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이즘이란 말은, 인도인을 나타내는 힌두에 이즘을 붙여 만든 말이다. 그래서 ‘인도의 가르침’ ‘인도인의 종교’를 뜻한다. 하지만 인도종교라 할 때는 베다계통 종교도 있고 불교나 자이나교처럼 베다 전통에 대립하는 종교도 있다.
힌두교는 , 베다종교에 기반을 두고 제사 중심의 브라흐만교의 체제위에서 발전했다. 힌두교엔 특정한 개조 開祖 가 없다. 교리 내용도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 아리아계통 것에다 , 선주민의 토착적 요소, 샤크티(성력) 신앙이나 링가(남근) 숭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해당 카스트에 따라서 또한 많은 차이를 보이며, 종교적 의무, 의례, 풍속, 습관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과거 수천년에 걸친 인도문화는 곧잘, ‘힌두문화’라 불린다.
신 神 관념에서 힌두교는 베다 종교의 전통을 계승했고 기본적으로 다신교적 성격을 띈다. 그래서 자신들의 신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다신적 성격을 갖지만 여러 신의 배후에 최고신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브라흐만, 비슈누, 쉬바 등 세 신이 그들이다. 이것을 삼신일체설이라 부른다. 즉, 다신교적 형태 안에 일신교적 경향을 띄며 이것은 특히 힌두교 개혁 운동때 두드러졌다.
힌두의 신 관념 가운데, 화신 化身이 있는데, 이것은 비슈누 신이 신격, 인격, 동물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이 세계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비 아리안적 성격을 나타낸다. 쉬바신은 아주 많은 별명을 가졌고 실질적으로는 비슈누 신의 화신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힌두교에서는 신자들이 신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비교적 적다. 이 점이 이슬람교나 유대교와 다른점인데, 그래서 유대교나 기독교에서의 신과계약이라는 관념도 없다. 파괴의 신인 쉬바신 조차 지상에 자비를 베푸는 면이 있고, 그 신에게 절대적 신앙, 곧 신애를 바치면 누구도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힌두교에선 여간해선 이단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타종교에 대해서 관용적 태도를 보여, 일례로, 파괴적 신분제도caste에 저항했던 불교에 대해서도 힌두교의 한파로 간주한다. 그래서 붓다는 비슈누 신의 아홉번째 화신이기도 하다.
인도사회를 특징짓는 카스트제도가 힌두교의 근간중 하나라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브라흐만교에서 힌두교로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인도에서는 베다를 인정하는 입장을 정통파, 또는 유파, 라 부르고 , 부정하는 경우, 비정통파, 무파 라 하는데 불교와 자이나교는 대표적 비정통파이다. 이에 반해 힌두교는 물론 정통파의 대표적 예이다.
하지만, 힌두교는, 브라흐만교의 근본성전인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자유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이런 경향은 우파니샤드가 성립하고 불교가 일어나던 시기와 일치한다. 브라흐만 지상주의와 제사를 만능주의가 곤경에 빠지면서 비슈누신과 쉬바신을 받드는 신앙이 생겨나고, 샤크티 숭배와 같은 비 아리안적이고 토착적인 요소가 드러나면서 힌두교속에 수용돼간다. 이처럼, 힌두교는 브라흐만교의 토대위에 아리아적 요소와 인도의 토착적 요소가 복잡하게 융합, 형성돼 성립된다.
힌두교에서는 보통 세 신을 대표적으로 꼽는데 그들은 브라흐마, 쉬바, 바슈누를 의미한다. 브라흐마는 세계의 창조를 담당하고 비슈누는 세계를 유지하며 쉬바는 세계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쉬바신 역시 비뉴수 신과 같이 인도의 토착적 요소와 인도 아리아족 요소가 섞여서 형성되었고 배우자여신을 갖는다. ‘춤추는 쉬바’라는 관념은 가장 원시적이고 유명한 얘긴데, 이 춤은 종족의 주술적 의료행위로 풍요를 기원하는것과 연결된다. 이 쉬바신앙은 굽타 왕조 이후 특히 북인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 쉬바는 전술한것처럼 , 세계의 종말이 올 때 만물을 파괴하는 자,이고 죽음을 관장하는 자이다.
힌두교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파괴는 재생과 관계있다. 이런 의미에서 쉬바는 또한 생식, 생산, 재생을 관장하는 위대한 신, 가축의 주인, 은총을 베푸는 자로 불리우며 주로 남성성기 모양을 숭배대상으로 삼는다. 이런 쉬바에게도 배우자가 있고 그녀는 우마다.
힌두교 성전으로는 <베다>, 2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그리고 여러 푸라나 문헌및 힌두교 여러 파의 성전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힌두사상은 업KARMA와 윤회 SAMSA를 근간으로 한다. 인도인들은, 선업을 쌓아 천계에 태어난다는 고전적 업 관념은 물론 사회적인 윤리 규제로서 업 또는 현실의 괴로움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숙명적 업론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불가촉민 출신 저널리스트인 하자리의 자서전 <불가촉천민>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업은 ’행위‘를 의미한다. 인도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간은 선하든 악하든 어떤 행위를 하면 그것이 그 행위를 한 사람의 다음 삶의 존재방식을 지배하는데 이것을 ’업‘ ’업력‘이라 불렀다. 인간은 시시각각 새로운 행위를 하므로 살아 있다는 것은 늘 새로운 업을 짓는다는 뜻이 되고 그렇게 되면 영혼은 영원히 이 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렇게 업에 얽매여 끝없이 반복하는것을 ’윤회‘라 부른다. 반대로, 이 업의 속박을 끊어 영혼이 진실로 자유롭게 되는것은 ’해탈‘이라 부른다.
이런 업 사상은 카스트제도를 미화하기 위해 도용되기도 한다. 이런 업과 윤회사상은 우파니샤드 시기에 확립된 뒤 불교나 자이나교를 포함해서 인도의 여러 철학과 종교에서 공통된 것으로 되었다. 특히 <바가바드 기타>는 해탈에 이르는 길을 몇가지로 제시한다. 우선,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지식 및 푸루샤 (순수정신)에 대한 인식에 바탕을 둔 ‘즈냐나 요가 지식의 길’, 행위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의무로서 수행하는 ‘카르마 요가, 행위의 길‘, 신에 대한 열렬한 헌신과 절대적 귀의에 바탕을 둔 ’바크티 요가, 헌신의 길‘이 그것들이다. 여기서 ’요가‘라는 말은 인도 철학과 종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어떤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다‘는 뜻이다. 또한, 호흡을 조절하고 어떤 하나의 대상에 정신을 집중하기 위한 좌법 座法, 관법,을 뜻하기도 한다.
힌두사상의 가장 대표적 철학자는 샹카라 이다. 그의 철학은 불이일원론이라 하여, 다양한 현상세계는 마야 (환영)같은 것이고 거짓으로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된 실재는 유일하고 ‘둘이 아닌것’이다. 개아 個我를 진실로 최고아와 동일시하고 현상세계를 허망한 것으로 알게 되는 지혜를 터득하면 해탈을 얻게 되고 모든 번뇌가 소멸한다는것이 그 요체다. 그러면서도 다른 종파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지만 카스트제도를 인정했다. 힌두사상에서 또 하나 주목할것은 ‘다르마’인데 이것은 이법, 법칙, 진리를 나타내는 동시에 올바른 행위, 도, 의무와 정의를 뜻하기도 한다. 넓은 의미로는 종교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사회적 의무나 도덕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이런 보편적 ‘법’이라는 뜻 외에 카스트나 직업상의 의무를 의미하기도 한다. 인도에서는 인생의 목적에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들은 다르마 (법), 아르타 (경제적 이윤추구), 카마 (성적 욕구), 모크샤 (정신적 자유로움)이다.
무슬림은 7세기무렵부터 서북 인도의 인더스 강 하류 지역으로 침입하면서 인도 힌두교 사회에 변화를 가져온다. 시크교는 힌두교에 바탕을 두고 이슬람적 요소를 채용한 종교다. 창시자는 나나크 (1469-1538)이고, 그는 카비르의 사상과 이슬람의 수피 신비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 결과 시크교는 펀잡을 중심으로 한 북 인도에 널리 퍼져나간다. 그에 의하면, 신은 유일하고 모든 종교의 본질은 하나다. 이들은 원래 속성이 없는 최고의 진리, 창조자, 전능자, 불멸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시크교에서는 형식적 의례, 우상숭배, 고행, 카스트의 구별 따위를 모두 부정한다. 그리고 교주인 구루GURU가 중요시된다. 10대 교주였던 고빈드 싱은, 신자들에게 5k를 몸에 지니라고 했다. 이것은 긴머리, 빗, 짧은바지, 쇠팔찌, 칼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시크교는 힌두교의 한 파라기보다, 독립된 종교양상을 보이는데 그들은 진취적이고, 걸식자가 없다는 말까지 있다.
18세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면서 영어와 기독교가 도입됐고 이런것은 역설적으로 인도의 지식계급을 형성하였고 인도 민족주의의 발아가 되었다. 1829년, 사티(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는 관습)가 금지되고 라지푸트족 안에서 성행하던 여아살해 풍습도 금지된다. 20세기에 들어와 모든 카스트 인구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250만의 불가촉 천민 (마하르 카스트)들이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하게 된다.
그리고 힌두교의 소 숭배사상이 유명한데 특히 암소를 신성시한다. <리그베다>에서 암소는 아그냐 (살해할 수 없는)로 언급되는데 , 20세기에 들어와 돼지를 신성시하고 쇠고기를 먹는 무슬림에 의한 암소살해와 충돌하게 된다. 이렇게 힌두교와 무슬림에 덧붙여 힌두교와 시크교도간의 분쟁은 현대 인도의 난제로 남아있다. 그리고 현대 들어와 근본주의가 부상하면서 유혈사태까지 만들어냈다.
근본주의자들은 聖과 俗을 구분하는 서구적 우주관과 속의 영역의 확대인 세속주의는 모든 사물에서 신성을 인지하는 인도인들의 심성에는 수용되기 힘든 것이며 또한 서구의 세속주의 개념은 인간사회와 자연과의 내적인 균형과 질서를 무시하고 인간의 지식과 이성에 따라 자연을 재질서지우려는 것이므로 인도인들의 의식에 부합될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거부한다. 그래서 그들은 인도가 직면한 문제들은 서구적 시각이 아닌 인도 자체의 전통으로부터 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교는 흔히, 유교 불교와 함께 중국의 3대 종교로 꼽힌다. 나아가 동아시아 일대 (한국포함)의 민중, 기층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가와 도교는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다. 굳이 구별한다면 도가는 철학적 의미이고 도교는 종교적 의미이다. 노자를 신격화해서 태상노군 등으로 부르며 신선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도교엔 이렇다 할 개조가 없다. 그만큼, 체계화된 교리, 교의라 할 것이 없다. 기반이 되는 것은 고대 중국의 다양한 민간신앙이다. 그중 중요한 것이 바로 샤머니즘인데, 중국에서는 샤먼에 해당하는 존재를 무, 또는 격이라 불러 남,녀를 구별했다. 고대 중국에서 무의 역할은 대체로 강신, 해몽, 예언, 의술, 점성술 등이 맡았다. 이것들은 한대에 와서 방사 方士라 불리는 사람들의 일이 된다. 무는 그런 능력으로 인간의 원망과 신의 의도를 서로 이어주는 일을 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무는 방사와 동일시되면서 정치중심에서 멀어지고 그들 중 일부가 도사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도교를 구성하는 핵심은 신선술이다. 도교의 목적이 복, 녹, 수를 중심하는 하는 현세 이익의 확보에 있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로장생이다. 그리고 도가 사상은 도교의 교리를 체계화시키는 과정에서 4세기 이후에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도교의 이론체계에서 중요한것은 음양오행론이다. 이런 음양론은 중국적 우주론의 특질로, 유교에서도 핵심이 된다. 특히 의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도료의 장생술 역시 이 의학과 밀접하다.
요약하면 도교란, ‘중국 고대의 다양한 민간신앙을 기초로 하여 신선설 및 여러 신앙 형태의 사상을 섭취하고 전한말 중국에 전래된 불교의 체계에 결정적 영향을 받아 교리, 의례, 교단 조직의 형태를 갖추게 된 종교’를 말한다. 도교는 민중도교와 교단도교로 나뉘기도 한다.
기원전 1세기에는 도가의 사상은 황제신앙과 결합해서 황로사상으로 유행한다. 여기서 황제와 노자는 초인적, 신선적 존재로서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럴 때 불교가 중국인에게 알려진다. 당시로선 불교는 아주 이질적 종교였다. 이런 불교를 사람들은 방술이나 황로신앙 혹은 신선사상과 유사하게 받아들이고 불교 역시 그런 노력을 하였으므로 불교 수용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다. 즉, 당시 불교는 중국의 신비적 풍조를 반영하며, 신성, 방술적 불교의 형태를 띄었다. 후한말 , 신선, 방술, 신비사상은 더욱 유행하게 되고, 빈곤과 전쟁의 희생자인 민중들이 모여들어 태평도, 오두미도라고 불리는 두 종교집단이 생겼는데 이들이 도교의 원류라 할만하다. 그보다 조금 앞서 약 3세기경, 상청파로 불리는 도교 일파가 성립하고 5세기 중엽, 북위 태무제 시대에 구겸지는 오두미도의 장점에 신선설, 도가사상,유교, 불교의 요소를 섭취해서 신천사도라는 도교교단을 조직한다.
살펴본 것처럼 도교는 불교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불교의 승려에 해당하는 것이 도사이며, 비구니는 여관 女冠 , 또는 여도사이다. 도교의 대표적 종파는 2세기에 성립한 천사도, (현재는 정일교), 3세기에 성립한 상청파 , 와 12세기에 성립한 전진교다.
태평도는 오두미도와 함께 전한시대말에 성립된 종교집단이다. 교조는 간길이다. 그는 산동성 출신으로 오행사상, 의술, 예언등에 뛰어난 방사적 인물이었다. 후한기, 사회는 매우 불안정했고 많은 유민이 발생한다. 그 결과 ‘황건의 난’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중국최초의 종교반란이다. 결국 1년도 못돼 평정되지만, 최초의 도교적 집단이었다고 정의내릴 수 있다. 오두미도는 태평도보다 조금 후에 성립됐다.
도교는 다신교적 종교이며 그 신선사상은 화북지방의 산악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것 으로 보인다. 당나라는 도교에 호의적이었고, 종남산, 천태산, 등에 도관을 건립하고 태산의 신을 천제왕에 봉했다. 도교의 의례는 규정된 법도에 따라야 한다. 이것을 재 齋, 초 醮 라고 하는데, 금록재, 옥록재, 황록재 등이 있다.
몇가지만 살펴보면, 금록재는 천재를 물리치고 제왕을 돕는것, 옥록재는 인민을 위하는것, 황록재는 지옥에 떨어진 친구나 선조를 구제하는것, 상청재는 신선이 되기를 기원하는것, 지교재는 죄를 빌고 복을 구하는것 등이다.
전술한대로 도교의 주요목적은 불로장생이다. 그러므로 양생술이 중시된다. 그것은 대체로 벽곡, 복이, 조식, 도인 방중의 다섯가지다. 벽곡은 정신을 깨끗하게 보존해야 장생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장이 깨끗해야 하고 그 결과 오곡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곡대신 약초를 먹는것이다. 복이는 초목이나 금속(광물)을 재료로 하여 만든 약을 먹고 장생을 얻는 방법이다. 조식을 정의하기 위해선, 인간의 활력이나 생력의 근원은 기 氣라고 하는 도교의 근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조식법은 심호흡을 계속함으로써 장생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정신집중법도 비슷한 맥락으로 도교에서 이용하는 방법이다.
도인은, 복기법과 마찬가지로 체내에 기를 보존하고 충실화하는 방법을 쓴다. 유연체조, 마사지 혹은 요가처럼 신체를 움직여 기의 순환을 조정하는 것을 말하고, 도인법과 조식법은 상호 관련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런 도인법에 정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병도 치료할 수 있으며 악귀나 악령을 물리치는 것도 가능하고 언제까지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방중술은 조식법이나 도인술처럼 체내에 기를 축적해서 원기를 보존하는 장생법의 하나이다. 음으로써 양을 보충, 증가시켜 장생한다고 본다. 즉 체내의 음양의 기를 조화시키는 것을 양생의 원리로 본다.
그러나 이 방중술이 처음부터 도교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4세기경 도교에 유입되었을때 문란한 성교파티까지 벌어져 불교로부터 심한 비판도 받게 된다. 5세기에 성립한 신천사도에서는 방중을 없애버리고 도교의 모습을 일신한다.
현재 도교가 활발한 곳은 대만이며 동남아시아의 화교사회에도 널리 퍼져있다. 심지어 하와이의 호놀룰루까지 그렇다.
한국에 도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영류왕 (624년)때 당의 고조가 <노자도덕경>과 도사를 보내 <도덕경>을 강론케 한데 기인한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에 도교가 정착된것은 토착적인 산악신앙과 신선사상이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고려때에는 도교가 왕실의 보호를 받았고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국교화로 도교가 쇠퇴하지만 소격서라는 제도로 존속된다. 도교는 왕실의 안녕을 염원해주면서 다른 한편 민간신앙형태로 존립한다.
현대 한국사회의 도교적 현상은 다양하다. 특히 대중문화중의 대항문화 counter-culture 적 요소가 그렇고 그 속의 현실도피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1960년대의 무협소설, 70년대의 무협영화, 80년대의 단 丹류의 소설과 양생술, 기공 氣功등의 인기, 90년대초의 노장사상의 유행이 그렇다.
이제 도교의 철학적 측면인 도가의 노장사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노자는 도가 철학의 시조라 할만하다. 그는 단지 5000여자의 글만을 남겼지만 영향력은 대단했다. <도덕경>이라는 그 책은 완벽하며 시적이다. 전반부인 <도경>은 이론에 치중하고 후반부인 <덕경>은 실천에 치중한다.
도는 진리이며 덕은 그 기능을 뜻한다. 노자의 무명 無名은 공자의 정명 正名과 대비되는 것으로, 이름으로 삶을 그르치지 말라는 뜻이다. 즉, 이름 때문에 잃어버리는 삶의 존엄을 되찾자는 뜻이다. 이와 비슷하게 장자는 무용지용을 부르짖었다. 쓰임(소용)이라는 가치에 의해 소외되는, 사람의 권리를 되찾자는 얘기로 서로 상통한다. 하늘만이 사람을 관장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바로 노자가 바라는 무위자연의 이념이다. 그리고 노자는 모성애 (慈)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장자는 노자와 더불어 도가의 양대산맥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중 <장자>가 대표적이다. 거기서 제시된 기와 음악, 양생의 문제는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는 무용지용을 외쳤다. 무를 절대성과 상대성, 유용성이라는 세가지 관점에서 강조한 노자에 비해, 장자는 소용보다는 무용의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소용이 인간을 소외시키므로 무용을 내세워 탈가치적 인간을 꿈꾼다는것이 그 핵심이다. 즉, 인간도 쓸모없을 때야 말로 쓸모 있다는 역설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무용이나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과장을 삼간다는 것에 가깝다.
이런 노자와 장자가 ‘노장’이라 함께 불린 것은 <회남자 淮南子>에서 부터다. 진의 중국통일이후 한을 거치면서 노자철학은 사상적 전환을 맞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황로학黃老學’이다. 이 황로학은 개인의 양생과 국가의 통치라는 양면을 띈다. 이런 것은 한비자에서 드러나는데, 노자의 도와 법가의 술이 만난다. 그리고 동중서에 의해, 유가가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노장철학은 그것의 형이상학적 원리를 제공한다. 그래서 삼현경이라 일컬어지는 <역> <노자> <장자>가 유행하게 된다. 이런,유가를 중심으로 한 노장학의 발전은 위진시대를 거치면서 왕성해져 결국, 인의도덕으로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기 氣에 대해 장자는 노자와는 다르게 철저한 기일원론적 입장에서 우주와 세계, 인간을 설명했다. 자연은 무위일뿐 아니라 기의 움직임은 너무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므로 ‘스스로 그렇게 될 뿐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이 기가 사회주의 중국 학자들에겐 유물론의 근간으로 작용하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그들은 기 철학을 중시하면서도 장자를 도외시했는데 그 까닭은 장자가 유심론자여서 그렇다.
이러한 기는 보통 네가지로 나뉘는데 첫째, 기를 형이상학적인 근본 실체로 여기는 것으로 원질의 문제가 뒤따른다. 둘째, 기를 외재적인 물리세계속의 물질로서 파악한다. 즉, 일종의 질료로서 어디에나 퍼져있다. 셋째, 기를 호흡으로 여긴다. 이때 기는 영혼적인것과 상관있을 때도 있고 아울러 인체중의 어떤 호흡과 관련되기도 한다. 넷째, 기로써 인체와 인사 人事를 설명한다. 이때 기는 인간의 성질과 인간관계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양태 mode이다. 이 네가지는 다시, 본체론, 우주론, 인체론, 성정론으로 환언되기도 하다.
노자의 ‘덕’에 대한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덕은 도에 비해 기능적, 적극적 개념을 갖는다. 노자의 덕은 유가의 덕도 아니며 품덕, 덕목같은 덕이 아니다. 유가의 덕이 윤리적, 도덕적인 것이라면 도가의 덕은 정치, 사회적인 것이다. 그래서 도가의 덕을 말할 때 공, 능, 효등의 말이 사용되는것이다. 이것은 효력, 능력, 공력, 공용, 효용등으로 풀이할수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이 덕을 power로 연결짓기도 한다.
<도덕경>에서 덕은 위정자를 위한 일종의 정치술이나 사회에서의 생존을 겨냥한 처세술로 풀이된다. 환언하면, 성인은 도가적 기준에서 최고의 공리성을 얻은 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비스럽고 오묘해서 숨겨져 있는 힘, 즉 현덕으로 나타난다. ‘현덕’의 ‘현’은 드러나지 않지만 검게 숨어있는 상태를 뜻한다.
결국, 현덕이란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듯하나 속으로 감추어져 있는 깊고 깊은 덕을 말한다. 즉, 성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그것이 곧 정치다.
힌두교와 도교를 비교하면,
힌두교와 도교 모두 인도와 중국의 토착종교와 신화, 민간신앙에 바탕을 둔 민족종교적 성격을 띈다. 둘 다 다신교적 성격을 갖지만 힌두교는 다신교 가운데 최고신을 두는 형태를 취한다. 다신교는 신비적 요소를 띄며 두 종교 모두 그렇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라면 바로, 평등과 불평등의 개념이다. 힌두교의 매력이라면 업과 윤회, 해탈에 이르는 그 다양하고 아름다운 여정일텐데, 그 근간엔 출신이나 직업, 종교 등에 기인하는 계급제도 caste의 수용이 깔려있다. 그런 요소는 결국 훗날 불교와 이슬람, 기독교 등 만인평등을 외치는 종교로의 개종자를 낳게 되고 오늘날, 인도를 종교분쟁국으로 만든 결과를 낳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업’개념은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힌두교나 도교 모두 무위, 자연상태를 선호하는 신선사상에 가까운 것 같지만 힌두교의 신들은 보다 인격신적인 성격을 띈다. 도교에서 말하는 ‘덕’역시 정치,사회적 의미를 띄어서 이런 실용성이 중국인들의 정서와 맞아 민족종교로서 자리를 굳힐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도교나 도가 본연의 색은 퇴색하고 특히 도가의 ‘기’ 사상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유물론의 근거로 도용되기도 하는 수난을 맞기도 하였으며 도교를 단순히 무속과 주술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많다.
그럼에도 두 종교 모두 무언가를 초월한 절대아, 내지는 무위상태를 강조한 초월성이 복잡한 현대인의 마음을 끄는 요소인듯 하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도피라고 할 수 있다. 힌두교는 얼핏, 유불도교로 요약되는 동아시아권에서 조금 빗겨나는 인상을 주지만, 다신, 범신론적이며 주술적이라는 것에서, 샤머니즘이나 정령신앙의 토착정서를 공유한 여타 아시아종교들과 근본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부분에서 프레이저나 타일러가 주장한 모든 종교의 시작은 애니미즘과 주술이었다고 하는 말은 주목할만 하다.
참고로, 특정종교들을 비교할 때 가장 기준이 되는것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 종교들의 내세관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의 대표종교이자 민간신앙이라 할만한 유교 불교 힌두교 도교의 내세관을 간략하면,
유교의 하늘개념은 기독교보다 훨씬 일반적이어서 유교를 믿는 경우 하늘은 천지신명의 다신적 개념이다. 이렇게 범신적 경향을 띄지만 천지신명은 분명 신의 차원에 있으므로 유교역시 초월적 요소를 갖는다.
힌두교의 내세관은 ‘궁극적 실재와 하나가 되기 위해 윤회과정에서 벗어나는 것', 즉 해탈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이승의 일회적 삶을 선호하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은 다분히 현재의 삶이 ‘업’이고 이어지는 삶이 그것의 결과라는 논리이기 때문에 역시 초월적이다.
불교는 힌두교와 유사하지만 다른 점을 찾는다면 영혼이 한 개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형태 즉, 욕망 의지 등의 형태로 남아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 면에서 다르다. 그리고 열반이란 이 윤회를 벗어난 상태로 궁극적 실재와 합쳐지는 것이 아니라, 불사의 경지 그 자체를 말한다. 다시 말해 존재를 초월하는 것을 말하고 여기서 극락의 개념이 생겨났다. 그래서 불교 역시 초월적 내세관을 갖는다.
도교는 노자의 ‘덕’이 의미하는 현실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신선사상을 기초로 한다는 것에서 여타 종교의 내세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가 복잡 한것은 그것이 토착신앙, 여타종교, 철학, 역사, 그리고 인간의 본능이 교묘하게 결합돼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