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다언어 사회는 여러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그중 하나는 이주의 결과인데 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자발적으로 혹은 본의 아니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영역으로 이동해 들어오는 경우, 구소련 붕괴 후 신생독립국가들이 처한 다언어사용문제가 그렇다. 2차 대전 후 지중해 지역에서 밀어닥친 이주민들을 위한 북유럽 국가들의 다언어주의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되며 자발적 이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 미국은 가장 대표적 경우라 하겠다.
다언어사회의 또 다른 형성 배경은 20세기 곳곳에서 일어난 ‘도시화’로서 시골에서 대도시로의 이주가 그렇고 선진국뿐 아니라 제 3 세계에서도 도시로의 이주는 마찬가지여서 수백만의 인구를 가진 많은 대도시와 집합도시 conurbations 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복잡한 다언어 사용 환경이 조성되어 그에 따른 부작용들이 생겨났다.
정복에 의한 다언어형성도 중요한 사항인데 19세기 유럽열강들이 제멋대로 나눠가진 아프리카 대륙의 어지러운 다언어실태가 그것이다. 그 결과 독립 후에도 식민지들은 언어선택에서 진통을 겪었는데 아프리카는 물론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싱가폴이 모두 그런 경우다.
이와는 달리 자발적 합병도 다언어환경을 조성했다. 전형적인 예가 스위스인데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로망쉬어의 화자들이 다언어 국가를 형성하고 있고 또 다른 예는 벨기에로서 프랑스어 방언을 사용하는 왈룬인들, 네덜란드 방언을 사용하는 플레미쉬인들, 독일어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프랑스어/독일어 이중언어 사용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결국 이런 것들은 다언어사회에서 특정언어에 대한 ‘선택’의 문제로 집약된다. 그만큼 정치적 맥락을 띄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언어가 국제 혹은 국내 의사소통의 도구로, 정부 공식 언어로, 무역 및 상업용 언어로, 교육용 언어로 사용된다면 그 언어의 화자는 유리한 입장에 있게 된다. 사회적 정체성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이처럼 언어의 역할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소수민족들의 언어를 억압하는 것은 그들의 정체성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 된다.
20세기 후반의 다언어주의 형성배경은 무엇보다 세계화의 여파 속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이주일 것이다. 이런 이주의 배경이 된 세계화의 개념을 먼저 보기로 한다. 세계화는 비단 20세기 후반 들어 처음 생겨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Robertson을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은 세계화는 이미 수백년 전부터 진행돼온 것으로 정의한다. 이것은 세계화의 정의와 범위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달려있다 . 그래서 서양에서의 십자군 원정이나 몽고의 징기스칸의 활약도 세계화의 흐름에서 파악하고 있다.
이렇듯 세계화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데 올리히 베크는 세계화의 개념을 ‘세계성 ' '세계화’ ‘세계화주의’로 구분했다. 여기서 ‘세계화’는 항상 변화하는 네트워크화 과정을 의미하고 ‘세계성’은 테크놀로지, 미디어, 아이디어, 교통, 시장, 그리고 금융을 통해 서로 연계된 세계의 현재 상태를 의미하며, ‘세계화주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실천을 가리키는데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세계 시장은 전 세계 변화의 유일한 추진력이자 척도이며, 세계화의 여타 모든 차원들, 특히 정치적 차원을 규정짓는 것이라 보았다.
결국 세계화는 신자유주의라는 탈 국경적 경제 환경을 바탕으로 보다 친밀해진 인간 사이의 망network이 매개가 돼 서로 접속하면서 영향을 주고받고 그 결과 지속적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며 이것이 현대적 의미의 세계화이고 그 가운데서 기존에 인간이 갖고 있던 많은 개념들이 대치되거나 혼재하는 양상을 띄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세계화는 개념의 거대한 뒤섞임이라 하겠고 이것은 ‘혼종성’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그것은 외적으로 평등을 내세우며 주변과 중심, 다수와 소수가 조화롭게 공존할 것을 내세우지만 내적으로는 소수의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그들에 의한 ‘동종화’라는 이율배반적 모순을 특징으로 한다. 이런 현상들이 바로 다문화 사회 내에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구속, 남남북북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지구촌의 빈부격차, 소수어의 억압과 사멸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 동종화 과정에 저항하는 움직임들도 지구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고 그 예로 ‘문화의 토크백 현상’이 있다.
이것은 주변이 중심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흔히 ‘신흥국’을 논할 때 거론되는 아시아, 남미, 동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전통적 선진국이었던 서유럽과 북미대륙에 위협적 존재로 부각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렇듯 현대적 의미의 세계화는 이질적인 것들이 소수의 헤게모니에 의해 통합, 동종화 돼 가면서도 한편 세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분열’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상을 Karl Ritter는 이미 19세기에 ‘인류의 운명은 민족국가의 엄격한 경계선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된 지속적인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며 이 자연은 수많은 가늘고 중첩되고 끊어진 선들을 통해 눈에 들어온다‘라고 예견하였다. 이것이 곧 오늘날의 혼종적 상황이며 문화에 적용하면 ‘다문화적 상황’이 되고 20세기 후반, 세계화와 함께 가열된 ‘이주’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20세기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이주의 물결은 그 이전의 것과 여러 면에서 성질을 달리한다. 21세기 ‘이동’의 의미는 정보화와 들뢰즈의 ‘유목’의 개념에서도 정의되듯 단순히 육체적 물리적 이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정신적 경계들을 넘나들며 ‘전복’을 시도하는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 그 결과 인간은 면대면 접촉보다 오히려 인터넷을 비롯한 가상공간에서의 접촉을 더 선호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만큼 인간사이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감을 초월해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보다 가까워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디지털문명으로 불리며 기계문명의 발달은 인간소외와 친밀감을 동시에 불러왔다. 이렇게 가상공간을 얻게 된 ‘저 너머’에 대한 갈망과 욕구는 이주, 이민, 여행 등의 다양한 형태의 실질적 이동을 가져왔다. 탈식민, 탈냉전, 세계화 역시 이런 실제 이동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국제이주의 근본적 원인으로서 한 나라와 다른 나라 사이의 생활수준의 차이를 들 수 있으나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이주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상황의 갑작스런 변화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욕구, 그리고 세계화로 인한 고정되었던 지역사회의 흔들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주를 유발시킨다.
정치적 요인으로는 세계화와 함께 국민국가 nation-state의 힘이 약해진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적절한 예는 구공산권 국가 중 일부국가들이 붕괴하면서 일어났고 그래서 구소련 국가들 사이의 이주, 나아가 전 세계적 이주를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세계화가 가열되면서 국민국가의 존재는 다시 견고해졌고 세계화의 정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언어상황을 가열시킨 또 다른 주요 원인은 영어중심으로 진행될 것처럼 보이던 인터넷이나 위성방송들이 다국어 사이트나 방송들이라 하겠다. CBS는 브라질 시청자들을 위해 포르투갈어 방송을 예정하고 있으며 홍콩의 스타TV나 CNN 국제방송은 지역 시청자를 위해 영어 이외의 방송을 시작하고 있다. CNN은 남미 지역을 향해서 24시간 스페인어 뉴스를 내보내고 있고 힌디어 방송도 계획 중이다. 스타 TV역시 표준 중국어와 힌디어로 방송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영어 이외의 언어들은 그 세력 범위를 확대하게 되고, 주요 방송들은 방송 서비스를 지역화해 나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디아스포라의 개념도 상당한 변모를 거치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디아스포라는 인류 전반의 국제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 차이,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국외로 추방된 소수 집단 공동체’로 정의되기도 한다. 이런 디아스포라의 조건은 대략, ‘특정 기원지로부터 외국의 주변적 장소로의 이동, 모국에 대한 집합적 기억, 거주국 사회에 수용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된 소외와 격리, 모국으로의 회귀욕구, 모국과의 지속적 관계유지 ’등을 꼽는다.
그러나, 현대 미국의 유대인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들은 완전히 미국사회에 동화돼 더 이상 고국으로의 회귀라는 고전적 의미의 디아스포라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연구에서는 모국으로 귀환하려는 희망을 포기했거나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다양한 형태의 이주민 집단까지 포함해 디아스포라라고 칭한다.
이렇듯 21세기 디아스포라는 단순히 ‘이주민’이나 ‘망명인’의 차원을 넘어 공동체, 문화, 정체성, 외국에서의 적응, 동화과정 등의 제 현상을 이르는 용어가 되었고, 머지않아, 한곳에 정착해 살면서도 늘 어딘가로의 이주를 꿈꾸는 심리나 정서 상태까지 포괄하는 다분히 포스트모던적 개념으로 발전할 수 있다.
동화적 다문화주의를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경로의 ‘이주’와 ‘이동’으로 말미암아 21세기는 전 지구적 다문화시대를 맞았다. 다문화주의는 다양한 문화나 가치, 다양한 민족 집단과 이들의 개별적인 언어와 습관들을 그대로 하나의 국가체제 속에 공존시키는 사상과 제도를 말한다. 즉 이민족이나 외국인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런 개념은 1990년대 초에 미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이런 다문화주의 정신은 유네스코 ‘문화다양성선언문 UNESCO 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에 명시돼있는데, 문화다양성과 다언어주의를 ‘관용’의 정신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즉 ‘문화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양하게 생겨남을 인정하고 이런 문화다양성은 인류발전에 근원임을 명시하고 문화다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규정하며 이것이 곧 문화다양성과 민주주의를 규정짓는 잣대’라 보고 있다. 이것은 소수민족이나 원주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는 것이고, 다언어에 관해서는 ‘자신이 선택한 언어로, 특히 모국어로, 자신의 작품을 창조하고 보급할 자유가 있으며 그것을 위해 교육과 훈련을 받을 권리, 인권과 기본자유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음’을 명시함으로써 다언어 권리를 인권과 연결 짓고 있다.
또한 이 헌장은 다언어 교육을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다문화 교육의 초석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언어에 관한 세부사항으로 ‘인류의 언어유산을 보호하고 다양한 언어의 표현, 창조 보급을 지원하며, 다언어교육을 장려하고 유년기부터 이런 환경을 마련해주며 이와 함께 문화다양성에 관한 교육을 실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어 다문화와 다언어교육은 세계화시대 절대적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다언어주의의 배경이 된 다문화주의는 문화다원주의와 비교되는데 두 개념은 서로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같지만 실천 방법에서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다문화주의는 1970년대 후반 새로운 형태의 문화다원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 정리되었다. 원래는 교육 분야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사회생활 전반에서 다원적 견해와 소수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논리로 설명되고 있다. 문화의 보편성이나 생활양식의 동일성을 추구하지 않고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한다는 면에서 이 다문화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을 거의 드러내고 있다.
문화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는 20세기 후반 대량으로 발생한 이민정책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소수가 존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리나 격리를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화의 다원성 및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거기에는 주류core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에 대해 다문화주의는 주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가 평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는 차이점을 갖는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다문화주의든 그 속엔 늘 주류가 존재한다. 이것은 언어에도 해당돼서 다수어를 육성하는 정책 이면엔 언제나 특정계층의 언어를 표준어로 혹은 공용어로 인정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통상 다문화주의라 할 때는 문화다원주의에 가까운 개념이고 그래서 ‘동화적 다문화주의’로 환언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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