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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Sep 13. 2024

영화 <체인질링>

-바꿔친 아이


우리도 그렇지만 미국도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의 부패와 정치에의 예속이 심하다는걸 확인하게 해준 영화가 이 <체인질링>이다.

매우 긴 영화라서 중간에 두어번 끊어보긴 했어도 지루하진 않을만큼 탄탄한 각본과 미장센, 그리고 강렬한 스토리라인이 인상적이었다.



1928년 LA에서 벌어진 실화를 영화화  한 것이라고 한다.

전화국의 매니저로 일하는 콜린스는 어느날 아들을 잃어버리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그러다 5개월후 아들을 찾았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기차역으로 나간 콜린스. 하지만, 그 아들은 콜린스의 아들 월터가 분명 아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경찰에게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경찰은 이미 대대적으로 언론홍보를 해놓은 터라 무조건 '시인'을 시킨다.

그렇게 가짜 아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온 콜린스, 그러나 여러모로 그 아이는 아들이 아닌게 틀림없었다...계속 경찰에 탄원과 항의를 하자 이번에는 콜린스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켜 고초를 겪게 한다..

결국, 주위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나오게 되고, 그 즈음, 한 농장주가 아이들을 납치해 죽인다는 제보를 받은 경찰은 농장주와 함께 지내는 아이를 체포해 진상을 알게 되고 그중에 월터가 끼어있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러자 다급해진 경찰은 실종된 월터의 생사여부보다도 자신들에게 쏟아질 비난, 정치권에서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결국 자신들의 과오를 시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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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부분은 영화를 보며 확인하길 바라지만, 여기까지만 해도 당시 LA 경찰의 무능과 부패, 정치와의 결탁이 얼마나 심했는가가 여실히 보여진다. 그리고는 '내아들이 아니다'라고 항의한 대가로 '경찰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는'이유로 콜린스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닌다.


아이를 잃은 모성에 동정하는 여론은 아무 힘도 없는 이웃들뿐이고, 그외 조금이라도 권력과 지킬것이 있는 부류는 그 일로 인해 자신들의 체면이 깎일까봐, 책임이 돌아올까봐 전전긍긍할뿐이다.

이렇게 영화는 헐리웃 스타일의 디테일하고 친절한 묘사속에 안젤리나 졸리라는 걸출한 배우를 탑으로 내세워 관객의 몰입도를 한껏 치켜 올렸다.

졸리는 아들을 잃은 중년의 여성 역할에 충실하게 임했고 이스트우드의 침착한 연출도 돋보였다.


이 영화는 다름 아닌 '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 내지는 약자에 관한 영화'라고 할수 있다.

사건 해결에는 관심도 없고 대타를 내세워서라도 빨리 사건을 덮고 언론플레이만 하고자 하는 경찰의 부패는 극에 달했다고 할수 있다.

우리중 누가 과연 지금의 경찰이나 공권력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공권력의 무자비함은 이미 한세기전 미국에서는 만연한 풍조였음을 이 영화는 소상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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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는 나아지지 않고 소수의 권력자나 위정자들에게 휘둘리는가?

이 문제가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할것이다.

'열린 결말'로 끝나는 이 영화는보는 이로 하여금 낙관론보다는 슬픔과 먹먹함을 안겨준다.

내 자식을 잃어버리고 헤맨다는 것만큼 괴롭고 청천벽력같은 일은 없을것이다.

그것마저 공권력은 자기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들의 노고라는 측면을 너무 폄훼한다는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이지만...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의 현실이 이렇다면 그외의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하는 깊은 회의에 빠지게 하는 영화다.

물론 한세기 전의 일이고 유전자검사같은 진보된 수사도구가 없을때의 이야기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같은 일을 당했다 해서 크게 다를것인가에 난 그닥 긍적적인 답을 내놓을수가 없다...




참고영화  

타이틀 <체인질링  changeling> 미국, 2008

감독 클트 이스트우드

주연 안젤리나 졸리, 외

러닝타임 1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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