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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것>

-슬픔의 광시곡

by 박순영




영화를 고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것이다. 이 영화는 일단 감독을 믿었고, <하이힐>의 배우 마리사 파레데스가 나오길래 갈등없이 골랐다. 내가 영화전문가는 아니지만 페드로 알모도바르 정도는 일반 순수한 아마추어 영화팬들도 한두번씩은 아니 그 이상으로 친숙한 이름일 것이다.


나는 그의 영화를 꽤 여러편 보았고 내러티브는 조금씩 달라도 늘 같은 이야기를 한다. 즉, 동어반복을 하는 감독인데, '비정상의 정상성' 이 그것이다.

마약과 매춘,동성애가아니면 삶의 지속이 불가능한 존재들, 여자가 되기 위해 성전환을 한 남자들, 그리고 늘 불안불안하면서도 존재의 안정감의 근원이 되는 모성애...이런것들이 컬트적이며 멜러드라마적이면서도 천하지 않게 와닿는게 알모도바르의 영화라 하겠다.



얼핏 기억이 나는게 알모도바르의 유년기는 거의 수도원에 갇힌 그것과 별반 다를바 없다고 하였다. 철저한 규율에 얽매여 살아야 했던...그래서 성인이 된 그는 그 모든 기존 관념과 권위를 전복시키는 영화행위에 몰두했는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었어도 그는 여전히 다수가 부르짖는 '정상성'에 계속 야유를 보내고 권위를 깨트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이 영화도 그의 여타 영화들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느날 아들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여자 마누엘라, 그녀는 18년만에 아이아빠 롤라를 찾아 바르셀로나에 오게 되고 거기서 어릴적 친구를 만나고 그녀를 통해 사회봉사원으로 일하는 로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아들 사인의 직접적 원인이 된 여배우 로소도 만나게 되고...이 인간 그물은 그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이어진다. 그리고 로사의 뱃속 아빠가 18년전 마누엘라를 임신시킨 고향 친구인 트랜스젠더 롤라임을 알게 되고....이야기는 한참 복잡하지만 한가지 구심점을 향해 회귀한다. 결국, 타인은 우리에게 말못할 아픔과 배신감,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지만, '우리는 늘 알지못하는 사이 타인의 친절에 의존해 산다'는 모순된 존재라는 것이다.

슬픔을 안겨준 존재가 동시에 위로와 의자가 된다는 삶의 양면성 모두를 포괄하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을 잃은 마누엘라는 다시 또 아들을 얻게 된다. 로사를 통해. 아이아빠가 같고 아이 이름도 '에스테반'으로 같다. 이렇게 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된다는 회귀론? 윤회론? 이런것들이 나이브하고 처연하게, 때로는 충격적으로 와닿는 영화다.


흔히들 '애증'이라 부르는 것의 실체는 뭘까,를 알모도바르만큼 적확하고 핍진하게 그려내는 감독도 드물것이다. 전작 <하이힐>에서 모녀간의 오랜 애증의 세월이 마지막엔 눈물로 화해하는 걸 보면서, 미움도 근저엔 애정이 깔려있어야 가능하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런맥락에서 이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것>은 그 주제를 조금더 증폭시키고 결국엔 '인류애'까지 이르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알모도바르가 유난히 트렌스젠더, 그것도 여자가 되려하는 , 혹은 돼버린 남자들에 집중하는건 뭘까? 그것의 해답은 어렵지 않게 나온다. 안정과는 바대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씨앗을 아무데나 뿌려대는 남성성에 대한 환멸이자 절망이라 할수 있다. 그와 반대로 모성애로 대표되는 여성성은 남성의 방황과 무책임함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결국엔 포용하고 화해하는 '책임지는 존재'로 인지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적 관점과 분석도 가능하리라 본다.


로사는 아들 에스테반을 낳다 죽지만, 그 아이는 세상과의 화해, 에이즈를 이겨낼 삶의 건재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 된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만큼 세상은 정상의 탈을 쓴 비정상과 비상식으로 뒤엉켜 있고 그속에서 인간이 숨쉴수 있는 공간은 마약과 동성애,섹스뿐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말하는것이다.

롤라로부터 에이즈에 감염된 로사가 낳다가 죽은 아들 에스테반속 에이즈균은 결국 치유될것이라는 의사들의 소견은 '기적'이라고 하였다. 어쩌면 우리 모두 나날의 '기적'들을 바라며 사는건 아닐까?


또 한가지, '여자들은 홀로 있음을 피하기 위해 쓸모없는 것들을 받아들인다'라는 대사가 인상적인데, 그안에 존재의 고독, 그래서 타인에의 갈구, 그 결과 고통과 더한 고독을 짊어지게 되는 개인의 아픔과 비극을 잘 드러낸다 하겠다. 그러나 그런 타인이 어느 순간 나를 위한 '친절'을 베푸는 존재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모도바르는 특유의 현란하고 난삽하면서도 치밀히 계산된 미장센과 표정, 발화 속에 담아냈다.

그리고 극중극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해 내가 타인이 되고 타인이 내가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 감독의 열망이 표현됨과 동시에 제 아무리 슬프고 비극적인 개인사라 해도 타인은 그저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소도 동시에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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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내 어머니의 모든것 All about My Mother>스페인 2000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주연 세실리아 로스, 페넬로페 크루스, 마리사 파레데스

러닝타임 1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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