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예술론>

현대 예술의 발단을 니체로 보고 그 뒤를 이어 벤야민이 미디어시대를 예견

by 박순영



서양문명의 출발로 언급되는 고대철학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고대는 중세와는 달리 아직 '신'에 대한 개념이 강하지 않았으므로, 그들 나름의 자유로운 '인간중심'적 사고가 가능하였다. 플라톤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화려하게 만개한 그리스 철학이 서양철학 전반에 끼친 영향은 바로 감성과 이성의 길항작용에 관한 것이었다. 그후 중세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철학에서 칸트와 헤겔은 감각과 정신의 문제를 예술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니체에서 시작된 현대예술에선 벤야민과 하이데거는 아우라의 상실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보인다.


플라톤에게 있어 '예술'은 자연의 모방mimesis이었다. 하지만 플라톤은 눈을 현란케 하는 것이 이성을 흐리게 한다는 판단하에 예술에서 감성의 자제를 요했다. 그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바로 저 너머 어딘가의 이데아였던 것이다.

그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에 대해 보다 발전된 견해를 지녔고 그것이 굳이 플라톤이 말하는 선과 연결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미자체로 예술은 그 당위성을 얻는다고 했다. 그 역시 예술을 자연의 모방으로 보았지만 플라톤보다는 현세적 예술관을 견지했다. 그리고 역사가와 예술가의 차이점을 논하면서 후자에 비중을 두었다. 그리고 그의 '시학'에선 언급된 카타르시스 이론은 후세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세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신에게 인간이 억압된 시기였다. 인간의 존재는 부정되고 모든 선과 지고의 가치는 온통 신에게로 향했다. 그래서 미란 신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예술을 위해 상징과 알레고리가 고안되었고 또한 신의 화려함을 알리기 위해 보석가공이 발달했다. 또한 비잔틴 예술의 아이콘들이 생겨났고 인간은 언제나 도식적이고 기하학적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강도를 높여 아예 성당내부를 어둡게 하고 단지 한가닥 빛만을 흘려넣는 방식을 취한다. 그렇게 인간은 죄 속에서 살면서 늘 신의 구원을 청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리스 예술의 핵이었던 대칭 질서 균형이 재등장했다.


이렇듯 중세가 신 중심의 예술관을 펼쳤다면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발흥한 예술부터는 변화가 보인다. 인간의 자의식이 강조되는 인간주의 예술이 그것이다. 신을 통한 바라봄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보이는대로의 자연을 (대상을) 표현하는 예술이었고 대표적인 이가 바로 다빈치였다. 덧붙여 다빈치는 인간묘사에 있어 해부학까지 거론하여 예술을 응용학문으로까지 발전시켰다. 더불어 회화에선 원근법이 나타났고 이것은 중세미술과의 중요한 차이점인데 중세엔 크고작은 모든 것이 종교적, 형이상학적 가치관에 의해 표현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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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 따르면, 미를 정의한다는건 매우 곤란한것이고 이런 심미적 판단이 반드시 이상과 결부돼야 하는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을 '취미판단'이라 명명했고 이런 판단엔 보편성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미(아름다움)는 바로 인식들의 자유로운 놀이에서 비롯되는것이고, 상상력이 오성에서 벗어나 보편성을 충족시킨 다음 다시 오성에게 돌아오면서 태어나는것이라는 다소 난해한 예술관을 보였다. 심미적 이념에 관해서는 완전히 포착되지 않고 단지 부분적 묘사만 가능한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거기서 비로소 아름다움이 생겨난다고 했다.


칸트의 철학이 감각을 중시한 경향이 있다면 헤겔은 정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에게 세상은 곧 정신으로 이해되었고 그 정신은 정반합의 변증법으로 발전하면서 점점 자신에게로 귀환한다고 보았다. 이 지점에서 미학이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옮겨가게 된다. 가시적 외형의 세계는 그 안에 내포된 정신이 많을수록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해서 미의 출발을 정신에 두었다. 그래서 미를 '이념의 감각적 환영'이라 칭했고 그래서 곧잘 정신현상학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실제로 헤겔은 학문의 중요성을 자주 언급했다. 그리고 이런것들은 인간만이 할수 있다고 말해 인간중심적 철학관을 펼쳤다.

여기서 쇼펜하우어와 본질적 차이를 드러내는데, 헤겔은 예술이 삶보다 크고 정제된 것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모든 질곡이 다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묘사해 보다 현대적 예술관을 보여준다. 헤겔이 다소 완고하게 들리긴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미 예술이 감각만으로 묘사되기엔 너무 혼탁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괴감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철학의 순수하고 체계적 사유를 지향한 것으로 볼수도 있다.



시기적으로도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1900년에 죽은 니체만큼 기존의 서양철학을 부정하고 다가올 혼돈의 시대를 적절하게 예언한 철학자도 없다. 혼돈이 깊을수록 영원히 생성변모하는 초월의 세계와 초인을 향한 기대를 가져야 한다는 그의 자기파괴적 예술관은 지금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예술에 매혹됐고 지성과 감성이 공존했던 그 시기를 그리워했다. 그것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로 표현된다.

니체는 3000년의 서구형이상학과 기독교를 부인하면서 신은 죽었다고 말했다. 그 대안으로 생성과 극복의 축제를 들었고, 예술과 삶이 놀이처럼 전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사상은 다분히 디오니소스적이다. 환언하면 탈형이상학의 시대를 예견한 것이다.

그의 철학은 , 허무주의,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초인으로 요약되고 여기서 그가 말하는 허무주의는 다소 복잡한데 존재와 존재자가 마치 진리 그 자체인 것처럼 이해되는 은폐성과 가치부재를 말한다. 그리고 '힘'은 계속 움직이면서 차이를 생성해내는 존재로 보았고 '초인'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예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힘을 의지로 하는 인간을 말한다. 여기서, 근대인간적 전형이 허물어지게 된다.


니체에게 예술이란 바로 세계 자체였다. 헤겔처럼 정신으로 응집된 그런 형이상학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래서 세계를 예술가 없는 예술작품이라 칭했고, 그것은 자기창조적 성격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간에게 '생명의 의지'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다시말해 삶이란 무의 세계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그 형상을 이루어가는 재현이라 보았고 그래서 그런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삶을 예술처럼, 그리고 그 예술은 놀이처럼 즐겁게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또한 예술은 도덕을 초월하는 존재로 음악, 비극을 태어나게 하는 모체로 보았다. 여기서 그의 처녀작인 '비극의 탄생'이 나온다 .

디오니소스적 감성속에서 인간사이의 유대는 회복되고 인간에게서 소외됐던 자연도 다시 인간과 화해하게 될것이라 내다보았다. 그러면서 자아해탈과 상징의 중요성, 그리고 아폴론적인 것에 대해 재해석을 내렸는데 특히 아폴론적인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은폐에 다름 아니라고 갈파했다. 그리고 도취를 미의 근본이라 보았고 그것은 생물학적 기쁨으로 연결되면서 예술의 '몸학'을 주창하게 된다. 여기서의 몸이란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에서 파생된 것이 아닌 그것을 극복하고 통합한 존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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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인간의 생리적 현상에서부터 문화 역사에 이르는 모든 개념으로 보고 그래서 초인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상을 말한 그는 초월의 세계가 꼭 실재할 필요는 없고 오히려 그것은 무자체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런 무의 세계에서 생명은 존재상실감을 경험함으로서 오히려 긍정적 허무주의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것은, 사라지는것과 소멸하는 것을 긍정하는 자세이며 서구철학에 결여된 부분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것들의 전제가 폭력이어선 안된다고 했고, 자기파괴와 무를 향한 계속되는 생성이란 다름아닌 삶의 다원성을 말하는것이고, 여기서 비로소 현대예술과 가치관은 발아한 것으로 이해된다.



니체에 의해 현대예술의 판이 깔리면서 벤야민은 아우라의 상실에 대해, 하이데거는 예술의 본질은 존재라는 상반되는 예술론을 피력하게 된다.

1837년 사진의 발명과 함께 그동안 고고하고 저 먼곳의 존재로 인식돼온 예술관에도 일대 혁신이 일었다. 이런 현상을 벤야민은 아우라 aura의 상실이라 표현했고 그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이제 비로소 인간이 예술로부터 자유로워짐을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아우라가 통치자들에 의해서 이데올로기로서 얼마나 끈질기게 이용돼왔는지를 말했다. 이제 예술은 복제의 시대로 접어들어 원하는 이면 누구든 소장할수 있게 되면서 대중적이며 전시가치를 갖는 존재로 변화한 것을 다행으로 여겼고 예전 예술의 본질이었던 제의적 성격이 사라지면서 감상자에게 비판과 향수를 동시에 가능케하는 존재로 변했음을 간파했다. 그런 맥락에서 카메라의 세심한 필터에 매력되었고 그것이 영화로 발전되자 이제 예술은 완전히 새옷을 입은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비슷한 생각은 다다이스트들도 가졌지만 그들의 지나친 예술지상주의는 결국 전쟁미학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연출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상기한것처럼 벤야민은 분위기aura의 파괴가 현대예술의 특징이며 아트제가 찍은 1900년경 사람없는 파리의 사진에서 그것을 확인하면서 비로소 사진의 정치학을 터득하게 된다. 그밖에도 벤야민은 언어와 비극관에서 탁견을 발휘했고 파사주 이론을 개진했다.

파사주이론이란 거리를 배회하는 이들 자체가 전시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시말해 자신들의 노동력을 전시하고 다닌다고 본 것이다. 인간의 물화物化를 지적한 것이고 이런 벤야민의 감각적 혜안은 TV와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에 단초를 제공했고 앞으로의 시대는 더 이상 상징의 예술이 아닌 알레고리의 기술이 지배할것이라 예견했다.


그리고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란 논문에서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보여주기도 했다. 현대의 예술복제는 인간으로 하여금 원전과 복사본의 차이를 느끼게 해 복제품에 존재하는 보편의 가치를 인정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벤야민은 리오타르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이런 벤야민과는 달리 하이데거는 매우 보수적인 예술관을 견지했다. 예술작품 고유의 존재방식에 대해 몰두했고 사물의 사물성은 자생적이고 내재적인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사물성을 제대로 보기 이해선 사물을 도구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실례로 하이데거는 반고흐의 그림 "구도"(1886)를 들었고 구두는 농부의 근면하면서도 고단한 삶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렇듯 예술작품 자체에 이미 도구와 사물이 공존한다고 말했다. 이것을 그 나름의 '은폐성'이란 말로 표현했고 환언하면 신전이나 신상 바로 그 안에 신 자신이 있다는 얘기와 같다고 했다. 결국 세계의 드러남과 대지의 은닉성이 갈등하는 장소를 예술작품이라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늘 친숙하게 여겨지던 것이 낯설게 다가오는 전복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벤야민과는 달리 아우라를 상실한 예술은 더 이상 예술품이 아니라고 비판하면서 아우라상실을 세계의 붕괴라고까지 명명했다. 그 이유는 존재자의 진리가 그 안에 더 이상 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게 그는 아우라의 개념에서 벤야민과 상반되는 견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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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예술관에선 감성과 이성의 문제가 중요시되었고,플라톤이 선과 이데아에 집착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현대적인 의미의 감성의 개화와 인간주의 예술관을 피력했다.

이어 중세로 넘어오면서 인간은 신에게 종속되고 성당은 어둡게 건축돼 창을 통해 들어오는 한줄기 빛 (신의 그림자)에 의해서만 살아지게 하였다.

그러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르네상스부터는 인간이 자의식이라는 개념에 눈떠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기에 이르고 다빈치는 해부학까지 동원된 인체묘사를 주장했으며, 회화엔 원근법이 도입됐다. 중세의 원근의 의미는 오로지 종교적 의미를 기반으로 했지만 르네상스에선 인간의 시야와 육안에 잡히는 그대로의 대상을 표현한다는 다분히 인간중심적 예술관이 퍼지게 된다.

그 뒤 칸트와 헤겔에 이르러 근대철학이 개진되는데 칸트는 예술에 있어 감각의 중요성을, 헤겔은 정신을 강조해 상반되는 입장을 보였고 그러다 1900년에 죽은 니체에 의해 근대는 전복되고 마침내 현대의 장이 열리게 된다. 더 이상 낡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말을 세상에 던짐으로써 파괴의 자기축제적 삶을 강조했고 그것이 곧 허무한 세상을 이겨내는 방법이라고 니체는 보았다.

이런 니체에 의해 열린 현대예술은 아우라를 언급한 벤야민에 의해서 매우 예민하고 지적인 방법으로 개진되고, 벤야민은 아우라의 상실이 예술의 고전성은 상실했지만 대중성과 비판의 기능을 불러와 오히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고 보았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여전히 사물의 사물성 자체를 중시하는 예술관을 보였고 아우라상실을 통탄했다.


비록 난삽할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하게 뒤얽힌 서구예술사지만, 요약하면 현대 예술의 발단을 니체로 보고 그 뒤를 이어 벤야민이 미디어시대를 예견한 것으로,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 이른다고 보면 적절할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시대건, 예술이 이성과 감성의 공집합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고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생명성을 기반으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것이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예술이란 무엇인가? /마키엘 하우스켈러, 철학과 현실사, 2004/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 민음사 2003/ 현대사회와 예술/발터 벤야민 1998/ 진중권의 현대미학강의/진중권, 아트북스 2003/ 시학/아리스토텔레스, 문예출판사 2002/ 비극의 탄생/니체, 범우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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