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그녀의 행복>
여전히 센터를 고집할수 있는 그 배짱...
남사친 중 하나는 지금 a시 호수 근처 대형 오피스텔에 세를 살고 있다. 원래는 작년말이 기한이었는데 요즘 세입자 구하기 어렵고 해서 올연초에 겨우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삿날이 6월 중순으로 잡혔다고 한다
집안 대소사며 경제권을 그 와이프가 다 처리하는지라 자기는 그냥 손놓고 있지만 자기가 보기에도 와이프가 이사문제에 있어 너무 천하태평이라며 은근 불안해한다. 해서 나 역시 a시를 이사지로 잡고 있어 내 매물을 보면서 가끔 친구 조건에 맞는 매물을 캡처해 보내주기도 한다.
어제 왔길래 마눌님 잘 계셔? 했더니 지인이 제주도 살아서 놀러갔다고 한다. 대단해..이사할 생각은 안하고, 하면서 나는 은근 흉을 봤다. 어쩌다 자기가 이사 이야기라도 꺼내면 와이프는 아직 멀었는데 웬 호들갑이냐고 면박을 준다고 했다. 에그, 잡혀 사는군, 하면서 나랑 같이 보자, 하고는 어제 컴을 켜놓고 a시 일대를 샅샅이 뒤져봤다. 막연히 어디 정도는 되겠지, 했던 남사친은 그곳 일대가 gtx니 재건축이니 해서 집값이 들썩이는걸 확인하곤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이러다 여기 못사는거 아냐? 하면서.
오피스텔이야 아파트에 비해 값이 저렴해서 융자를 좀 끼고 지금 오피스텔에 들어갈수 있었지만 이자부담이 너무 커서 이사를 결정했고 이번에 옮길때는 융자없이 가진돈만으로 움직이려 하는데 그 돈으로 a시 중심부는 가당치도 않았다. 야 이거 큰일이네..남사친은 모니터화면을 뚫고 들어갈 기세로 매물들을 살펴봤다. 내가 뭐랬어. 지금 놀고 있을 때 아니라고 했잖아, 하면서 나는 상처에 소금을 마구마구 뿌려대며 놀려댔다.
와이프는 평수를 줄이더라도 방 셋은 돼야 한다고 고집한다고 한다. 대기업 지방 근무를 하는 아들이 일주일에 한번씩 올라오면 잘 곳이 있어야 한다는게 그 이윤데, 하룬데 거실에서 재운들...하며 나는 혀를 찼다.
남사친은 메이저 방송국 출신으로 첫 결혼에 실패하고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아이둘을 낳고 줄곧 럭셔리하게 살아오다 개인사정으로 큰 빚을 안게 돼 살던 집이며 소유하고 있던 상가를 다 처분하고 지금은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그러면 그에 맞게 와이프의 눈높이도 낮아져야 하거늘, 그 마눌님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는듯하다. 남의 가정사에 내가 끼어들 필요야 없지만 그래도 남의 뒷담화는 즐거운지라 이따금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 마눌님 흉을 보곤 했는데 친구하나가"야, 그렇게 고집 부리니까 지금도 력셔리하게 살잖아"라며 쐐기를 박았다.
그말을 들으니 한편 또 그런가, 싶기도 했다. 그녀에겐 심통부리고 바가지 긁을 남편이며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나와는 처지가 다른것이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전부인지라 어떻게든 그 안에서 살아야 하지만 그녀에겐 고집부리고 땡깡 피울 대상이며 권리가 다 있다는걸 난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 와이프를 둔 덕에 지금쯤 남사친은 빠듯한 보증금에 맞는 매물을 찾느라 아마 눈이 빠지리라...
흉을 보는거 같지만, 난 그 마눌님이 조금은 부럽다는 얘기다. 내게는 없는 걸 다 가졌으니. 그러니 남편 눈알을 튀어나오게 해놓고 자긴 제주도 꽃구경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와이프 올때 공항으로 픽업 나가야 돼"라며 투덜대는 남사친의 표정이 결코 싫어보이진 않았다. 저게 30년 함께 한 부부들의 속내구나, 싶었다.
어쨌든 그집이나 나나 이사는 갈것이다. 요즘 다시 출렁이는 시세를 보여줬으니 남사친도 와이프와 타협을 보려고 할것이다 최소한 방셋에서 둘 정도로. 그리고 역세권도 포기할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둘 다 이 난국에 이사를 무사히 마치면 파티를 열자 약속했다. 와이프도 참석하는.
"혼자가 편해. 그냥 혼자 살어"라고 남사친은 자주 말한다. 그러면 나는 발끈해서 " 그거야 지는 와이프, 자식 다 있으니까 그런 말하는거지"라고 반박한다. "나도 남편 그늘좀 느껴보고 싶단 말야"라며 몰아세우면 "알았어 알았어"하며 손사래를 친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그 와이프가 부럽다는 말을 난 길게도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남편 수입이나 갖고 있는 보증금으로는 a시 에 계속 머물기 힘든데도, 여전히 센터를 고집할수 있는 그 배짱이 난 솔직히 부럽다. "나가서 돈 벌어와!"라며 구박을 해댈 남편이 있다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