각들을 하곤 했다. 그리곤 집에 와서는 팔 걷어부치고 주방부터 들어가곤 했는데 이젠 다 지나간 일이다.
엄마도 가시고 혼자 남고나니 이젠 밥이고 뭐고 죄다 귀찮고 어떤때는 그런 데 시간쓴다는게 시간낭비로 여겨진다. 그렇지 않거늘. 잘 먹는게 얼마나 중요한데...
지난겨울은 온통 피자, 팝콘, 콜라 등 정크 푸드로 때우다보니 그나름 입이 달달하고 설거지도 안나오고 밥솥 걱정도 할 필요가 없어 간편하고 좋았다. 그 결과는병원행이 됐지만..
전남친이 밥솥이 오래 돼서 밥이 잘 안된다고 불평을 해대서 큰맘 먹고 전기압력밭솥을 보낸적이 있다. 어? 밥솥이 말을 하네?라고 톡을 보내왔던 그가 떠오른다. 나야 2,3만원짜리를 써도 그에겐 제법 거금을 들여 보낸 그 밥솥을 보면서 그도 가끔은 나를 생각할까 궁금할때가 있다. 쌀을 안치고 물양을 가늠하고 뚜껑을 덮고 취사버튼을 누르는 그를 상상해본다. 지금부터 취사를 시작합니다,라는 그녀의 목소리까지..
우리가 상대에게 특히 연인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주고 남기고 하는건 어쩌면 이별에 대비해서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날이 오면 그걸 보면서, 그걸 떠올리며 나를 기억해달라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을 평가절하하지 말라고.그렇게 안보이는 끈으로나마 서로 연결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 기억속에서 화해하고픈 바람,욕망들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도 성립하는데, 모디아노의 말처럼 우리가 함께 하는건 '언젠가 헤어지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위해서. 그것이 삶의 속성이므로.
기억은 고약해서 제일 예민하고 취약한 부분을 건드려 사람을 낙담시킨다. 싸구려 밥솥 하나에도 연결되는 사유가 있다는게 조금은 부담스럽다.
아무튼 우리의 관계는 끊어졌어도 그에게 간 내 마음은, 그 밥솥만은 오래오래 고장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