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무렵이면 그로부터 이메일이 와있곤 했다. 작가들의 라이프 사이클이란게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밤이면 깨어나는 창작욕...한번은 그와 다투고 일주일간 서로 메일을 하지 않은 적이 있다. 그래서 아주 가버렸나 했는데 어느날 자정무렵 잠결에 메일 알람이 울렸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침대옆 램프를 서둘러 켜고 메일을 확인했다 그였다.
'드라마 Y는 이럴경우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지는군" 이게 메일 내용의 전부였다.
난 그런 류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아 안봤는데 그로 인해 그 다음날 전편, 그러니 16회를 몰아보기를 하였다.그리고는 그날저녁 그에게 답메일을 보냈다. "나라면 그녀를 받아들일거예요"라고.
그렇게 우린 다시 이어졌고 그러다 다시 얼그러지고 일정기간의 공백을 거쳐 다시 이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그가 서울에 약속이 있어 나온다며 시간 되면 보자는 메일을 보내왔고 그렇게 우리는 20년만에 해후했다.
20년전이라면 내가 야간대학원 문학과에 잠시 적을 두었던 때이고 그는 학과 선배였고 기혼자였다. 그러다 그는 어느날 갑자기 아내를 잃었고 삼남매를 홀로 키우는 싱글대디가 됐다. 그는 와이프의 장례식에 학과대표였던 나를 불렀고 나는 부대표와 함께 조문을 갔다. 그때 삶의 의지를 다 놓아버린듯한 그의 처연했던 모습은 잊을래야 잊히질 않았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온라인에서 우연히 우린 다시 만난 것이다 그렇게 그와 함께 봄을 나고 여름이 끝나갈 즈음 h대 근처에서 우린 두번째 만남을 가졌다. 그는 더운데도 긴팔 재킷을 입고 있었고 지인 결혼식에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고나서 뒷골목 어딘가의 한적한 호프집에 들어가 그와 나는 마주앉아 맥주를 마셨다.
처음에 그는 간이 안좋아 술을 안 먹겠다고 해서 "그럼 선배는 쥬스 마셔"하고 내몫의 맥주만 시키려 하자 자기것도 시키라고 했다.
20년전에도 그는 아이 셋을 낳은 남자답게 조금은 풍만한 체격이었지만 이제는 나잇살이 더해져 제법 부하다는 느낌마저 풍겼다. "선배 우리 늙었다 "하자 그는 나를 응시하며 묵묵히 맥주를 들이켰다.
그리고는 서로의 포크를 스쳐가며 안주로 나온 황도를 먹어댔다. 시원하고 달콤한 그 맛은 여전히 내 입안을 맴돈다.
"더운데 쟈켓 벗어요"하자 그는 그제서야 재킷을 벗고 냅킨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냈다.
"그때 니가 준 그 누런 봉투...그게 기억이 나드라구"
조금 술이 오르자 그는 20년전 그때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당시 난 학교신문을 편집했고 그에게 짧은소설 청탁을 했고 그는 밤새워 한편을 써서 내게 주었다. 그 고료를, 내 기억엔 3만원?, 그정도의 돈을 황색봉투에 넣어 그에게 주었던 걸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깟 3만원이 뭐라고"
"아니...내가 글로 돈을 벌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지금은 비록 헤어져있지만 우리 다시 만난다면 나란히 인사동 거리를 걷고싶다. 20년만에 처음 그를 본 그 식당겸 화랑에서 정갈한 한정식 2인분을 시켜놓고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처럼 조금은 긴장해 마주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싶다. 지난겨울 그도 힘들었는지 묻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