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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디스토피아

by 박순영

브런치에 올린 예술관련 글들을 정리하다보니 내가 곧잘 '디스토피아'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는걸 알게 되었다 . 무에 그리 난삽한 삶이라고...

그러보면 난 조금은 엄살장이다.


그렇다면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그것에 이르는 길이 있긴 한가. 도달한다면 인간은 진정 행복해지는가,따위의 질문은 접어두기로 한다.


우리가 고통이란 부르는것들이 주고가는 선물이 바로 자기성찰과 예술이 아닌가 한다.실연후엔 사랑의 가치가 그만큼 상승돼 탁월한 연애소설이 나오기도 하고 이별후엔 그리움이 증폭돼 애절한 연시가 탄생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가피하게 우리를 찾는 고통의 시간을 즐길줄도 알아야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와 동시에 고통을 남긴 그들 역시 고통스러워 했으리라는 추측을 해본다.


내 지인중에, 아들 교육을 위해 절친에게 돈을 꾼 적이 있고 한달 뒤에 갚기로 해놓고 10년째 못갚고 있는 사람이 있다. 한달 후에 들어오기로 한 돈이 펑크가 난 것이다. 돈을 꾸어준 입장에서야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싶지만 꾼 사람 역시 거의 매일을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우선순위로 변제할 생각인데 그놈의 돈이란게 쉽게 벌리는가...

그래서 가끔 동창회나 여타 모임에서 둘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내 지인은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한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고통스런 기억에 사로잡혀 산다. 그러니 행복은 순간이고 불행은 영원하다는 말이 어느정도 맞는다고 할수 있겠으나 기억속에서 우리는 상처준것을 사과하고 결국엔 화해하지 않는가.

그런 위로의 순간도 삶속엔 분명히 있다.

내가 마음을 다쳤으면 그도 아프리라는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다. 그렇게 서로를 보듬는 아량이 필요할듯 싶다.


요며칠, 계속 컴만 하다보니 운동을 해도 찌뿌둥하고 계속 처진다.

이럴때 절친과 먼길이라도 떠났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내민 손끝에 와닿는 초여름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그것이 마치 영원인양 한 사나흘, 나의 현재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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