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란 뭘까? 일상의 권태와 피로에 찌들어 잠시 일탈해보는 심리나 행위는 아닐까? 그만큼 삶이 척박하다는 증거도 되리라. 그래서 어쩌면 낭만의 뿌리는 짙은 페시미즘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춘기 시절, 한번쯤은 읽거나 외워봤을 워즈워드의 시<초원의 빛>이 낭만주의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할수 있다.
“...초원의 빛
꽃의 영광으로 채워졌던
그 시간이 다시 올 수 없다 하더라도...”
딱히 이 제목의 단시였는지, 장시의 일부였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인간이 규제와 억압을 견디는데는 한계가있다. 이렇듯 낭만주의도 그 전의 계몽주의 신고전주의에 저항하면서 일어난 사조라 할수 있다. 질서 냉정함 조화 이성, 이런것들에 반해 자유로움, 상상력, 비합리성, 개인등을 중시한 유닛이다.
시기적으로는 대략 18세기말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주로 서구 문명에서 문학, 미술, 음악, 건축, 비평등에서 나타났다.
로맨티시즘(Romanticism)이라는 단어는 비현실적인, 지나치게 환상적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며 이성과 합리, 절대적인 것에 반하는 말이다. 낭만주의의 첫 주자는 계몽주의 시대에 독일의 루소라고 불리던 헤르더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헤르더는 감정과 감성, 민족,역사를 강조하였으며, 그의 저서 "인류 역사의 철학적 고찰"은 후에 러셀과 헤겔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느낌과 감정을 강조하였으며, 계몽주의자들이 설파 했던 이성에 대해 강한 회의를 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결코 이성이라는 것을 완전히 무시한건 아니다.
그들은 과거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 파악 되었던 이성을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수정하고자 했다. 또한 이 낭만주의는 개성을 강조하고, 사회를 과거와 달리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탄생과 성장, 쇠퇴와 소멸을 겪는 것을 사회의 한 특징이라 보았고, 이것은 후에 《문명 형태학》(아놀드 토인비)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낭만주의의 직접적 배경을 보면, 주로 19세기 중엽을 시발점으로 하고 산업혁명에 의한 변화에 몰입하기 보다는 중세나 이국적인것에서 사상이나 예술, 문학의 근원을 찾으려고 하였다.
즉, 사회의 분열과 이기주의를 경계하고 중세에서 절대적인 힘을 갖고 있던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고 싶다는 소망의 발현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개인을 절대화하는 것에 의해 현실적으로는 니힐리즘으로 빠지기도 했다.
문학에서의 낭만주의를 살펴보면, 계몽주의 이성에 의한 정치체제의 변화를 기대했지만 혁명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부조리하고 나약함에 절망, 그간의 이성에 기대온 일체의 사상, 감성에 회의를 품게 된다. 이렇게 정신의 폐허 위에 자신의 심성(心性)에 맞는 문화를 이룩하려고 한 것이 낭만주의 정신의 본질이며, 그 결과 자아에 대한 확인과 그 내부에로의 침잠(沈潛)을 특징으로 한다.
영국에서의 낭만주의를 보면, 워즈워드와 콜리지를 대표작가로 볼수 있다. 워즈워드가 <서정민요집> 제 2판 (1800)에 붙인 서문이 영국 낭만주의의 시발점이 되는데, ‘시를 강렬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충일(the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로 정의한게 그것이다.
워즈워드와 콜리지 등은 프랑스 혁명 이후 보수화되었지만, 나폴레옹 전쟁 이후 바이런, 셸리, 키츠 등은 영국을 떠나 스위스, 이탈리아 등으로 이동하여 이상주의를 지켜나갔다. 이들은 산업 혁명과 중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산업 혁명의 침투와 때를 같이하여 활동을 펼쳤지만, 곧 산업 혁명의 실용적인 사상에 휩쓸리게 되어 바이런이 사망한 1820년 이후 영국의 낭만주의는 급속하게 쇠퇴하게 된다.
프랑스의 경우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정치적 격변기를 맞는데, 이시기 정치, 사회적 변화는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걸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나아가서 유럽의 새로운 정치적 판도와 사회 문화적 가치 체계의 변모를 가져왔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프랑스 7월혁명등이 그것이다. 문학으로는 디드로, 볼테르, 위고, 루소, 샤토브리앙 등이 이 시기에 활약했다.
샤토브리앙은 작가이자 정치가였고 무신론적인 성향이 강했으나 어머니와 누이가 옥중에서 죽고난 후 기독교에 복귀해 로마 가톨릭교회의 왕당적 전통주의자가 되었다. 화려하고 섬세한 정열을 가진 문체, 서정적인 분위기의작품으로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1817년 이후 《무덤 너머의 회상》을 30여 년에 걸쳐 집필했다.그는 1848년 80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루이 16세 치하,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 치하, 왕정복고 등의 극심한 정치적·사회적 변화 속에서 정치가로, 작가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그의 <무덤너머의 회상>은 자서전 형식이며 그가 살았던 프랑스 근대사의 격동기 동안에 일어났던 사회의 변천과 개인의 체험이 흥미롭게 기록돼있다.
프랑스와 르네 샤토브리앙(1768-1848)
독일의 경우,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낭만주의가 늦게 발아했다. 처음엔 프랑스 대혁명을 환영했지만 점차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해져 감에 따라서 시민사회를 부정하고, 자유주의나 합리주의에 반대해서 중세사회를 이상으로 하는 사조가 나타났다. 그 대표자로 헤겔을 들수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분열과 빈곤등 비참한 상태가 나타나 도덕적 파괴를 벗어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개인을 초월하는 따뜻한 인간감정에서 최고의 도덕과 정신적 자유를 찾아내려고 했다.슈타인도 헤겔의 영향을 받아서 시민사회를 경제를 주로 해서 비판했다. 이 생각은 독일 전통의 사상이 되어 20세기에까지 계승된다 이같이 딱히 자유는 아니더라도 따뜻한 인간감정에 연결된 중세에의 복귀를 이상으로 하는게 독일의 낭만주의라 할수 있다.
대표문학가로는 호프만, 노발리스등이 있다. 호프만은 작가이자 음악가였고 그의 소설은 공상적, 마법적, 그로테스크한 것이 많아서 포, 카프카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더 나아가 히치콕 같은 영화감독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대표작으로는 <모래사나이>를 들수 있다. 몽상적 분위기에 환상이 현실이 되는 삶을 추구했으며 낙관적이고 진취적 계몽주의라는 프리즘으로는 드러낼수 없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 쉽게 간과되는 심리를 예리하게 그려낸 단편이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환상사이에서 갈등하는 '예술가소설'로 분류되곤 한다.
노발리스는 시인이자 철학자였고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들을 썼다. 병악하고 사랑을 숭배하고 죽음을 찬양하는 섬세한 청년의 이미지를 창조해냈고 문학외 다양한 학문에 통달해서 학문과 문학의 융합을 시도한 선구적 인물로 평가받는다.대표작으로 <밤의 찬가>가 있는데 죽음에 대한 낭만주의적 해석인 동시에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정신의 역사를 다룬 역사철학적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깊고 암울한 환상, 신비한 죽음에의 동경이 잘 드러나 예술과 종교가 융합된 형태를 보여준다.
e.t.a.호프만 (1776-1822)
미국 낭만주의는 독립을 쟁취한 뒤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 미국민 특유의 개척정신, 미국의 자연과 과거, 복음주의 종교 등 주로 미국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사정에 영향을 받아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미국 낭만주의 시대는 주로 19세기 초에서 남북전쟁(1861-1865)이 끝날 무렵까지를 일컫는다. 그 중 어빙, 브라이언트, 쿠퍼, 그리고 포, 호손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미국 최초의 전문 직업작가로서 활동한 어빙은 주로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인 작품을 썼다. 뉴잉글랜드의 대표적 시인으로 유명했던 브라이언트는 초기에 로맨틱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시를 썼는데 이것은 유럽의 문학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애드가 알란 포가 있는데, 그는 《붉은 죽음의 가면》(The Masque of the Red Death), 《함정과 진자》(The Pit and the Pendulum), 《어셔가의 몰락》(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모르그 가의 살인 사건》(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등과 같은 작품으로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한다. 숨겨진 인간심리를 파헤치고 미스터리와 판타지 소설의 경계까지 진입한 앞서간 문학이었다. 그리고 호손은 1850년대 초에 주요 작품들을 발표했는데 인간 심연의 어두운 힘을 탐색하였고 다양한 심리적 죄의 양상과 갈등의 이면들을 그려냈다. 그의 대표작 《주홍글씨》(1850)는 미국의 역사적 무의식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으며 개개인들이 미국사회에서 겪는 도덕적, 정신적 갈등과 깊이를 심도있게 파헤쳤다.
에드가 알란 포(1809-1949)
끝으로 한국의 낭만주의는 1920년대초에 쓰여진 시에서부터 시작한다. 개인의 자유와 창조적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며 전통적 도덕과 인습에 거세게 반발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과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절망적 색채가 짙게 드러냈다. 이렇게 본다면 낭만주의가 페시미즘으로 연결된 가장 좋은 예는 바로 한국이라 할수 있고 그것은 물론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이 큰 몫을 했으리라 본다.그래서 1920년대 낭만주의를 병적·감상적 낭만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동인지 〈백조〉를 중심으로 나타났는데, 홍사용·박종화·나도향·이상화 등이 이에 속했다.
박영희의 〈환영(幻影)의 황금탑〉(백조, 1922.1)·〈월광(月光)으로 짠 병실〉(백조, 1923.9), 박종화의 〈사(死)의 예찬〉(백조, 1923.9),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백조, 1923.9) 등은 현실의 모든 번민과 집착의 저편에 서서 죽음에의 초대를 노래했다.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백조, 1923.9)에서는 세상을 공포와 비애만이 가득찬 곳으로 보기도 했다.
즉, 1920년대 한국의 낭만주의 문학은 낭만적 정열이 아닌 낭만적 허무로 귀결되며 그것은 감상에 탐닉한다는 점을 특징으로한다. 그렇게 해 1920년대 초기에 감상 및 퇴폐적 성격을 띠었던 한국낭만주의 문학은 사실주의 또는 프로 문학에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상화 (1901-1943)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중.
이상이 한국과 서구의 낭만주의 문학의 대략적인 개념이며 낭만주의 미술을 보면, 문학과 비슷하게 이성, 냉정함에서 벗어나 우아하고 로맨틱한 꿈을 캔버스에 담았다 할수 있다. 프뤼동, 들라크르와 등이 대표적 작가로, 후자에 의해 서구의 낭만주의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게 된다.그는 자유분방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붓놀림,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의 구사, 역동적인 구도, 북아프리카 아랍인의 생활에서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 이국적이고 대담한 주제를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외 영국의 터너, 컨스터블의 풍경화가 거론될수 있고 그들은 웅장하고 역동적인 자연을 묘사하기 위해 빛, 공기, 색채의 순간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낭만주의 음악은 베토벤, 슈베르트등을 들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