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지난 봄 우리는>

아마도 기억속에서 ...

by 박순영

작년 이맘때 daum포탈에 열어놓은 내 까페에 그가 불쑥 난입해 닉네임 뒤에 숨어있는 나의 정체를 물은적이 있다 넌 누구냐고.

나는 매일 아침 신간 위주로 읽을거리를 올리는데 그 며칠전 그의 작품을 올린걸 그가 검색도중에 우연히 본것이다. 그는 내가 잠시 적을 뒀던 대학원 문학과 2년 선배였다.

내가 대답을 안하자 그는 '혹시...박...이냐?'라면서 내 실명을 거론했다. 난 뜨끔한 마음에 그의 회원정보를 클릭해 이메일을 보냈다. '맞아요. 나, 박 아무개고 제발 이 까페에서 나가줘요 . 선배 있음 불편해요'라고.



나혼자 글을 올리려고 만든 까페가 아닌데도 언젠가부터 나 홀로방이 되었다. 해서 회원들이 죄다 증발했나 보면, 여전히 100명이 넘는다. 그래서 제발 글좀 같이 올리자고 읍소 해도 올리는 이가 없다보니 내 독백방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나 홀로 지껄이자니 정신나간거 같고 그렇다고 까페를 닫자니 거의 20년된 자료들이 아깝고 해서 그냥 문만 열어놓은 상태다. 즉 개점폐업 상탠데...



이메일을 열어보라는 내 댓글을 확인하고 그는 곧바로 메일을 열더니 내게 답장을 했다. 물론 반갑다는 내용이었지만 내게 남아있는 그에 대한 이런저런 안좋은 기억과 육감 같은것이 작용해 난 그를 까페에서 강퇴시키고 이메일도 막았다.

그리고는 그를 잊고 지내다 초여름 어느날 문득 내가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어 막았던 그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며칠후 외출하고 들어와 컴을 확인하는 순간, 근 한달만에 그의 이메일이 와있는게 아닌가. 왜 자기를 막았냐고 원망하는 내용의.



해서, 난 달리 변명을 하기도 그렇고 해서, 세월이 너무 흘러 서먹해서 그랬노라 했다. 그랬더니 그는 언제 시간되면 시내에서 한번 보자고, 술사주겠노라고 했다.


그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란 지극히 그의 사적인 부분이라 얘기할수가 없지만, 아무튼 난 그때 그를 차단해야 겠다는 육감을 믿어야 했다.

지금 난 연이 다한 그의 톡을 여태 없애지도 나감처리도 못하고 계속 띄워두고 있다.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송사를 대비해 증거차원의 글들이 그 안에 다 들어있으므로...

그역시 마찬가지로 나를 없애지 못하고 띄워놓고 있을것이다. 같은 이유로.



봄바람 타고 내게 날아든 오랜만의 인연이 결국은 악연으로 판명되기까지 난 온갖 마음고생을 다 해야헸고 재물적 손해까지 봐야했다.

그러다 얼마전 이런 글귀를 보았다. '배은망덕한 자에게는그만 베풀고 니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그와 연이 다 하던 날 내가 이렇게 톡에 썼던게 기억난다. '내 생의 최악의 실수는 그때 차단을 푼거'였다고.

그러자 그는 '이제 막 가는구나'라며 화를 냈다. 언젠가도 썼지만 가끔은 자신의 육감gut feeling을 믿어야 할때가 있다. 상대가 아무리 달콤하고 그럴듯한 말로 나를 유혹해도 넘어가서는 안되는 경우라는 게 있다 살다보면.



이런 흉한 몰골만 남기고 끝난 인연이지만 그를 생각하면 아스라히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대학원시절, 학과사람들에 섞여 그의 오피스텔로 몰려간 적이 있다 . 거기서 성탄 전야를 보내기로. 그는 귀찮을만도 한데 친절하게 술을 사주고 오피스텔을 오픈해줬다. 더러는 침대에 쓰러져 잠을 잤고 나는 오도카니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내다봤다.. 그때 내가 본 신도시의 불빛은 그야말로 꿈에 본듯 조금은 서럽게 그러면서도 영원처럼 내 안에 스며들었다.





얼마전 천변을 걷는데 벚꽃이 피어있는걸 봤다. 내가 사는 정릉은 북쪽에 위치해서 사실 봄을 그리 만끽할수가 없는데 일찌감치 고개를 내민 녀석을 보면서 그로부터 벌써 1년이 흘렀구나, 했다...

아무리 선하게 살려해도 생은 가끔 이렇게 악역을 줄때가 있다. '고go' 사인과 함께 싫든 좋든 내게 주어진 역할 role을 해내야 한다 설령 그게 죽음과 같은 통증을 유발한다 해도. 때로는 맞서야 하고 적극적으로 방어 하고 또 공격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내게 하나의 희망이 있다면 그때 그의 오피스텔에서 본 불빛인데 그것이 전해주던 그 따스한 온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믿는다.

생은 가끔은 우리의 의지를 초월해 전혀 다른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우린 아마 화해할것이다 기억속에서, 서로의 부재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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