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진실
추리물의 절정은 역시 who done it?이 밝혀지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확실한 결말을 보류하고 끝을 내서 뭐지? 하는 느낌과 함께 다양한 사고의 갈래를 제시하기도 한다.
남편의 의문사, 용의자로 주목된 아내 산드라, 그리고 시각장애 아들과 안내견이라는 단출한 설정속에 펼쳐지는 미스터리 법정극이다.
물론 산드라는 집중적으로 심문을 당한다. 그런 과정에서 드러나는 '부부'의 실체가 경악스럽다.
양성애자인 아내의 외도를 가슴깊이 묻어둔 남편, 그런 남편이 원망스럽고 무능해보이는 잘 나가는 작가 아내.
부부 사이에도 우열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컴플렉스'가 살인의 동기로까지 부상하는데..
그리고 이 둘의 아들인 다니엘. 그 다니엘의 추론이 결국엔 재판의 향방을 가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확실한 것이 아닌 '추측'임에도....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건 어떤 관계도 확실히 신뢰할건 없다는, 지극히 프랑스적인 냉소어린 지성이 영화전반을 관통한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영화는 살인자가 누군지를 떠나, 아들이 채 알지 못했던 부모의 속깊은 갈등과 내막으로 방향을 튼다.
심리학을 좀 빌어와 본다면,인간의 자학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가학이 자신에게 되돌아올때 일어나는 감정이라고 한다. 결국 타인에의 악의가 자신을 고통의 늪으로 빠트린다는 것인데 , 이걸 조절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제 아무리 가까운 부부나 친구, 가족 사이에도 보이지 않게 서열은 존재하고 성공과 실패의 잣대가 기준이 돼서 누가 리드를 하느냐가 결정된다. 쉬운말로, 자식이 아무리 많아도,' 돈 잘 버는 자식'의 입김이 센것과 상통하는 논리다...
그리고 부모를 다 안다 느끼는 자식도, 그들의 겉만, 아니면 이상적 부모라는 '허상'에 갇혀 사는것도 드러난다. ' 좀 다투긴 해도 근본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 부모'라는.
이 영화는 이런 의미로 볼때, 가장 친밀해 보이는 사이에서 악의와 나아가 살의까지 싹튼다는걸 예리하게 , 조금은 지루하게 법정극의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른바 '검증된 영화'인 이 영화는 간간이 다니엘이 치는 어두운 피아노 선율에 의해 더더욱 '미로속을 헤매는 것'같은 침울함을 안겨준다.
사랑의 양면성, 부부라는 이름의 애증, 부모의 고통의 원천이 되는 자식이라는 설정을 이 영화는 지리할 정도로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대사는 영어와 프랑스어, 두가지가 교차돼서 진행된다. 이 부분도 어찌보면 인간 사이 '소통의 부재나 어려움, 불편함'을 얘기하는걸로 풀이 될수 있다. 그리고 팩트가 아닌 다니엘의 추론에 의한 판결은 우리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 즉 '선택적 진실'을 택하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타이틀 <추락의 해부 Anatomy of a Fall> 프랑스, 2023
감독 쥐스틴 트리에
주연 산드라 힐러, 밀로 마차도 그라네르
러닝타임 15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