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진짜 버려야 할것>

그에게 간 내 마음과 흔적들...

by 박순영

늘 분리배출을 할수 있게 해놓은 아파트가 늘고 있다는데 우리 아파트는 1주에 한번 금요일로 정해놓고 이날만 버려야 한다. 해서 그전날인 목요일 오후면 이것저것 버릴것을 챙기는데 문득, 왜 난 정작 버려야 할건 남기고 애매한것만 버리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밑 깊숙한 곳에서 어느날 굴러나온 그의 양말 두짝을 보며 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게 여기 숨어있었구나,하고. 문제는 내가 그걸 빨아서 여태 내 옷장 한귀퉁이에 보관중이라는 것이다. 버리자, 마음먹고 서랍을 열었다 다시 닫고를 수도 없이 했다.


우린 정작 버릴걸 버리면서 사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거 같다. 그깟 페트병이나 우유팩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내 안에 의뭉스레 똬리 틀고 있는 네거티브한 기억들은 언제 버릴것인지 기약이 없다. 말로야, 글로야 호기롭게 다 털고 살자, 버리고 살자면서도 나역시 기억의 동물인지라 그러질 못하고 있는 셈이다.



기약없지만 집이 나가는대로 물건의 절반이상을 버려야 한다. 아무래도 좁혀 갈 확률이높아서. 그중 그에게서 받은 책 몇권이 있다. 어딘가 틀어박혀 있을것이다 .그걸 난 과연 버릴 용기가 있을까 자문해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유품정리를 하다 평소 자주쓰시던 붓글씨붓이 나왔다. 그거야말로 대대로 전해져야 할것을 난 몽땅 버리고 말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더니. 그래놓고 얼마나 엄마에게 미안하던지. 그래서 아예 장식장 한 귀퉁이를 엄마 유품 보관함으로 정해놓고 어쩌다 엄마물건이 나오면 그곳에 넣어둔다.


이렇게 버릴것,간직해야 할것조차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여태 햇갈려한다. 그래서 엄마 납골당에 갈때는늘 미안한 마음이다. 국립 호국원 꼭대기에 안치돼서 난 올라가는 데만 30여분이 걸리고 올라가서 또 사다리를 놓고 맨 윗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까치발을 하고 엄마 영정앞에 꽃을 놓으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엄마 나 왔어..하고는 한 5분도 안돼 사다리를 내려온다. 벌써 가니? 하는 엄마의 아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지금도 그때 엄마 붓을 몽땅 버린게 여간 죄송한게 아니다. 값으로 쳐도 좀 될텐데...한 10여년전 갑자기 삶이 막막하고 돈은 안벌리고 할때 애먼 엄마만 괴롭힌 적이 있다 난 틀렸어. 다 끝났어, 하면서. 이 얘기는 그에게서 자주 듣곤 하던 말이기도 하다. 그럼 엄마는 쓸데없는 소리, 라며 혼쭐을 내셨다. 그 덕에 난 싸구려 감상에 빠지지 않고 어찌어찌 위기를 넘겼고 만약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으면 난 그대로 베란다로 걸어나갔을 것이다.




내게 위안과 힘이 돼준 엄마가 2년에 걸친 치매끝에 가셨음에도 난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엔 육체만 살아 움직이지 내 속은 온통 고갈돼버렸다. 그리고는 그의 흔적들을 마치 보물인양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야 냉정한척 위장해도 내 마음 깊숙이 미련이란게 남아있지 않고서야...



그래도 정리할건 하는게 맞는법. 집안에 쓰레기가 쌓이면 악취는 자연히 따라오는 법이다. 내 안을 쓰레기로 채울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어차피 이사도 있고 이제 나를 좀 솎아낼 생각이다. 진정 버려야 할것과 간직해야 하는것을 제대로 분류해 분리배출 할 생각이다. 그렇게 하는게 떠난이에게도 좋으리라. 그역시 내가 자기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면 매우 찜찜할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간 나의 마음과 흔적은 어떻게 됐을까, 가끔 궁금하지만, 그건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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