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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Apr 09. 2023

에세이<피에타>

피에타에서 모짜르트가 영감을...

오늘 나갈 일이있고 광화문일대를 거쳐야 하는데 방금 기사를 보니 그 일대가 오늘 수시로 통제된다고 해서 난감한 상황이다. 부활절 퍼레이드가 열린다는데, 잘못하면 약속을 취소해야 할지도 몰라 지금, 어쩌나,하고 있는 중이다.


난 어릴때 교회가 가까운 동네에 살았고 언니를 따라 자주 교회에 가곤 했다 . 물론 예배도 이따금 드리면서. 그리고는 부활절이나 성탄엔 작은 먹을거리나 선물도 받았으리라 기억은 안 나지만. 부활절엔 아마 달걀을 받았으려니 싶다.


그 교회를 가려면 한 2분쯤 돌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그 좌측으로 보이던 서울의 야경이 눈부시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 어린 감성에도 그 풍경을 보면서 난 그 불빛이 어쩐지 슬퍼보인다는 생각을 한걸 보면 그때 이미 내 안에는 우울인자가 자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야 놀러가는 맛으로 다녔지만 언니는 꽤나 충실한 신자여서 교회가 주최하는 행사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한번은 교외로 가서 1박을 하고 온다고 해서 엄마와 실랑이까지 벌였고 엄마가 출근한 사이 짐을 꾸려 갔던 일도 있다. 그걸 보면서, 언니는 왜 저렇게 말을 안들을까,하고 내가 다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난 어릴때부터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눈을 뜨고 잠들고 했다.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동정녀가 예수를 낳았다는 기도문을 외워댔고 그것에 회의를 품은건 한참 시간이 흘러 내가 성인이 돼서다. 그것도  어떻게 동정녀가 아이를 갖지?하고.

물론 비유적인 말인건 알지만, 그걸 기도문으로 매일 외워야 하는건 곤혹이었다.

그럼에도 난 대학 졸업무렵 카톨릭 세례까지 받아 '도미니까'라는 세례명까지 받았다. 그리고는 또 매주 성당에 가서 동정녀의 잉태로 예수가 태어났다는 기도문을 외우고...


종교는 구복을 금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난 절대적으로 부자되게 해주세요,좋은 사람 만나 잘 살게 해주세요, 하고는 노골적으로 구복기도를 올렸고 그래선지 신은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애초부터 볼품없는 나의 신앙은  바닥을 드러내고 냉담생활을 20여년째 하고 있다. 어쩌다 성당 앞이라도 지나치려면 뜨끔하지만 그리 미안하진 않다. 신이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아선지..


어릴적 집에 피아노 한대 있는게 소원이어서 어느 경품에 응모했고 꼭 피아노를 타게 해달라고 기도했건만 들어주질 않은 신이었다. 예로 들자면 한이 없고 나의 이런저런 욕망으로 가득한 기도는 하나도 이루어진것이 없으니, 장사로 치면, 밑진셈이고 해서 나도 발길을 끊었다..



그러다 유럽여행을 가서 로마에서 피에타 상을 보게 되었다. 유독 사람들이 한쪽에만 모여서 서로 까치발을 해대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궁금한건 못참는지라 나도 가까이 가서 봤더니 등신대 엇비슷한 아담한 크기의 피에타 상이 있었다.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그걸 보는 순간, 내 마음의 현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렇다고 그걸 계기로 다시 신앙생활을 한건 아니지만, 피에타가 준 감동 순간은 내안에 깊이 각인되었다.

아무래도 난 종교자체보다는 예술을 통해 종교에 접근하는 방식을 선호하는것 같다. 내게 세례를 준 신부는, 자기가 신부가 된건  모짜르트를 좋아해서,라고 했는데 나 역시 카톨릭이 이루어낸 숱한 예술적 가치들에 더 끌린건 아닐까, 싶다.  묵주며 미사보며, 난 그러것들에 더 눈이 갔던것 같다.

또하나,내가 카톨릭 세례를 받은것도 , 깊이 사랑했으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에 기인한다. 그가 카톨릭 신자였고 자기는 나중에 신부가 되겠노라 했다. 그말이 어찌나 서럽던지...해서 나도 카톨릭을 선택했는데 그는 신부와는 전혀 무관한 지극히 세속적 출세의 길을 택했다.





가끔 종교유무를 기재해야 할때 난 잠시 망설인다. 그러다 결국엔 카톨릭에 동그라미를 친다. 냉담생활이 오래 계속되고  더 이상 동정녀가 애를 낳았다는 교리를 믿지 않지만, 나의 신심은 여전하다고 하면 모순일까?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지고의 선'이 , 내가  남에게 위래를 가하지 않고 내가 줄수 있는  한에서  내것을  베풀려 한다면  내가 추구하는 바가 종교의 그 '선' 에  근접한건  아닐까. 그러니 그 동그라미  정도는 슬쩍 쳐도 될것같다.


 지금은 좀더 냉담생활을 하다 무지개 다리가 저어 보이기 시작하면 빡세게  다시 성당에 나가려고 한다. 뒤늦게나마 착한 일좀 하고 봉사도 하고 그렇게 선의 마일리지를 듬뿍 쌓아서 나도 천국에 가고싶다. 엄마가 있는 그곳에...


가끔 생각한다. 모짜르트의 그 아름다운 성가곡들이 어쩌면 피에타에 영감을 받아 나온 걸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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