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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Apr 19. 2023

영화 <he loves me... not>

예전에 브런치에 올린글을 다시 정리한겁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대중적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대중성이란 예술성에 대비되는 상업성을 뜻한다

.

  예술영화를 약서한다면  사회, 심리적, 인간에 대한 보다 복잡하고 깊은 통찰을 전제로 한다. 그에 반해 상업영화는 볼거리로서의 영화, 가부장적  패러다임을  따른 여성의 물신화에서 비롯되는 상품화된 여성을 보여주는 영화 , 자극적이고 빠른 스토리와 영상, 등으로 정의 내릴수 있다.  그러나 어느 영화든 두가지의 중첩이라 보면 타당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프랑스 영화  <he loves me, he loves me not>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가  다행스럽게 조우 느낌을 주었다. 꽃잎을 하나하나 뜯어가며 ‘그가 나를 사랑할까? 아닐까?’를 점치는 아름다운 소녀적 상상력에서부터 영화는 강한 통속성을 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옆집에 사는 매력적이고 유능한 유부남이란 설정은 그런 사랑에의 환상과 동경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와 데이트를 하고 여행약속도 하는 사랑에 대한 가장 보편적 환상을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시킨다.


  그러나 돌연 어느 순간 ‘그녀’의 시점에서 ‘그’의 시점으로 옮겨가면서 지금까지 그녀가 말해온 것들이 단순히 그녀만의 착각이었음이 보여진다. 그리고 이것은 살인까지 부른다.     


 영화장르를 관음적 매체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 관음의 주체는 여성이다. 영화를 라캉의 용어를 빌어 거울 단계의 자기인식으로 보는데. 거울속 자기를 실제의 자기로, 즉 타자를 자기로 인식하는 잘못된 자기인식의 단계가 그것이다.


 영화 <he loves me...>는  멜러드라마가 주를 이루면서 팜므파탈적 요소와 느와르적 요소까지 합쳐진  퓨전의 형태를 보여준다.  가부장적 정신분석의 흔적이 엿보이고 그런가하면 푸코적 성담론도 드러난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한 포스트 페미니즘까지 가세해 매우 재밌으면서도 복잡다단한 영화라는 인상을 깊이 심어준다.     


      

 미술학도인 20대의 안젤리크는 남의 집을 봐주기로 한 것이 계기가 돼서 그 옆집에 사는 심장전문의 루이를 알게 되고 어느날 그가 무심코 건넨 장미 한송이를 사랑 고백으로 여기고 집요하게 그에 대한 애정망상을 펼쳐나간다.   하지만 그에게는 변호사인 아내가 있고 더군다나 임신까지 한 상태다. 하지만 안젤리크는 그 임신이 거짓이라 믿고 그녀를 스쿠터로 치어 유산시킨다. 그 일로 루이 부부는 사이가 벌어지게 되고 그런 와중에도 안젤리크는 익명으로 루이에게 꽃과 그림 선물을 계속한다.

그러다 어느날 그림 뒤에 적힌 그녀의 메모를 읽게 된 루이의 아내가 오해를 해서 집을 나가게 된다. 이제 루이와 약속한 (망상) 플로렌스 여행이 가능해졌다고 생각한 안젤리크는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지만 루이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는 TV에서 그가 여환자를 폭행해 기소당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녀 (여환자)를 찾아가 살해까지 한다...


루이의 말중에 ‘우린 만난적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대사가 있다. 그만큼 루이는 안젤리크에게 철저한 타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정신병동에 갇히고 몇해후, 자신의 모든 일이 다 망상이었다고 말해 퇴원하지만....    


 멜러드라마는 고도의 감상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원초적이고 단순한 감정들의 극대화를 꾀하는데 이런 것을 ‘과잉’이라 한다. 이런것들은 극단적 행동과 사건들 ,우연의 일치나 운명적 엇갈림, 과장된 연기, 비사실적 조명과 세팅, 의상 같은 미장센적 요소, 음악, 등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낸다.

 정신분석학과 멜러드라마는 가족 안에서의 개인의 정체성 문제나 주관적 욕망을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전자는 가부장제 아래에서 억압받는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제기했고 ,  멜러드라마는 자본주의 하에서 억압된 욕망을 다루고 이러한 욕망과 갈등의 충돌현장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영화에서 ‘그’는 ‘그녀’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여기서 그녀의 소망(욕망)과 현실세계가 충돌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를 위해 두 번이나 살인을 한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다는 , 남자를 위해 희생하는 여자,라는 멜러드라마의 철저한 가부장적, 남근중심주의 규칙을 따른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이  비록 남자의 승리>로 끝난다 해도, 그리고 이런 공식이 바로 느와르 영화의 단골 결말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여자의 저항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안젤리크를 팜므파탈로 몰아간 것은 루이에 대한 그녀의 사랑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여성의 저항’으로 읽힐 수 있고 사회적 관점에서 본다면 ‘가진 자에 대한 결핍된 자의 저항’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기에 가진 자들의 눈엔 ‘왜곡된 욕망’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이런 비주류 속엔 결핍된 자와  여성이 포함된다는 페미니즘적 요소가 녹아있고 애정망상증이라는 매우 애매한 광기를 도구로 쓴 부조리극이라 할 수 있다.      

  

 망상은 여러 가지로 분류될수 있는데 피해망상, 과대망상, 조정망상, 부정망상, 그리고 저명인사나 연예인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애정망상, 외계인이나 영적 존재 또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어떤 생각을 주입하고 있다고 믿는 사고투입 등의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이 망상은 편집증과 곧잘 결합한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안젤리크는 진짜 미친걸까? 여기서 푸코의 광기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푸코는 성을 권력과 연관지었다. 그에게 순진한 지식은 없다고 생각되었다. 지식은 알게 모르게 어떻게든 권력과 관계를 맺는것이라 했다.  여기서 파생된 또 다른 개념이 바로 성sexuality과 권력power의 문제이다.  푸코를 논하기 전, 우선 포스트 모더니즘이 어떻게 페미니즘과 결합될수 있었는지를 보면, 반본질적이며 다양성을 테제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후기 구조주의적 사고와 결합되면서 페미니스트들의 눈길을 끌었다는 것이고 이부분 따로 지면을 빌어 논하기로 한다.


 안젤리크가 정신병원에 수용돼있는 동안 루이는 바깥에서 아내와 아이 둘을 낳고 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녀는 당대와 사회가 용인하지 않은 일탈된 욕망을 가진 죄로 인해 광인 취급을 당한다. 이것이 푸코의 광인론과 연결되는 대목이며 그렇다면 안젤리크를 딱히 광인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다.     


 


끝으로  장난치듯 장미 한송이를 건넨 루이의 행동은 과연 정상이었을까, 당대가 용인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층과 가진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 영화가 사랑이라는 지극히 통속적 소재를 갖고 인간의 삶을 얼마나 다각적으로 들여다보았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이런것들이 멜러드라마의 규칙을  따라 차근차근 전개되는것이다.  즉, 자본주의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감상과 눈물, 여성의 희생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이 영화는 라캉의 용어를 빌려' 바라보기에서 비롯된 그릇된 욕망'을 말하고 있다. 이 ‘그릇됨’은 물론 결핍된 자의 욕망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그 욕망이 얼마나 현실속에서 무섭게 깨져버리는지를 보여준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거세된 욕망을 채우려는 안타까운 시도가 바로 사랑이다.  그렇다면 안젤리크는 이미 그에 대한 욕망을 시작하기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그와의 현실적 사랑이 불가능할 것임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죄라면 그 욕망과 상상 속에 자기를 방기했다는 것이고  금지된 욕망이기에 더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즉, 영화는 사회가 고립시키는 개인의 문제, 거기서 비롯되는 고독과 그것이 낳는 망상체계를 보여주었고. 고독이 편집증으로 발전한다는 신경질환의 기본 패턴을 제시한다.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대별되는 기준점은 바로, 거리두기/몰입 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가 강한 대중성을 갖는다면 전자는 자기인식과 비판의 두 기능을 동시에 가능케 한다.

  

 다시한번 라캉의 거울단계를 빌어 표현하자면, 고립된 인간은 거울속의 타자를 자기로 인식하고 그와 내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도착상태에 이른다. 그 출발점은 상기한 대로 ’고립감‘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기에 거울속의 타자만이라도 나와 동일시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담론이기 이전에 고독에 관한 , 사랑의 폭력성에 관한 ,삶의 부조리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title he loves me, he loves me not, 2002, 프랑스, 92분

감독 레티샤 콜롱바니

주연 오드리 토투



■참고자료-서인숙지음,『씨네 페미니즘의 이론과 비평』.서울:책과길. 2003. l/ 서인숙지음, 『영화비평의 이론과 실제』.서울: 집문당. 1996 /원호택․이훈진 외, 『이상심리학 시리즈』. 서울:학지사. 2000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편, 『영화예술의 이해』. 한양대학교 출판부. 2000

원용진,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 한나래 2002 .  /인터넷-예술영화, 프랑스영화, 대중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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