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처럼 말하기,행동하기>

키치 인간, kitsch era

by 박순영

"모든 예술에는 키치의 흔적이 담겨 있다"는 말이 있듯이 ,포스트모던 시대 키치현상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것이 아니다. 모든건 복제되고 원형과 복제를 구별할수 없는 시대가 왔고 숭고하고 엘리트적인건 점차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그대신 가볍고 경쾌하고 대중적이고 값싼게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 브런치 플랫폼만 해도 키치적이라 할수 있지 않을까? 심적 부담을 최소화한 글을 최대한 읽기 편하고 접근하기 편하게 쓰고 있기때문이다.


이제 미추의 개념도 달라지고 아무리 값비싸고 귀한것도 내가 가질수 없음 평가 절하되는 세상이 왔다. 이런 변화에 큰 기여를 한게 바로 디지털이 아닐까 싶다. 시공간을 초월해 수많은 싸면서도 매력적이고 그래서 심적 데미지가 크지 않은걸 감상, 선택할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포스트모던은 곧 키치다, 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키치(kitsch)는 독일어로 저속, 또는 질이 낮은 이라는뜻으로 자극적이면서 저속함, 산만한, 그러면서 싸구려로 보이는 일상품에서 의상, 건축,까지를 이르고 전근대적 감각의 추구와 세련미를 배제하는 것을 일련의 특징으로 한다. 이런 현상은 주로 고도성장기를 맞은 나라에서 갑자기 누리게 된 물질적 풍요에 대한 권태감에서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1910년대에 이르러 국제적인 용어가 된 이 독일어가 지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60년 무렵이었다. 어원은 분분한데 그건 차치하고라도 "윤리적으로 부정함", "진품이 아님"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은 공통이다.

이런 가품들의 생명력은 왕성해서 문학, 가구, 장식품, 음악 등 수많은 분야에까지 침투했고 특히 색채에서 두드러졌다. 키치가 선호하는 색채 테크닉은'순수하게 보색 관계에 놓여 있는 색들의 대비, 흰색의 가감에 의한 색조의 변화, 특히 빨강색에서 보라색, 자주색, 연분홍색으로 이어지는 색조, 또는 무지개 스펙트럼 등'이라 할수 있다.



그리고 키치는 원자재 그대로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일례로 나무에 대리석질감을 낸다든가, 플라스틱위에 겉표지를 붙인다든가, 아연은 청동처럼 청동은 금처럼 세공되는 것이다. 즉, 변장과 눈속임이 묵시적으로 이루어지는 미학 분야라 할수 있다.

이런 키치에 저항하는게 있긴 하다. 기존의 사물 또는 기술 생산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는 기능주의가 그것이고 그것은 즉 '안티 키치'인 셈이다. 기능주의는 사용가치가 없는 것, 불필요한 사물들의 만연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나 의식적으로 장식을 배제하고자 하는 금욕주의적 엄격성을 기조로한다.

이처럼 키치에 대한 비판도 무수히 많다.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는 키치를 "예술과 혼합된 유해 물질"이라고 했고,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 1892~1978)는 "키치가 내세우는 요구들이 아무리 고상한 것일 수 있다고 할지라도 키치는 사이비 예술인 것이며, 달콤하고 싸구려 형식을 갖춘 예술이고, 위조되고 기만적인 현실 묘사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한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예술의 대용품인 키치는 어렵게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미의 가치 체계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게으른 청중에게는 이상적인 음식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디지털시대 키치미학은 보다 긍정적 의미를 갖는데.이미지와 무한한 합성, 변종이 가능한 디지털 문화 환경에서 키치는 상상한 모든 것이 현실화되는 가상 이미지의 최종 정착지가 되기 때문이다.

헤르만 브로흐(Hermann Broch, 1886~1951)는 키치에 대해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끊임없이 '최소한 한 방울'이라도 키치가 들어 있지 않은 예술 작품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시한다.


브로흐는 급기야 '키치 인간'이라는 개념까지 생각해낸다.

키치 인간이란 실제 삶에서 대상의 본래적 가치 이외에 다른 덧붙여진 가치들을 소비하려는 존재를 가리킨다. 달리 말하자면, 키치가 아닌 작품들 또는 상황들조차 키치로 경험하려 하는 사람이다.

오창섭은 “키치적으로 말하고, 키치적으로 입고, 키치적으로 소비하는 키치맨들”로 kitsch era를 요약하고 있다. 즉 우리자체가 키치화되었으므로 키치 개념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요소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것이리라.급속한 고도의 경제성장 사회에 나타나는 권태가 그 바탕임을 감안한다면 한국사회만큼 대표적인 사례도 없을 것이다.





이런 키치개념이 근래와서 새롭게 부각된 사건이 바로. NFT 예술 때문이다. 희소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을 총칭하는 말이다. 물론 전통박물관이나 갤러리에서 아직 nft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들은 디지털감각과 예술에 열광하고 있고 그만큼 예술의 개념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나타낸다 할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질낮은 작품이 고급예술인척하는 경우인 키치를 대중은 왜 반길까, 그안에 혹시 저항의 의미는 담겨있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예술가가 이렇게 말한건 아닐까? “키치의 감성은 나를 부르주아 감수성의 해악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즉, 키치는 엘리트만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고급예술을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수 있게 대량으로 모방해 낸 안티테제라 할수 있다.

장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키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수요가 있어야 되는데, 이 수요는 사회적 지위 이동에 따라 결정된다. 사회적 이동이 없는 사회에서는 키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라 하겠다.

그러나 고급, 기존 예술에 대한 반항, 저항적 의미에서 생겨난 키치를 그나름의 순응적 맥락으로 보는것도 일견 타당하다 하겠다. 키치문화라는 한 장르 역시 근미래에 전통 장르에 속할수 있기 때문일것이다.


요약하면 키치현상은 미학적으로 보기 괴상한 것, 저속한 것과 같은 사물을 뜻하는 미적 가치로 요약될수 있고 세계 각지의 전통·현대 민예품, 인형, 가면, 상, 유아 완구 등에 보인다. 예를 들면 동물과 인간의 결합이 키치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키치는 단순히 엽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 문화에서 키치는 패션과 영화, 광고 등에 걸쳐 하나의 주요한 속성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기존 엘리트 문화와 감각, 예술에 저항하는 안티적 행위이자 인간 안의 진짜로 저열하고 싸구려적이고 눈속임에 대한 이끌림과 맞물려 일어난 또 하나의 고백 미학은 아닐까?


https://en.wikipedia.org/wiki/Kitsch

https://news.v.daum.net/v/20220602030503556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17XX33900072

https://ko.wikipedia.org/wiki/%ED%82%A4%EC%B9%98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54XXX98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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