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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 할래요...

by 박순영

요즘 레제시니리오를 쓰다보니 예전 극본 쓸때 생각이 난다. 참고로 레제시나리오는 '영상화를 목적으로 하는게 아닌 읽기 위한 시나리오'정도 된다.

저작권 문제도 있고 해서 내가 여기 올린 소설 중에서 골라 하고 있는데 이 재미가 쏠쏠하다. 원작, 극본 모두 나라는게 뿌듯하기도 하고...


언젠가도 썼지만, 난 공모같은 정식?루트가 아닌 '외부투고'로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보낸 원고가 곧바로 채택된건 아니었고 가능성이 보이니 다른걸 또 한편 써보내라는 cp의 이야기를 듣고 두번째 투고를했고 그것 역시 방송을 타진 못했다. 해서 ,에이 접자,하고는 잊어버렸는데 2,3주 후에 한 pd가 전화해서 한번 보자고 했다.


"제가 보낸걸로 가나요?"

"그건 아니구요..제가 생각해둔게 있는데"

"그럼 안할래요"


지금 생각하면 참 당돌했던? 아님 돌았거나..

그러자pd가 오히려 몸이 달아,한번 오시죠,라고 매달리는 형국이 됐고 해서 그날저녁 당시 여의도에 있던m방송으로 택시를 타고 갔다.그렇게 처음 들어간 TV제작국엔 주말인데도 나와있는 사람이 꽤 됐었다.


pd는, cp에게서 추천을 받았다며 칼라가 자기와 맞을거 같다면서 신혼부부 이야기를 써보겠냐고 했고 그렇게 처음으로 청탁원고를 썼고 마감기한도 안돼 연락이 와서 정리도 못한채 원고를 보여줬다. 그리고는 설마 저게 되겠어? 하는데, 어느날밤 pd가 전화를 걸어와 좀 나와보라고 했다.

해서 다늦게 제작국으로 갔더니, 이미 인쇄된 대본으로 리딩을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난 내 귀를 의심했고 pd는 방송일자를 알려주며, 몇가지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었다.


그리도 꿈꾸던 드라마 작가의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 난 믿기지 않았다.

투고한 원고로 하지 않으면 안하겠다는 그 배짱은 또 어디서 나왔던 걸까...


그때 pd는, 혹시 요시모토 바나나라고 들어봤어요? 칼라가 비슷해서..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있는데...내가 좋아하는 작가니 한번 읽어보세요. 라고 했다.


그렇게 그로 인해 나는 현대 일본문학의 아이콘 둘을 알게 됐다.. 바나나와 하루키.

바나나의 <달빛 그림자>는 몇번을 읽고 또 읽었다.이 맑은 감성이 나와 닮았다고? 나같은 비관론자랑? 하면서 큭큭 웃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키 <상실의 시대>. 하루키를 알려준 그 pd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바나나.jpg
하루키.jpeg
요시모토 바나나/무라카미 하루키




그래서 늦게나마 그pd에게 감사의말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그 이후로 여러작품을 같이 했고 원수도 져봤고 그리곤 다시 화해했고. 둘이 퍼마신 술과 담배를 돈으로 환산하면 꽤 될터이다.

한가지 더, 그 pd와 영화관에서 <베를린 천사의 시>를 같이 본적이 있다. 그는 잔뜩 기대를 했다가 실망을 했는지 몸을 비비 꼬면서 계속 시계를 들여다봈다. 끝나서 나서 그가 한 말 "저걸 헐리웃에서 만들었음 볼만 했을텐데..."

유렵영화의 문법에 익숙치 않았으려니 한다. 아니, 나도 솔직히 지루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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