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조금은 꾸미자>

남자도 메이컵 하는 세상에....

by 박순영

혼자지내고 집밖에 안나가면 남과 부딪힐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다. 그저 나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 편안함에 자기만족이 더해진다. 그럼에도 먹고 살려면, 혹은 외로워서라도 문열고 나가고 그렇게 타인과 마주하고 그러다보면 지적받고 상처받는 일이 다반사다.



길건너 단골 정육점이 있다. 가면 고기만 사는게 아니라 두런두런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코로나 초기에 지급되던 저소득계층에게 주던 지원금이 있던 시절, '사장님은 받으셨어요'라고 하면 그는 씩 웃으며 '안 주던데요'라고 했다. '사장님 부자네'하고 부러워하면 그는 대답대신 이마의 땀을 닦으며' 저도 몰랐거든요'하며 은근 으스대곤 했다.

그러다 얼마전에 들러 이사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에 집 빼면 조금은 언니한테 주려고요,했더니 발끈해하며, '지금 힘드시잖아요. 근데 왜'라고 반박하는 것이다.



난 동네뿐만 아니라 시내에 나갈때도 차림새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예전 방송일을 할때 어느 조연출은 '또 의상연결이네?'하고는 내 행색을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말거나...



아무튼 정육점 사장 눈에도 행색이 변변치 않은 내가 어지간히 못산다 여겨진거 같다. 그러니 그런 말을 하지. 별다른 뜻이 없음에도 난 기분이 상했다. 내가 그리도 없어보인단 말인가.

그런가 하면 며칠전에는 약국에 들러 처방전을 내고 기다리는데 약사 하나가 날 물끄러미 보더니 생수 한병을 건네는게 아닌가. 한병에 700원이라고 분명히 표시돼있는걸..

내가 생수 한병도 못사먹는다고 생각했나?


하루키 에세이에서 읽었는데 그역시 행색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 어쩌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까페에 가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주인들은 그를 구석진 자리에 앉힌다고 한다. 괜히 잘 보이는 데 앉혔다가 영업방해나 받을까 싶어..



대학 신입생 시절 교내 미팅이니 해서 다른과 남학생들과도 친하게 지낸적이 있는데 어느날밤 그중 하나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난 니가 걱정이야.. 여자애가 꾸밀줄도 모르고'.

그말에 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친구는 꽤 점잖은 편이었으니 그 전화를 하기까지 꽤 오랜 기간 고민했으리라..



이렇듯 우리 사회는 그사람의 차림새로 그를 판단하는 일이 흔하다. 지당한 얘길수도 있다. 그런데 난 왜 그렇지 않을까, 곰곰 생각해본다. 난 상대가 아무리 추레한 차림새라도 섣불리 그런 판단을 내리지 않는데.


사회적 동물인 이상 어느정도 타인의 기준을 존중하고 그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그닥 변화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러고 나가봐야 초로의 나를 눈여겨 보는 이도 없거니와 그렇게 눈에 들어서 좋은 일도 없고.




그래도 언제부턴가는 일이나 기타 이유로 누가 나를 좀 보자고 하면 은근 신경이 쓰인다. 마땅한 옷도 없는데 옷장을 열어 기웃거리기도 하고 웬만해선 하지 않는 화장도 하고 머리도 좀 다듬어보고...최소한 신경은 썼어요,정도의 암시랄까,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알뜰한 함의랄까, 하여튼 그런 인상을 주려고 조금은 노력한다.



언젠가 인사동 입구에서 여고동창을 만나러 나간 적이 있고 분명 먼저 와있다고 했는데 보이질 않았다. 단지 만나기로 한 지점에 할머니 한분이 손차양을 한 채 서 계신거 외엔...해서 다시 전화를 해서, 너 맞게 가있는거야? 했더니, 너 지금 나보고 있잖아,하는 거였다. 그제서야 그 할머니가 동창임을 알던 순간의 충격이란.앞머리가 다 새었는데도 빅 플러워 문양의 원피스가 언발하면서도 신경 쓴 티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었다. 난 반바지에 티셔츠, 그리고 선캡 차림이었는데.


이젠 남자도 메이컵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혼자 부쉬맨 생활을 할게 아니면 타인의 눈도 조금은 의식하고 그에 맞춰주는게 에티킷이 된 세상이다. 물론 유독 여성에게 그걸 더 강요해서 젠더갈등을 낳기도 하지만, 정돈되고 신경 쓴 매무새는 그만큼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는 말도 되기에 그렇다. 해서 나도 조만간 싸구려라도 눈이 즐거우면서도 단정해보이는 옷을 좀 사려 한다. 정기적으로 미장원에 들러 머리손질도 할 생각이다.


특히 처음 보는 사이라면 첫인상으로 상대를 가늠할수밖에 없다. 그의 인격을 아는것도 아니고 취향을 아는것도 아닌바엔 차림새로 그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첫인상은 평생 간다고 한다.

허구한날 조거팬츠에 티셔츠만 살게 아니라 나도 이젠 플라워 문양의 원피스 한벌쯤은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죽을땐 돈도 그 무엇도 가지고 갈수 없지만 살아남은 이들에게 나에 대한 기억은 남기고 가지 않는가, 조금은 화사하고 정돈된 나로 기억되길 바란다.




이전 05화에세이 <사랑의낙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