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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Apr 05. 2023

에세이 <이쁘게 다시 마주할 시간>

작게나마 재회의 공간을 만들어놓고 싶다.

나의 마구잡이식 섭식을 걱정하는 한 친구는 줄곧 정크푸드를 끊고 푸성귀종류로 먹어라, 하루에 달걀 두개는 먹어라,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댔다.그래도 입이 즐거운걸 당장 포기하는건 쉽지 않아서 꽤 오래 미적거리다 얼마전부터 작심하고 마트에서 파는 샐러드팩을 사다 입이 심심하면 먹곤 한다. 아일랜드 드레싱을 살짝 얹어 먹으면 채소의 떫은 맛이 좀 덜해진다.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는 얘기다. 맛이야 없지만.



그래, 이렇게 가자하고는 슬슬 정크녀석들과 거리를 벌려가는데 오늘 그 친구가 일찍 퇴근해 가는길에 잠깐 들르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도착한 친구의 손에 들려있는걸 본 순간,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유명제과의 제법 큼지막한 케익박스였다. 회사에 손님이 왔는데 그가 갖고 온거라며 누구도 단걸 안 먹는다고 해서 네 생각이 났어...라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박스를 열었다. 탐스런 딸기위에 시럽이 듬뿍 뿌려진 ,비주얼만으로도 입에 침을 돌게 하는...아, 겨우 끊었는데...


그제서야 친구는, 아참, 너 이런거 먹음 안되는데, 하면서 당황해했지만 이미 나의 입은 당도 100%의 달달함으로 가득 채워졌다. 니가 들쑤신거야. 너 먹지 마. 내가 다 먹을거야,라며 난 우걱우걱 케익을 반이나 해치웠고 그러고나자 살짝 느끼함이 올라오면서 포만감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난 포크를 내려놓고 음료로 입가심을 했다.

난 내가 정한 규칙을 지키려 했는데 순전히 타의에 의해 깨진거라는 그럴듯한 핑계는 이렇게 성립되었다.  고양이앞에 생선을 갖다놓고 참으라는게 문제지 나는 죄없음,정도랄까?


그런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운동을 나갔는데 계속 숨이 찼다. 어제 하루 쉬었다고 그런거 치곤 너무 심하게. 마치 공황발작이라도 온것처럼...뒤늦게야 난 내가 체했다는걸 알고는 친구를 배웅하고 곧바로 소화제를 삼켰다. 그렇게 순식간에  그 큰걸 반이나 흡입했으니 온전한게 더 이상하리라..

이렇게 약간의 부작용은 있었지만 정크와 나의 재회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감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래서 세상일은 단정하는게 아닌가 보다, 싶기도 하다. 다 정리된거 같은 관계도 어느날인가 무심하게 날아든 메시지 하나로 다시 연결되기도 하고 투고하고 몇년씩 감감 무소식인 원고가 채택되는 경우도 있고 다 틀렸어, 하고 놔버린 일이 나를 다시 일으켜세우기도 한다. 그러니 끝날때까진 끝난게 아니라는게 맞는말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과거완료쯤 되는 인연이나 일에 너무 연연해서도 안될것이다. 그걸로 끝인 경우가 더 많으므로. 그래도 조금은, 아주 작게나마 ,돌아와 마주할 그가 , 그것이 머물 공간 정도는 내 안에 남겨두고싶다. 다정하지 못했던 이별의 인사였다면 다시 이쁘게 해주고 싶고 내 곁에 머물러 온거라면 포근하게 안아주고싶다. 나역시 힘들었다고. 니가 없어 피곤했노라고.



그렇다면 모든건 정녕 바람이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바람 부는대로...

그 바람의 방향을 예측못한다는게 우리의 문제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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