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전복
지금이야 새삼스러울것도 없지만 유럽에서 카톨릭의 위선과 억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꽤 오랜동안 금기시돼왔다.
이 영화는 그런 종교의 탈을 쓰고 벌어진 만행에 대한 아주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고발이다.
어릴적 엄마에 대한 뼈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빌은 성인이 돼서 어엇한 가정을 꾸렸지만 그의 상황은 여전히 척박하고 뭔가에 억눌리고 세상의 부패를 하루하루 씻어내야 할것만 같다. 실제로 영화속에서 빌이 여러번 손을 정성스레 씻는게 보여지기도 한다.
영화는 성탄 시즌에 접어들어 세상은 모두가 행복한 내지는 그런척 해보이는 가운데, 빌은 수녀원에 석탄을 공급하러 가는길에 경악할 일을 목격한다. 원장수녀는 돈으로 그 짓을 덮으려 한다. 그일로 갈등하던 그는, 마침내 카톨릭으로 대변되는 세상의 위악에 저항하기로 한다.
이 영화를 보려면 클레어 키건의 원작을 보는게 많은 도움이 된다지만, 나는 아직 그 소설을 읽지 않았고 딱히 내 취향도 아니다. 그래서 엔딩크레딧 직전에 올라가는 문구가 조금은 의아했지만, 그걸 뺀다 해도 영화의 이해는 그리 어렵지가 않다.
2차 대전당시 나치에 부역까지 했다는 카톨릭은 그럼에도 여전히 그 위세가 당당하다. 그때는 그럴만한 동기와 이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찌됐든 신의 의지를 완전히 저버린 행태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아일랜드는 뿌리깊은 카톨릭국가여서 그것이 민중의 삶에 미치는 파급력과 침투력은 대단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면, 거짓이나마 그런 '아우라'에서 자유로울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영화라 하겠다.
살다보면 미혼모도 될수 있고 몸을 팔수도 있고 그런게 지상의 삶이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금기시 된다 해서 그들이 곧 '죄인'이라 단정지을수 있는가 .
우리 사회는 많이 오픈되었고 이런 음지의 사람들에게 아량을 베풀 정도의 지성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내 자식이, 내 엄마가, 내 누이가 그런 상황이라면 그것마저 견뎌내고 아량을 베풀수 있는가,는 또다른 문제다. 예로 퀴어 문제에 대해서도, 남들이야 그러건 말건, '그들의 취향이니 존중'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내 오빠, 내 누이의 일이 되는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결국 인간은 '내'가 연루된 것에는 말로 부르짖는 것과는 정반대로 치달을수 있다는 것이다.
빌은 결국 카톨릭의 권위에 맞서기로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 그것은 어쩌면 어릴적 모친에 기인하는 트라우마에서 자신을 구하는 일일수도 있다.
영화는 아주 천천히 느슨하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상황이나 인물의 내면을 발화하거나 보여주지 않고 분위기와 침묵속에 전개돼서 조금은 갑갑다는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후반에 이르러 힘과 속도를 얹어 빠르고 확실하게 엔딩으로 치닫는다. 한마디로 뒷심이 대단한 영화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아일랜드가 아닌 미국이 제작한 것으로 나와있다. 물론 키건의 원작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결과겠지만, 그래도 헐리웃 시스템에서 이런 류의 영화를 만들었다는건 사전에 많은 이견과 충돌이 있었을거라는 추측을 낳는다. 역으로 말하면, 침묵이 조용한 항거가 되는 그런 영화를 헐리웃이 감행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빌역의 킬리언 머피는 아일랜드 배우다.
유럽의 빈국으로 꼽히는 아일랜드의 어둡고 음울하고 생기 없는 일상이 빌의 현현epiphany으로 로 인해 활기와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얻었다는데 의의가 있겠다 .좀 더 나아간다면,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모국이라 할수 있는 유럽의 원죄에 대한 컴플렉스의 발현이라 할수있다.
타이틀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미국,2024
감독 팀 밀란츠
주연 킬리언 머피 외
러닝타임 9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