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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순영 Apr 19. 2023

영화리뷰<하이힐>

예전에 올린글 다시 정리한겁니다

스페인 영화 <하이힐>은 모녀간의 애증을 통속적인 내러티브를 빌어 표현한다. 거기에 포스트모던적 현란함, 도착, 음울, 그로테스크 미학이 곁들여진다. 굳이 정신분석이나 페미니즘이라는 현학적 차원의 분석을 도입하지 않아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이야기다. 자신의 성공과 애정행각을 위해 딸을 내팽개친 엄마, 그 엄마에게 원망과 그리움을 동시에 지니고 마침내 엄마의 옛애인과 결혼한 딸, 그리고는 둘 사이의 장벽인 그 남자(긴장된 관계)를 견뎌내지 못하고 살해하는 딸. 죽음 직전에 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는 엄마. 하지만 끝내 고해성사하면서 자신은 무죄임을 밝히려는 엄마의 인간적 ? 이기심, 이 모든 것이 알모도바르 특유의 냉소적이며 서글픈 화법으로 펼쳐진다.     


 인간은 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뚱거리며 여기저기를 서성인다. 그렇게 하루종일 서성이고 돌아오던 엄마 베키의 하이힐 소리를 들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던 베키는 이제 현실적으로 다가온 엄마 베키 (딸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는)의 죽음을 마주하고 비로소 엄마와 화해한다. 비로소 레베카는 베키에게서 벗어나는것 같다. 그리고는 뱃속의 아이와 에두아르도 (레딸, 도밍게스 판사)와 새 삶을 꾸려나갈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은 또다른 자신의 죽음이므로, 베키가 과연 그 새 삶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살아낼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알모도바르를 이해하기 위해선 ‘모비다’를 이해해야 한다.

 프랑코 사후 첫 시기를 휩쓴 무절제와 방종의 분위기가 가라앉은후, 스페인 대도시에서 의식적으로 유행한 현상을 ‘모비다 La Movida' 라고 한다. 일종의 문화운동으로 ’흥청거림‘으로 번역될수 있는데 젊은 예술가들이 벌인 언더그라운드 문화에서 유래해 대도시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번져나갔다. 새롭고 발랄한 감수성을 가진 젊은 화가들, 조각가들, 대중음악가들, 작가들, 영화인들, 사진작가들은 보수적이고 근엄한 도시 마드리드를 세계문화의 중심지로 바꾸어놓았다. 유럽에서 일어난 1960년대 말 청년문화에서 소외되었던 스페인의 젊은 세대는 프랑코의 죽음으로 야기된 정치적 해방을 기점으로 펑크락, 히피문화, 마약, 여성과 게이의 해방운동이 뒤섞인 그들 나름의 표현양식을 찾으려 하였다. 그래서 이 ’모비다‘는 늦게나마 스페인의 젊은 세대가 세계적 조류에 합류한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비다’의 주역들은 연령적으로 프랑코시대 문화주역들보다 어렸기 때문에 프랑코이즘에 덜 오염된 세대이며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도 중산층 이하 가정 출신들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전세대 엘리트 예술가들과 미학적 단절을 시도해야했고 알모도바르가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영화 <하이힐>고전적 휴머니즘으로 복귀하는 현상을 보인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1949-. 스페인)



 요약하면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스페인이 급격하게 탈근대의 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에서의 모순과 긴장을 담아낸 사회적 기록물의 예증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페미니즘, 다문화주의, 가치의 다양성이 혼재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지형 안에 젠더, 섹슈얼리티, 테크놀로지 (방송을 비롯한 가상, 거짓현실) 문제들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프랑코 이후의 스페인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그의 사회적 고뇌는 영화속에서 잃어버린, 부재하는 가정, 모성애, 약화되거나 전무하다시피하는 마초이즘으로 드러난다. 이런 의미에서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매우 도발적이며 저항적이고 전복적이라 할 수 있다.     


 알모도바르의 1991년작 <하이힐>에 나타난  모녀간의 애증의 문제는 특히 페미적 정신분석에 대응할 때 두드러지는데, 소녀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에 대해서는 프로이트를 비롯한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언급했고 그것은 소년-어머니,보다 소녀-어머니의 관계가 외디푸스적 관점에서 훨씬 복잡함이 드러났다.   

 <하이힐> 속의‘고착’을 좀더 보면, 레베카는 어머니 베키에게 병적으로 집착한다. 어릴때부터 그녀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늘 어딘가로 떠나버릴것 같은, 사라져버릴것 같은 존재였고 실제로 또 그러했다. 그만큼 어머니는 늘 무책임하고 불안정한 존재였다. 그럴수록 레베카는 더욱 베키에게 집착하고 그런 집착은 결국 성장해서 결혼하고 난 뒤까지도 계속된다.  어머니의 애인이었던 마누엘과 결혼했다는 것은 물론 그 자체로 새도매저키즘적 성격을 띄지만 어머니의 대체물로 마누엘을 선택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이렇듯 레베카는 어릴때부터 줄곧 자기와 엄마 베키가 둘이 아닌 하나의 존재라 여기고 그 다른 한부분이 자기로부터 떨어져나가면 심한 고통을 느꼈다. 레베카가 엄마의 연인들 (계부와 자기의 남편인 마누엘)을 모두 살해한것만 봐도 그녀의 엄마에 대한 고착은 병적이다.


이런 지독한 집착은 엄마인 베키에게서도 여전하다. 그녀의 노래들은 온통 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베키는 겉으로는 딸인 레베카에게 냉정하게 대한다. 그래서 딸이 다가올수록 뒷걸음치는, 마치 이성간의 연애를 암시하는 듯한 관계를 나타낸다.

 이런 엄마에게 늘 상처를 받아온 레베카가 이 영화에서 피가학증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취한것은 바로 엄마의 연인이었던 마누엘과의 결혼이었을 것이다. 마누엘은 전혀 모르고 한 결혼이었지만 어찌됐든 레베카로서는 결과적으로 엄마의 옛 애인을 뺏음으로써 누구보다도 엄마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쾌락을 ,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 관계가 주는 괴로움을 예견했기에 거기서 또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여기에 적용가능한 이론이 바로 바로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인데, 레베카가 마누엘을 원한것은 그 마누엘을 엄마인 베키가 사랑했기 때문이다. 즉 모방심리가 그런 상황을 부른것이다. 그 마누엘이 다시 베키를 유혹하자 레베카는 자포자기하듯 여장남자 레딸과 정사를 벌인다. 자신이 벌받음으로써 상상속에서 엄마를 벌한 셈이 되는 것이다.



     

                                                        영화 <하이힐> 포스터



 매저키즘은 수동적 상황을 암시하므로 ‘나는 처벌받고 있다. 나는 매맞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즉 레베카가 마누엘과 결혼한것은 자신을 ‘벌받고 있는 아이’로 상정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느꼈고 들뢰즈에 의하면 , 매저키즘적 자아가 초자아에 의해 짓밟히는것은 단지 표면적인 것일 뿐이라고 한다. 즉, 연약하다고 주장하는 자아 뒤에는 무례함과 유머, 불굴의 저항과 궁극적 승리가 숨어있다는 것이 그것인데 그러기 위해 매저키스트는 환상속으로의 도피를 선택함으로써 결국 물신숭배의 형태를 취한다.          


 <하이힐>에서의 레베카는 겉으로는 결코 강한 여자가 아니다. 어릴때부터 줄곧 엄마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의 허약함은 남편으로 엄마의 애인(엄마의 대체물로도 해석이 가능한)을 택한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남자를 둘이나 죽이는 일을 감행한 것은 가히 팜므파탈적이다.

 어릴적, 자신을 상품처럼 취급한 계부에게 수면제가 든 음료를 마시게 해서 결국 차사고로 죽게 하고 남편인 마누엘은 직접 살해(총)하였다. 즉 ‘벌받고 있는 아이’의 내면은 응고된 애증의 감정, 언제든 꼭 복수하겠다는 다짐과 충동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레베카는 레딸이라는 여장남자(역시 엄마의 대체물이라 할수 있는)와 가까이 지내는, 이른바 정신적 페티시즘에 빠진다. 그리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방송계 또한 물신으로 해석가능하다.     


 다음은 ‘전이’의 문젠데, 레딸에게서 엄마를 느끼는 레베카, 수사를 맡은 도밍게스 판사의 레딸 (여장남자)로의 전이, 레베카와 마누엘의 결혼, 레즈비언들, 이 모두가 전이의 현상들이다. 이런것은 들뢰즈의 ‘되기’로 해석되고, 그것은  차이의 적극성에 대한 긍정이며 변형의 복수적이고 항구적 과정을 의미한다. 목적론적 질서나 고정된 정체성들은 복수적인 되기의 흐름flux을 위해서 폐기된다. 과정, 역동적인 상호작용, 유동적인 경계들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생기론 vitalism적 하이테크 유물론이며, 이는 들뢰즈의 사유가 후기 산업주의 가부장 문화분석에 매우 유효한것임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들뢰즈는 본질적으로 남근중심적 사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리좀 , 되기, 탈주선의 개념은 니체에서 연유해 들뢰즈를 거쳐 현대적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들뢰즈는 특히 일반적인 소수자-되기, 유목민-되기 혹은 분자적으로-되기를 강조한다. 소수자란 가로지르기 crossing, 혹은 궤적을 표시한다. 들뢰즈에게 있어 중심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주변, 그 주변들의 이동이다. 이것을 체화한 것이 알모도바르의 걸작 <하이힐>은 아닐까?



title  high heels, 1991. 스페인. 108분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주연 빅토리아 아브릴



참고자료-

영화 <하이힐> (1991. 비디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정신분석세미나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서울:여이연.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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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엮음. 영화감독사전. 서울:한겨레 신문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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