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흐린날의 동화>
황사...아득한 그리움
황사때문인지 11층 내집에서 내다보이는 국민대쪽 풍경이 조금은 뿌연거 같다. 오늘 외출을 자제하라는 안내문자까지 다들 받았을것이다.
어린날 겨울가고 봄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불어오던 이 황사바람을 난 꽤나 즐긴거 같다. 그게 건강에 치명적이라는걸 알수도 없었거니와 누런 모래바람이 주는 그나름의 낭만이 있었던 듯 하다.
해서 황사라도 부는 날이면 수업끝나고 집에 오지 않고 일부러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해가 저물도록 기구를 타고 모래놀이를 해서 손이 트기도 했다.
나이들어서야 황사가 호흡기에 치명적이란걸 알게 됐지만, 난 지금도 어린날의 감흥이 남아있어 조금은 반갑기도 하다.
요즘 황사는 단순한 모래바람이 아닌 방사성물질, 석탄 오염물질을 동반하고 그 결과 산성비를 내리기까지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사막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감자, 고구마 따위를 개발해 중국 황사지역의 마구잡이식 개발을 막아보려고도 하고 있닥고 한다.
어쨌든 이런 사실을 알았으니 이젠 적극적으로 피해야 하는건데 난 오늘도 나가서 어린날처럼 황사바람을 맞고싶으니 큰일이다..
자연재해를 이야기하다보니, 예전엔 곧잘 서울이 물에 잠기던 생각이 난다. 장마가 지면 곧잘 내가 살던 용산쪽이 물에 잠기곤 했고 그러면 난 제일 먼저, 오늘은 길이 막혀서 피아노 선생님이 못온다,는 생각부터 들어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던 생각이 난다. 당시 나는 동네 파출소 2층에 자리한 피아노교실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다.
어느날은 바로 골목 어귀까지 물에 잠겨 난 동네 오빠 등에 업혀 물놀이를 했다. 그러다 신고 있던 슬리퍼 한짝을 물살에 잃었고 얼마나 서럽던지...
그랬더니 그 오빠는 '물 나가면 여기 어디있을거야'라며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는 며칠후 물이 나가자, 그 오빠 말처럼 내 노란 슬리퍼 한쪽이 길 건너편에 거꾸로 처박혀 있는게 아닌가. 그 순간의 반가움이란..
어릴때는 이렇게 철없이 자연재해를 즐기기까지 했다. 그야물론 그게 뭔지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거지만, 팍팍한 아스팔트가 물에 잠겨 장화를 신을 수 있는날, 그리고 급조한 고무대야배를 타고 물바다를 건너 갈수 있던 날의 동화같은 추억을 잊을수가 없다. 황사속을 바람개비를 돌리며 잔기침을 해대던 그날의 나는 이제 어디로 갔을까...
성인이 된다는건 어린날의 감흥을 하나씩 놓는 일이 아닌가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마스크에 선글라스를 하고 나갈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북한산자락에 불어오는 황사를 맞으러. 그리고는 들어와서는 위생규칙을 지킬것이다. 가글을 하고 눈을 깨끗이 닦고...
그렇게 짧으나마 시간여행을 해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