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이래 중요한 문화의 흐름으로 자리잡아온 포스트모더니즘은 종래의 모더니즘이 근본적으로 과학과 합리성을 중시한것에 반해 이질적 요소들의 혼성과 모방, 복제와 해체까지를 용인한 다분히 혁신적인 문화운동이다. 원래 포스트모던이란 말 자체는 1870년부터 사용됐지만 1960년에 이르러서야 오늘날의 의미를 갖게 되고, 수잔 손탁과 레슬리 피들러의 글에서 보여지는 ‘새로운 감수성’이 그 단초가 된다. 여기서 비로소 고급/대중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이후, 데리다, 푸코, 라깡, 제임슨, 리오타르와 보드리야르등의 이론가들에 의해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하게 해석되고 변형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팝음악을 비롯한 대중문화는 물론, 후기자본주의, 다국적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에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을 헵디지는 '상호텍스트성, 인식론에 있어 반목적론적 경향, 존재론적 형이상학에 대한 공격, 집단적 절망과 병적인 현상, 표피성의 증식, 물신주의, 이미지나 부호, 스타일에 대한 미화, 문화, 정치, 실존적 파편화, 탈중심화, 의미의 내파, 시간의 공간 대체성 ‘이라 정의한다.
그런가하면 후이센은 1950,60년대의 영미의 팝아트에서 이런 기운을 감지해내고, 팝아트와 대중문화의 관계를 미국의 대항문화와 영국의 언더그라운드의 연결고리에서 찾으려 한다. 그래서 ‘넓은 의미에서의 팝은 포스트모던의 개념이 처음 발생한 배경’ 이 됐다고 말하면서 팝음악과 미술의 다양한 만남을 그 예로 든다. 또한 그는 미국보다 훨씬 앞선 유럽의 아방가르드에서 그 기원을 찾기도 하면서, ’반베트남전, 흑인민권운동에 대한 지지, 고급모더니즘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거부, 페미니즘, 문화적 실험주의, 대안연극, 해프닝, 러브인 love-ins, 일상예찬, 사이키델릭 예술, acid-perspective‘등 미국 대항문화의 여러요소들을 포스트모던한 것으로 보기도 했다.
한편, 문학과 철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소외된 인간상의 회복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와같이, 이성과 감성, 혹은 지적 차원과 감성적 차원을 이원적 대립으로 규정하고 전자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온 전통 철학의 주지주의, 이성중심주의, 즉 로고스 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김욱동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내리는데, 그것은 상호 텍스트성, 탈 장르화, 자아에 대한 회의, 텍스트와 독자의 역동적 관계 , 추상적 체계성, 총체성 거부라고 하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성과 단절하는 개념이며, 상대주의 비이성주의 허무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사회적 응집과 인과적 인식을 중요하게 여기던 모더니즘과는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중성, 다원성, 파편화, 비결정성을 특징으로 하고 후기구조주의의 영향 때문에 기표와 기의 사이에 의미가 고정돼있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유럽의 아방가르드에서 그 기원을 찾을수 있는 일종의 ’전복‘현상이며 민중적, 탈 이데올로기적 문화예술사조로서, 미시정치, 타자들의 정치 등으로 요약되기도 한다.
주요이론가들로는,
후이센이나 헵디지 외에, 리오타르, 보드리야르 , 제임슨역시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주자들로 꼽힌다.
우선 장 프랑소와 리오타르의 경우, 그는 포스트모더즘 현상을 보편적 대서사 몰락과 문화의 다양성으로 해석했다. 1979년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내놓으면서 ‘차이성’과 다원성‘이라는 용어를 보편화시켰다. 그는 아놀드식의 고급/대중문화의 이분법이 붕괴됐다고 하면서 ‘숭고’에 대해 언급한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자연속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나 힘을 가진 것이 아닌, 아방가르드 예술이 주는 묘한 효과나 인간의 합리적 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것을 체험할때의 불편한 쾌감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숭고를 드러내는 방법중의 하나로 ‘침묵’을 꼽는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의 묘사를 포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이 세상엔 비가시적인 세계가 존재함을 암시한다고 했다. 이것이 미니멀리즘과 연결되면서, 그는 이것을 ‘숭고의 부정적 묘사’라 불렀다. 그리고 이러한 ‘숭고’는 사건성을 전제로 하며, 기대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아 두려워하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그 모순되고 혼합된 감정의 가치를 전제로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숭고는 더 이상 무겁고 권위적인 것이 아닌 가벼운것임을 강조하면서 예술은 더 이상 발신자가 주체가 아닌 수신자 지향의 존재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혼합, 인용, 장식, 혼성모방 같은 예술현상들이 결국엔 키치나 그로테스크로 흐를것이라는 비관적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과학은 인류의 점진적 해방의 도구로 파악돼왔고 그런 과정에서 다른 서사들을 조직하고 가치를 부여하면서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2차 대전후, 그런 것이 감퇴하면서 ’대서사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다고 했다. 그래서, 과학은 길을 잃었고 그 목표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라 실행성 performativity에 있을뿐이라고 말했다. 교육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보여서, 가르치는 것이 참인지 거짓인지가 중요한게 아니고, 비판적 사고 그 자체만을 목표로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던적 교수법이라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가로 손꼽히는 장 보드리야르는 ‘스캔들’의 이면을 파헤침으로써 포스트모던한것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동시에 하고 있다. 일례로, 워터게이트 사건을 말하면서 그런 일이 정치세계엔 만연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스캔들’로 축소해 보도 한것이라 지적했고 그것을 ‘재생의 목적을 위한 스캔들의 시뮬라시옹’이라 명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확실성의 붕괴나 ‘진리’라는 대서사의 해체를 언급한 리오타르와 유사하다. 신, 자연, 과학, 노동계급 등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고 그 결과, 실재가 과잉현실속에 붕괴되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그래서, 근원에 대한 신화나 실재에 대한 기호가 늘어나고, 실재와 그에 대한 지시물들이 광적으로 쏟아져나오게 된것이라 지적한다.
그는 또한 맥루언의 영향을 받았는데 맥루언이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말한 것을 확장해서 ‘미디어는 인간의 확장’이라 말한다. 다시말해, 오늘날에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하이퍼 리얼리티’가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것이 돼버려서, 인간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시나리오의 배우처럼 늘 어딘가에 있을것만 같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듯’ 그렇게 살아간다고 했다. 또한 이것은 서구사회가 종전의 상품생산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옮겨나는 징후이며 더 이상 경제나 생산의 영역, 이념이나 문화의 영역 구별이 불가능하게 된 사회가 되었음을 말하고 이것이 곧 포스트모던 사회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그는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연금술적 사회에서 기호적 사회로의 변화’라고 표현했다.
그의 시뮬라시옹 이론을 좀더 살펴보면, 원본 없는 동일복제물이 성행하고 이렇게 원본과 복제사이의 구별이 소멸되는 과정을 시뮬라시옹이라 칭했고 이것을 포스트모던사회의 특징이자 ‘과잉현실’이라 불렀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성에서 비롯되는 ‘차이’들이 극단에 이르면 오히려 모든 차이가 말소돼 ‘동일자의 무한증식’의 단계로 전락하게 되는데 이것을 ‘내파’라고 하면서, 이렇게 현실과 시뮬라시옹은 서로 아무 차이도 갖지 않은채 원형궤도를 따라 돌고 돌면서 실재와 가상, 현실과 재현, 원본과 복제, 기의와 기표의 차이는 붕괴되고, 두 대립항들은 서로 구별되지 않으면서 하나로 결합된 거대한 시뮬라시옹의 세계로 변한다고 했다.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혁명성은 이렇게 의미와 재현을 거부하는것이라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계급’의 개념도 없어지고 이것은 사회성과 역사성 모두를 소멸시킨다고 했다. 이렇게 원본이 복제를 닮아가는 현상속에선, ‘세계’의 개념은 폐기되고 그로써 세계는 사라지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생존하는 인간은 역설적으로 ‘관념화’된다고 비판했다. 이것을 미디어 이론가 안더스는 ‘디스토피아’라 불렀는데 보드리야르는 이런 상태 자체를 포스트모더니즘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눈여겨본것중에 트롱프뢰이유 (눈속임) 미술이 있는데 환언하면, 극사실주의 회화가 그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진 이 그림들 속에서 현실의 실재성이 소실됨을 지적한다. 이렇게 일순간 사라져버리는 속성을 가진 현대예술에 대해 그는 하루살이 예술, 반(反)예술이라 불렀고 그래서 결국 현대의 이미지들은 ‘사라져버린 무엇인가의 흔적일 뿐’ 이라고 회의했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혼성과 해체의 모더니즘을 정신분열로까지 연결지으면서 그것을 시간인식과 연관짓는다. 즉, 과거-현재-미래의 순차적 시간인식이 아닌 과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하는 현재적 시간에의 집착이라 보았다. 거기서, 현재의 체험은 더 강렬하고 놀랍고 생생해지면서 물질화 되고 그래서 세계는 신비하고 억압적이면서도 환각적 에너지로 충만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것은 헵디지가 애시드 원근주의라 부른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제임슨은 이런 현상을 라깡의 용어를 빌려, 언어적 혼란, 즉 기표들 간의 일관적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보았다. 즉,모더니즘의 시간중심문화가 포스트모더니즘에 와선 공간중심으로 옮겨간 것을 말했다.
그리고,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다국적 또는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우세종’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우세한 현상이긴 하지만, 문화생산과 소비에 있어 결코 유일한 형태는 아님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르네스트 만델의 세가지 분류-시장 자본주의, 독점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를 인용하면서 이 세 번째 단계인 후기자본주의에 들어서면 ‘여태껏 상업화되지 않았던 분야에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본이 침투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고 이 세단계를 각각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환언했다.
그러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혼성모방의 문화이자 역사적 암시의 자족적 유희임을 지적했다. 혼성모방은 흔히 패러디와 혼동되는데, 둘 다 모방과 흉내의 성격을 갖지만 패러디는 ‘배후동기’ 즉, 기준, 관습에서 나온 것을 흉내내거나 조롱하는 성격을 띄는 반면, 혼성모방은 ‘텅빈 패러디’거나 ‘공허한 복사물’이고, 거기서부터 어떤 종류의 기준이나 관습이 태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차이점을 보인다. 이런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타문화를 ‘인용’하는 것을 넘어 ‘합병’까지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곧 ‘주체의 죽음’과 연결되는 개념인데 이렇게 개인성의 말살이 혼성모방을 불렀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 개인적인 것이란, 모더니즘적 고급스럽고 특별한 어떤것에 가까운 개념이다.
또한 포스트모던 문화는 상호 텍스트성의 문화로서 깊이가 없는 표면적인 것이고 이미지의 문화여서, 그 해석적 힘을 다른 이미지나 다른 텍스트에서 빌려와야 한다고 보았다. 그 결과 남는 것은, ’감동의 소진‘뿐이라고 지적했다. 그 예로 ’노스탈지아 영화‘를 드는데, ’백투더퓨처2‘ ’페기수의 결혼‘ ’엔젤 하트‘ 블루벨벳’ ‘스타워즈’ 가 그 실례이다. 이런 영화들에서 그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이 영화들이 과거의 어떤 문화적 요소나 신화성, 또 스테레오 타입을 잡아내려 한다는것과 다른 영화에 대한 영화, 또는 다른 재현에 대한 재현을 통해 ’거짓 리얼리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무리 다른 이름으로 치장하여도 구제불능의 상업문화이며 사소함을 특징으로 하는 문화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질 들뢰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신체의 코기토’적 회화에서 포스트모던적 징후를 간파했다. 그것은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부정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감각’은 유물론적 의미를 갖게 된다. 감각은 인식 (정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몸)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몸은 곧 ‘무정형의 고깃덩어리’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는 폭력적인 인상을 심어주는데 그것은 ‘재현된 폭력’이 아닌, ‘감각의 폭력’이다. 현실의 잔인함이 아니라 회화의 잔인함, 즉 색채와 형태의 잔혹함인것이다. 아르토식으로 말한다면 ‘잔혹함의 원본적 재현’쯤 된다. 그의 그림은 구상, 비구상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신체 (몸)의 신경조직을 자극해 그 쇼크로 변형된 몸’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은 동물이고, 고통받는 동물은 인간’이 된다. 이것은 곧 ‘동물되기’ ‘인간되기’의 의미로 환언될수 있고 그래서 ‘창조적이며 역행적’이라 할만 하다. 그리고 베이컨은 종종 인물의 얼굴을 지워버리는 작업을 했는데, 얼굴을 지운다는 것은 ‘유기체의 해체, 의미작용의 해체, 주체의 해체’로 해석될 수 있고 그렇게 파괴되고 망가진 속에서 역설적으로 미래가 느껴지는 그림을 그렸다.
베이컨보다 훨씬 전 고야가 ‘광인’들의 얼굴에 매료된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베이컨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히스테릭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히스테리화된 감각은 내재성과 초월성 (주체와 대상)의 구별을 말소시키고 재현적 자기를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 들뢰즈는 이밖에도 베이컨의 그림에서 ‘힘’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장식으로서의 힘’이 아니라 ‘리듬과 감각 사이의 관계’였다. 그리고 그것을 회화가 지향할 바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들뢰즈의 회화관은 ‘욕망의 내재성,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 프로이트의 리비도’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인것으로 그가 회화에서 기대한 것은 ‘감각의 폭력을 통한 신체의 변형’이었다. 이런 폭력, 자기파괴성, 해체 같은 개념들이 바로 포스트모던과 닮아있다 . 화가 베이컨은 한편, 들뢰즈적 코기토를 그림으로 보여주면서도 사진에 대해선 거부감을 보여 일면 보수성을 엿보게 한다.
문화연구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를 보면,
영국에서 태동한 문화연구는 전통적 커뮤니케이션 연구와는 대별되는 비판 커뮤니케이션의 한 갈래였고 1950년대 영국의 리처드 호가트에 의해 'popular culture'속에 침투하는 대량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로가 되었다. 그후, 톰슨, 윌리엄스, 홀로 이어지는 영국문화연구는 1970년대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모하고 그러다 1980년대 영국문화 연구가 미국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많은 혼란이 일었다. 그러나 문화연구가들은 일정한 공통점을 갖는데 그것은, 사회는 지배집단들과 종속집단들로 나뉜다는 것. 지배 집단들은 문화영역뿐 아니라 정치, 경제에서도 그들 집단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 문화적 의미들은 사회구조와 권력에 연결된다는 것, 매체 사용자에 의한 문화창조는 반대정치를 위한 하나의 기초로 활용될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상기한대로, 1970년대에, 레비스트로스, 알튀세르, 바르트, 푸코, 라깡같은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들이 문화연구에 일조를 하는데, 그들에 의해 발전된 문화적 대상들에 대한 언어학적 구조주의는 문화와 사회구조를 결합시키는 전기를 만든다.
홀은 이 단계에서, 영국의 문화주의 전통과 구조주의의 입장인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결합시키는데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란, 지배계급에 의해 피지배계급에게 주어지는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것이고, 사람들에 의해 재구성되는 역동적 과정이었다. 여기에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도 가세해서 문화의 현실참여적 요소가 강조된다. 그러다 미국의 문화학자 피스크에 이르러, 텍스트를 해독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하는 것은 해독자의 사회적 위치에서 비롯되는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담론내에 주어진 위치의 다양성이나 해독자의 다양한 담론의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논리가 개진된다.
문화연구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통점은 우선, 양자 모두 반(反)본질주의라는 것이다. 이 둘은 기원과 인과성보다는 효과, 가능성의 조건, 중층 결정 등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주체는 유동적인 것이며 상황속에서 재생산을 반복한다고 본다.
그리고 문화연구와 포스트모더니즘은 둘 다 비슷한 인식론적, 정치적 전략을 갖는다. 둘 다 반 엘리트적이란 뜻이다. 이점에 관해 푸코는, 권력은 끊임없는 저항속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둘은 그러면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화적 실천이 낳는 효과성의 복수상태를 이론화한 것이지만 문화연구는 이데올로기라는 단일 효과성의 영역을 상정하는 접합이론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즉, 문화연구는 담론효과에 관한 이해를 이데올로기적 실천에 국한시키고, 그래서 이데올로기 안에 모순된 담론이 존재하게 되고 그런 이데올로기가 다른 효과들과 뒤엉키게 돼서 왜 대중이 특정한 투쟁영역을 선택하고 어떻게 투쟁의 장소로 모이게 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맹점을 지닌다.
그밖에, 피스크는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된 ‘즐거움’을 문화의 주요 테제로 삼는다. 그것은 바흐친의 ‘카니발’이론과 바르트의 ‘희열’에서 비롯된 것으로 카니발은 도덕, 훈육, 사회 통제에 반대하는 신체적 즐거움과 관련돼있고, 웃음, 공격성, 퇴폐를 특징으로 한다. 또한 기존질서로부터 일시적 해방을 추구하고 위계질서를 정지시킨다. 의미나 깊이를 거부하고 단지 육체적 감각 위에서만 작동하므로 주체성을 해방시킨다. 바흐친은 이렇게 대중문화를 저항의 원천으로 보았다.
그런가하면 바르트는 ‘희열'을 말하면서 그것은 오르가즘, 기쁨, 안정상태의 상실 같은 것이며, 육체적인것이고 이데올로기를 넘는것이며 문화적 산물이 아닌 자연의 산물이라고 했다. 이런 카니발적 문화의 정의에 대해 그로스버그는 ‘정서 affect’를 중시하는 ‘정서경제’론을 내놓는데 정서도 이데올로기처럼 특정 상황에선 개인으로 하여금 투쟁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이렇듯,영국에서 시작된 문화연구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결되고 그것은 종잡을수 없는 찰나적인 무엇, 사소하고 소멸하는 것, 원복과 복제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 등등의 의미를 갖는다. 더 이상 고급/대중문화의 개념은 성립치 않으며 단순히 문화예술의 차원을 넘어 삶의 모든 차원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면서 인간은 주체상실과 혼돈, 파편화되고 분절되었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비로소, 그동안 인간을 억압해온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간파하고 그것에 저항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신분열이다 . 하지만 그것은 자유를 위한 광기다. 푸코와 데리다도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계지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