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의 알리바이
오래전 의정부 어느극장에서 당시 만나던 외국인과 이 영화를 본적이 있다. 내 기억엔 여주인 전도연이 담배를 피우는 걸로 끝이 난거 같은데 다시 보니, 뭔가 착오가 있었다. 물론 영화는 그리 끝나지만...이렇게 우리들의 기억이란 완벽하지 못한것이다. 그럼에도 그 엔딩신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 보기드문 수작을 봤다는 기억은 오래 갔고 세월의 강을 넘어 다시 보게 만들었다.
남편 민기의 실직에 짜증이 나있는 아내 보라는 영어학원 원장이고, 예전 애인 (어쩌면 딸의 친부)을 직원으로 고용해 밀회를 즐긴다. 그런 아내의 이중성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민기는 중고서적가게에서 연애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이렇게 영화는 '치정'의 힘을 극한까지 밀어부친다. 상간남을 만나러 가기 위해 어린딸의 우유에 수면제까지 타게 하는 그런 힘, 그것이 금지된 사랑의 힘은 아닐까?
감독은 묻는듯 하다.. '과연 당신이 이런 처지에 놓인다면?'이라고. 실직에 오쟁이진 남편의 입장이라면? 우리가 할수 있는 선택은 과연 몇가지나 될까? 이혼? 원망? 용서뒤의 허망한 화해? 아마 그정도일텐데, 극중 민기는 과감한 결심을 한다. 극 후반에 가서 그렇게 민기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따지고보면, 명작으로 회자되는 많은 문학, 영화가 다 '치정'의 이야기를 근간으로한다. <닥터지바고>를 비롯해.....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치정 아닌 '사랑'이라 믿으려 한다. 과연 치정과 사랑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건 뭘까? 육체적 결속과 정신적 합일? 너무나 거창한 거 같다. 아이가 있고 비록 남편은 실직자여도 부족함 없이 사는 그녀 보라에게도 공허와 권태, 외로움이 존재했다는 것은 아닐까?
사랑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히 '외로움'에 이르게 된다. 군중속 고독 운운할 필요도 없이 인간은 혼자로는 너무도 불완전해서 그런 자신을 보듬어줄 타인을 원하게 돼있다. 많은 이들이 '결혼'이라는 제도내에서 그런 서로에 대한 배려와 성적 해소를 하며 살고 그것을 '행복'이라 부른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안타깝게도 거기서 그치질 않는다...남편아닌, 아내 아닌, 일 아닌, 성공 아닌, 그너머 어떤것에 늘 굶주려 한다. 즉 일탈에 목말라 한다.
원형으로 설계된 부부의 아파트를 부감으로 찍은 부분은 섬뜩하기조차 하다. 마치 봉인된 공동묘지같은. 거짓 생명과 진실이 부재한 육체만의 유희가 이루어지는....산자가 아닌 죽은자, 즉 영혼이 고갈된 존재들의 마지막 알리바이같은....
우리는 왜 영혼을 얘기하면서 육체를 단념하지 못하는 걸까? 현재가 소중하다고 하면서 왜 과거에 발목 잡혀 사는걸까?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많은 커플이 종국에는 파경을 맞는 이유는 뭘까? 이런 일상의, 어쩌면 인간본연의 결핍에 관한 이야기를 감독은 불륜,치정이라는 모티브를 전제로 완벽하게 그려냈다.
최민식, 전도연이라는 타고난 연기파들의 활약이 물론 영화를 빛냈지만, 아직은 설익은, 그래서 상간남의 불완전한 존재감이 오히려 부각되는 효과를 낳은 신인 주진모도 기억에 남는다.
아무탈 없어 보이는 우리의 내면을 들춰보면 갖가지 모순되고 비윤리적이고 이기적이고 가히 살인적인 광기와 욕구가 숨어있음을 영화는 '몸'을 통해 단출하고 스피디하게 보여주었다.
타이틀 <해피엔드 happy end> 한국, 1999
감독 정지우
주연 전도연 최민식
러닝타임 9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