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대학시절 철없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인기직종 중 하나가 대학가 다방의 dj였다.
나역시 그 함정을 피하지 못하고, 정문 건너편 땡땡다방의 한 dj를 흠모했고 이윽고 연애도 하게 되었다.그. 그러나 그는 이미 서른 가까운 나이였고 난 고작 스무살...
지금 돌아보면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진지했던거 같다. 연애라고 해봐야 이따금 같이 밥먹고 야외로 버스타고 놀러가는게 다였지만....그러다 어느날 문득 내게 현타가 왔다. 가만 있어봐, 저 남자 결혼하려는거 같은데? 라는 생각에 난 그 끈을 놓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다방출입을 끊었다. 그러자 어느날, 그가 내가 있는 도서관으로 왔고 얘기좀 하자고 했다. 해서 나가보니 인상 험악한 다른 남자가 하나 더 있었다.
그렇게 셋은 전철로 명동으로 이동, 성당 인근 다방에서 얘기를 하는데 물론 나를 설득하기 위한 자리였다. 다시 잘 해보라고. 그런데 문제는 옆의 남자가 매서운 눈길을 나에게 계속 보냈다. 그냥 있다간 한대 얻어맞을 거 같아 화장실 간다고 핑계대고 도망 나와 빠르게 집으로 왔고 이후엔 소식이 없었는데, 성탄즈음, 우리집 대문 너머로 뭔가 툭 떨어졌다 흰종이로 포장한 작은 케이스였는데 열어보니 내가 좋아한 음악들을 녹음한 테입이었다.
그중에, 별밤의 시그널로 유명한 Merci Chérie 도 들어있어 나는 살짝 감동했지만 그에게로 돌아가진 않았다. 이미 내 머릿속엔 계급의식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뭐라고....그렇게 나의 첫 연애는 나의 파렴치함, 잔혹사로 남았다.부디 그가 잘 살고 있길 바랄뿐이다...
Frank Pourcel (프랑크 퍼셀) - Merci Cherie
Udo Jürgens - Merci Chérie (Udo Juergens Show - Udo Juergens und seine Musik 07.04.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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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종이
작가의 전작 [달에서 날아가지 않는 법에 대하여]에서는 장르혼합의 테크닉을 볼수 있었다면 이번 작품집 [지옥상실증]에서는 위선과 위악, 폭력과 편견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한 알러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냉소적 휴머니즘, 종말론적 세계관, 그런가하면 사랑에 대한 동경까지. 신예 오문원의 스펙트럼은 무한한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5편은 어느 하나를 고를수 없을만큼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유정란 공포증]이 보여주는 생의 아이러니, 인디언 서머적 설렘의 이야기 [이발소 오는 여자],표제작, [지옥상실증]의 탁월한 아포칼립스, 동물권 신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동물의 이야기 [길고양이 죽이기],편견과 아집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한 조롱 [젊은 남자는 늙은 여자에게 고백하지 않는다]는 모두 한 지점을 향해 수렴되고 있다. 깨끗한 '화염'이 타오르는 인간본연의 '지옥'에 대한 열망이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선과 거짓화해로 가득찬 더러운 천국보다 우리가 진짜 잃어가고 있는것은 어쩌면 깨끗한 지옥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책속으로/
불에 타고 있을 그들을 위해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쓰레기들아! 지옥이 없다고? 자! 메리 크리스마스다!”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불이 점점 커져 연기가 더 새어 나올수록, 마음속에 감추어 두었던 어떤 불길은 잦아들고 있었다. 갑자기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지옥상실증]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