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축제>

축제는 민중들의 한풀이면서위정자들의 통치수단이기도하다.

by 박순영


포스트모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상과 축제의 구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모든 일상이 축제의 성격을 띄며 그것은 또한 놀이와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이것은 곧 형식과 권위에 대항하는 현대인의 저항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히 본다면 축제와 일상은 분명 구별되는 면이 있다. 인간은 나날의 지루함과 불안감을 난장과 놀이의 장인 축제를 통해 발산하고자 한다. 그렇듯 축제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반영된 도피적 개념이자 생산적인 일상을 연출해내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축제에 대한 개념과 정의는 실로 다양하며, 점점 이벤트화돼가면서 상업성에 물들어가는 오늘날의 축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도 적지 않다. 그러나 축제를 포함한 모든 문화는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것이다. 상업화되면서 다듬어지는 면이 있고 정체성과 세계화의 흐름속에서 조화를 이루고자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축제의 개념을 보면,

인류학에서 정의되는 축제는 흔히 종교현상의 하나로서 또는 상징적 행위로 정의돼왔다. 축제는 인간의 기본적 속성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을 파괴하는것에서 출발하는데, 기득권과 불평등, 억압과 갈등, 어두움과 모호함을 걷어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축제속에서 인간은 끝없이 파괴를 되풀이하며 그러면서 세속적 허울과 위선에 맞선다. 이런세속적 현상을 감출 수단으로 가면이나 변장을 한다.

축제의 한자어 祝祭가 보여주듯, 이것은 성스러운 종교적 제의에서 출발했다. 한국의 고대축제인 제천의례, 마야인의 신년의례, 페루의 태양제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런 면은 축제로 하여금 사회통합력을 갖게 하기도 한다.

축제festival가 성일 聖日을 뜻하는 festivali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됐음도 이와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 homo ludens』에서 인간의 유희적 본성이 문화적으로 표현된것을 축제라 정의했다. 놀이는 비일상적, 비생산적인 것이지만 일상과 생산을 위해 필요한것이라 보았다. 이 견해를 발전시켜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바보들의 축제』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이면서 ‘놀이하는 인간, 축제하는 인간, 환상적인 인간’이라 정의하면서 축제의 환타지성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축제는 ‘억압되고 간과되었던 감정표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기회’ 이거나 또는 ‘인간은 일상의 이성적 사고와 축제의 감성적 욕망 사이를 넘나들면서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확대할수 있고 또 그를 통해서 문화의 발달을 가져오는것’이라 보았다.



역사학에서 보는 축제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뒤르켐적 모델과 프로이드적 모델이 그것이다. 뒤르켐은 종교를 개인적이고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사실’로 보면서 축제를 ‘사회적 통합을 위해 기능하는 일종의 종교적 형태’로 규정한다. 그에게 축제란 제의rite라고 할수 있다. 그에 반해 프로이드는 축제를 공정성과 즉흥성, 디오니소스적 부정과 인간 본능을 억압하는 것의 폐기, 해방을 향한 문화로 보았다. 그에게 축제는 통합과 질서의 유지라는 뒤르켐의 견해와 반대되는 ‘금기의 위반, 과도함과 난장’인 것이다. 즉, 축제는 격식을 갖춘 금기의 파괴이며, 난장은 그 본질이라고 보았다. 이런 견해는 축제의 전도적 성격과 관계있는데, 바흐친이 그 적절한 예라 할 수 있다.

바흐친은 프로이드의 이론을 계승하여 축제와 민중문화의 연관성을 밝혔다. 그는 카니발에서 보이는 전도적, 비일상적 성격을 축제의 가장 기본적 성격으로 지적한다. 축제는 일상생활의 ‘단절’, 즉 하나의 의례적 상황이며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의식이 치러지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과 장소가 된다.


현재 세계 축제의 흐름은 국가적 단위에서 소지역적으로 축소돼가는 경향을 보인다. 축제를 주최하는 집단들이 소규모로 나누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기이거나, 아님 반대로 지극히 불안할 때 축제를 내세우곤 한다. 물론 이것은 한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공동구성원을 결집시키는 가장 효율적 기제로서의 축제의 측면을 이용한다.

PC와 인터넷, 가상현실의 현대에서 , 공동의 구성력을 의미하는 축제는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오늘날의 현상은 오히려 이 반대적 상황을 보여준다. 개인적 생활의 비중이 커지면서 타자의 삶에 대한 관심 역시 증폭된 것이다. 이런 욕구는 새로운 볼거리를 추구하는 행위로 나타나고 그것이 바로 현재의 ‘볼거리로서의 축제’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축제적 연희자와 관람자( 관객) 이 분리되는데 여기서 연희자는 연기자가 되기도 한다. 그 예로 강릉 단오제가 있다.



강릉 단오제는 지역적 기반에서 이루어지지만 본래의 난장적 축제의 성격은 약화되고 상업적 성격이 부각되고 있다. 민속적 축제가 그 본래의 성격을 순수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에 의해 직접 조직, 준비돼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의미의 순수한 축제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전통적인 문화적 요소가 지역민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럽사회에서는 비교적 과거의 순수한 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서 매년 성대하게 연희되고 있다.

지방분권적 체제의 독일에서는 물론이고 전형적인 중앙집권적인 프랑스에서조차 각 지방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적 특색을 강조한 축제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참고로 미개인들의 적에 대한 터부를 살펴보면 축제의 숨겨진 의미를 더 잘 이해할수 있다. 그것은, 참살당한 적에 대한 진혼, 참살자에 대한 구속적 제한, 자발적인 속죄와 재계, 몇가지 의식의 집행 등으로 이루어진다. 티모르 섬 사람들은 '진혼제‘를 지낸다. 원정에서 패배한 적의 머리를 들고 개선할 때 원정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원정 지휘자는 특히 엄격한 구속적 제한을 받는다.

원정대는 개선하는 즉시 제물을 차려놓고 목을 잃은 적들의 영혼을 위로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승자들에게 재앙이 온다고 믿는다. 춤과 노래로 이루어지는 진혼제에서 사람들은 참살당한 적의 죽음을 애통해하면서 용서를 빈다.

그런가하면 자기네 손에 죽음을 당한 적을 수호자, 친구, 후원자로 탈바꿈시키는 종족도 있다. 즉, 잘린 적의 머리를 정중하게 모시는 것이다. 외부에서는 이런것들이 축제로 보여지는 것이다.


<카니발>

전통적 의미의 카니발은 기존의 기독교적 권위에 저항할수 있는 의례적 통로역할과 함께 당시의 절대적인 기독교 권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도구이기도 하였다. 민중들은 카니발을 통해 억압된 욕구를 발산하고 나서 다시 규범적인 엄격한 사회속으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야 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알려진 카니발로는 리오 카니발이 있다. 계절적으로 여름에 열리고 그만큼 축제의 난장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그 유래는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이교도들의 의식에서 시작되었고 브라질에는 19세기에 도입되었다. 모든 기독교적 억압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움의 추구가 지나쳐 광란에 가까운 춤판, 퍼레이드, 과감한 신체노출, 음주, 폭력, 때로는 살인까지 벌어지는 이 카니발은 무엇보다도 삼바춤 퍼레이드로 유명하다. 그것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굳어진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개인의 자유로운 기쁨의 발산으로서의 춤이 집단으로 결합되어 통일성과 규칙성이 축제에 부가된 것이다.


베니스카니발


또다른 유명한 카니발로 베니스 카니발이 있다. 현재는 종교적 의미를 거의 상실한 채 일종의 문화관광 축제로 존재하지만, 축제가 벌어지는 시기만은 사육제 시기로 고정돼있다. 베니스 카니발은 종교성 보다는 베니스 시의 경제적 발전 상황과 더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12-3세기 베니스는 매우 융성했고 이런 상황은 특히 16세기 터키와의 전쟁에서 이긴 다음 절정에 달한다.

그때부터 베니스는 ‘카니발의 도시’로 불리면서 매년 카니발이 열렸다. 그와 함께 수많은 연극도 행해졌다. 가면축제의 기원은, 17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성들이 연극을 보러 갈 때는 반드시 가면을 쓰고 망토를 입어야 한다는 법령이 정해진 것이 그것이다.



<지역공동체 단위의 축제>

대표적인 것으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역의 ‘성인 엘로아 축제’와 ‘마들렌느 축제’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수레축제’가 그것이다. 15세기부터 연희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성인 엘로아 축제’는 말과 귀금속 직능인들의 수호성인이었던 엘로아 성인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카톨릭과 거대 밀경작 지주들, 정치적 우파 경향의 사람들, 보수주의자들을 결집시키고 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축제로 전해 내려왔으며, 최근에는 프로방스 지역의 전통, 민속, 역사 등의 요소를 포함되었다.


마들렌축제

현재도 카톨릭이라는 종교가 강조되고 축제가 시작되기 전의 종교적 미사를 지역방언으로 올리고 50여마리의 말이 연결된 수레가 행렬하는 축제 연희 중간에 성당의 사제로부터 축성을 받는 등 종교성을 비교적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마들렌느 축제’는 19세기 말엽부터 프랑스 공화정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정치적 좌파를 상징하며, 야채 과일 소작농들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6월말에서 9월초까지 전 지대 프로방스의 여러 마을에서 ‘수레축제’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축제들에서는 과거의 카톨릭적 종교전통과 농경생활, 말과 황소와 인간의 관계, 왕의 권위와 프랑스혁명, 좌파와 우파의 정치적 분쟁, 밀중심의 건조작물 재배에서 야채 과일의 경작 체계로 바뀐 경제체계의 변화 등이 함축되어 표현되고 있다.

독일 뮌헨의 ‘맥주축제’는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면서도 관광효과 또한 뛰어난 축제로 평가받는다. 1810년 바이에른 왕국에서 거행되었던 루트비히 황태자와 테레제 공주의 성대한 결혼식을 축하하는 경마대회로부터 유래되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시 중앙에는 만명도 충분히 들어가는 텐트가 쳐지고, 시 인구의 5배가 넘는 사람들로 북적된다.



<스펙터클>

관광과 여가 향유가 주목적인 축제들이 있다. 우선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축제를 들수 있다. 흔히 ‘유럽의 꽃’이라 불리는 축제로, 에딘버러 시는 일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으며 특히 8월에 절정에 이른다. 이때가 에딘버러 페스티발이라고 불리는 시기면서 에딘버러 시 전역에 걸쳐 연극, 무용, 오페라, 전시회, 오케스트라, 퍼포먼스, 거리 공연등의 다양한 장르의 공연과 전시가 펼쳐진다.


에딘버러축제




이 축제는 1947년에 시작됐다. 이 축제가 널리 알려진 것은 사이드 공연이었던 Fringe공연 덕분이었다. 이것은 자발적인 소규모 단체들의 공연에서 시작됐는데 공연에 대해서 어떤 예술적 심사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밴드의 공연, 코미디, 바디 페인팅같은 길거리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시 여기저기서 자유롭게 펼쳐친다.

어떠한 제한도 없으므로, 신선하고 훌륭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의도적으로 창출됐던 축제가 (본래 이 축제는 축제를 통한 지역개발이 직접적 동기) 어떻게 그 지역의 고유한 것으로 인식되는가 하는 사례를 잘 보여준다.

이와 유사한 예로 프랑스 아비뇽 축제가 있다. 아비뇽 연극제는 2차대전 직후 (1947) 수도인 파리에 집중된 예술과 문화를 지방으로 분산함으로써 보다 많은 대중들이 수준높은 문화를 생활 속에서 향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대전후의 무력감과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한것이었다. 현재 아비뇽 축제는 두가지로 대별되는데 하나는 공식적으로 초창한 극단들의 공연 festival in과 개별집단들의 자유로운 참여로 기발한 창의성이 강도되는 공연 festival off 이 그것이다.

전자는 프랑스 정부와 여러 문화단체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된 것이거나, 주최측의 심사결과 선정되어 초청된 작품을 교황청 안뜰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예술성과 작품성을 공히 인정받은 작품들이다. 후자는 보통 500여개의 공연단이 장소와 시간을 아비뇽시에 미리 예약만 하면 공연이 가능한데 주로 교황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공연된다.

아비뇽 축제의 축제적 의미는 바로 이 festival off에 의해 구축된다. 이 off공연은 60년대 말엽부터 본격화되었는데 당시의 시대 상황이 기반이 되었다.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드골 정부가 사회개혁에 소홀한것에 불만을 갖고 1968년 학생운동과 노동자 총파업 투쟁으로 그것을 표현했다. 이로 인해 아비뇽 연극축제의 총책임자인 빌라르가 연극의 문화적 역할과 사회적 역할이라는 이중의 역할을 조화롭게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비난받았다.

이에 자극을 받아 모든 극단에게 문화를 개방한 off공연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대신 off공연은 주최측으로부터 어떤 경비도 지원받지 않는다. off 공연 장르는 실로 다양해서 일인극이나 대형공연, 마임, 춤, 인형극, 서커스 등 무대 예술과 관계된 것이면 어떤 것이나 가능하다.

이런 아비뇽 축제같은 사례들은 과거의 전통적, 역사적 사실과 민속적 요소들이 적절히 가미되어 관람을 위한 일종의 ‘스펙터클적’축제가 된 것이다 참여보다는 관람을 주목적으로 하는 축제라는 뜻이다.


<패러디>

‘초록의 섬’으로 불리우는 아일랜드에는 ‘성 패트릭의 날 St. Patrick's Day' 이 있다. 아일랜드는 카톨릭 국가답게 수많은 성인들의 축일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 퍼레이드 형식으로 펼쳐진다. 아일랜드인들은 자신들의 성인을 경배하기 위해 맨발에 중세적 행렬을 기꺼이 행한다. 그리고 이런 축제일들은 공식적 휴일보다 훨씬 소중하게 여겨진다.

성패트릭축제


성 패트릭의 날이 휴무일에 포함되고 국경일의 위치로 승격된 것은 1903년이었다. 물론 교회에서는, 433년 이 섬나라 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는 전설의 ’아일랜드인들의 사도‘ 성 패트릭을 일찍부터 추앙해왔다. 그러다 12세기에 성 패트릭 축제는 사흘에 걸쳐 연희되어서 다른 어떤 성인 축일보다 화려해진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종교적 측면보다는 세속적 면이 부각되고 있다.

이날은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녹색띠와 천으로 치장하고 술을 마신다. 이날 취주악단의 행렬 처음 시작된 것은 18-9세기 아일랜드 여러 도시들에서였다. 또한 이날의 행렬은 아일랜드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 캐나다, 호주, 카리브해 몬트세라트 등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정착한 곳이면 어디서나 펼쳐진다.

특히 몬트세라트의 성 패트릭의날 축제는 아일랜드에서 추방당한 사람들과 흑인 노예의 후손인 ’검은 아일랜드인들‘이 영국계 아일랜드인 지주들에 항거한 1768년 3월 17일 (노예들의)봉기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특히 뉴욕과 보스턴, 필라델피아에서의 호화로운 행렬은 21세기에 들어 역으로 본토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인파가 찾는 아일랜드 최대의 더블린 성 패트릭의 날 행렬은 바로 70년대 초 아일랜드의 해외 교류처가 미국의 퍼레이드를 본떠서 만든 것이다. 최근 들어 이 퍼레이드에서, 아일랜드 최초의 정식 주교가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듯 성 패트릭의 날은 반은 카니발이고 반은 서커스처럼 보인다. 이날은 더블린 시내가 온통 초록 물결을 이루고 심지어 관람객들의 머리색까지 초록으로 물든다. 너나없이 ’토끼풀‘을 들고 다니고, 몇군데 분수에서는 초록색 물이 나온다. 심지어 초록색 맥주를 파는 술집들도 있다.


<신화>

아시아의 몽골 축제를 보면, 보통 신화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화는 물론 한 민족의 정신적 소산물이다. 또한 군집사상의 응결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인접 신화와 대비되기도 한다. 그리고 축제는 신화를 동반할 때 더욱 흥이 난다.

신화가 부재한 축제는 원형축제 proto-festival가 아닌 모조축제 fake-festival에 불과하다 몽골축제 가운데 나담 축제는 원형축제의 대표적 예이다. 사집 史集에 의하면 징기스칸이 출생하기 훨씬 전, 북방에는 몽골부락과 돌궐부락이 있었다. 두 부족의 싸움 끝에 몽골족은 남자 두 사람과 여자 두사람만 남고 모두 죽었다. 그들은 깊은 ‘얼구네쿤 산’에 들어갔다. 이 산은 모두 절벽이고 나무도 많고 작은 오솔길 하나만 있는 지형이었다. 남녀 네 사람은 서로 혼례를 하여 부부지간이 되었으며 몽골의 후손들은 이 네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나담축제


예로부터 몽골인들은 씨름, 말타기, 활쏘기, 칼쏘기에 능했다. 그들은 이렇게 무武를 숭상하는 민족이다. 몽골 씨름은 경기장이 따로 없다. 맨땅도 좋고 초원이어도 좋다. 씨름선수를 파역심이라 부르는데 건강하고 체격이 우람한 용사라는 뜻이다. 예전엔 자기가 만든 씨름복을 입었지만 요즘은 공용 씨름복이 나왔다.

두 팔만을 덮은 상의를 ‘쪼덕’이라 부르는데 가죽으로 만들었고 꽃무늬로 수놓았고 어깨가 두툼하다. 등 부분은 무늬가 많고 입으면 갑옷을 입은 것처럼 당당해 보인다. 하의는 ‘쇼닥’이라는 펑퍼짐한 것으로 바깥에는 꽃이나 구름 무늬의 길상 무늬를 수놓아 화려하고 현란하다. 그 밖에도 씨름선수들은 다양한 치장을 한다.

몽골족의 씨름은 등급을 가리지 않고 최후의 우승, 준우승까지 가려낸다. 나담 축제에는 매년 512명의 씨름선수가 참가해 경기를 벌이는데 토너먼트 형식으로 경기를 진행한다. 모두 9회전을 거친 뒤에 우승자가 가려진다. 나담축제중 씨름대회 입상자에게는 명예로운 칭호가 주어지는데, 우승자는 ‘아루스탄 (사자)’, 준 우승자는 ‘잔 (코끼리)’, 3위는 ‘나친 (매)’라 부른다. 또한 두 번 이상 우승하면 ‘거인’ 세 번 이상 우승하면 ‘대거인’ 네 번 이상 우승하면 ‘무적 대거인’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몽골 씨름에서 흥미로운 점은 승부가 결정날 때이다. 승부가 결정되면 승자는 후견인으로부터 모자를 받아 쓰고 패자는 조끼끈을 풀어 승자가 벌리고 있는 팔 밑으로 한바퀴 돌아 동물처럼 복종의 표시를 한다.

이처럼 몽골 씨름은 예의를 지키고 음악과 무용이 곁들인 예술적 국기라는 점에서 우리의 씨름과 다르다. 몽골 씨름은 원시적인 인상이 짙은 신화적 민속놀이라 할수 있다.

그밖에 몽골축제에선 말달리기도 중요한데 그 기원은 3000년이나 된다. 흉노족이 초원을 찾았을때부터라고 한다. 몽골족의 경마에는 달리기 시합인 주마(走馬 :말 위에 앉지않고 서서 달리기)라는 말 다루기 기예 겨룸이 있다. 그밖에, 칼 던지기, 활쏘기, 바둑도 흥미로운 몽골의 민속놀이이며 모두 전쟁과 관련있다

. 이상 살펴본것처럼 지하치신은 말달리기에, 징기스칸 신화는 씨름경기에, 야철요산 신화는 칼 던지기나 활쏘기 경기에 잘 용해돼있다.


<희생제의>

일본 아이누족의 축제가 대표적인데 아이누족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의 축제 중 곰축제는 매우 유명하다. 그런데 이런 곰 제의는 지구 전 북반구에 걸쳐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형식과 내용은 물론 다르다. 곰제의를 거론할 때 주의할것은, 이들의 영혼관과 조상숭배가 밀접하게 연관돼있는 종교적 측면이다. 이것은 종교적 제의 형태와 내용이 다른 그 어떤 동물보다 곰신화와 곰설화에 잘 나타나기있게 때문이다.


아이누 곰제의

곰축제는 bear ceremony로 불리운다. 이 ceremony라는 말은 fest라는 말과는 구별된다. ceremony라는 말은 ‘제의’의 성격을 갖는다. 축제의 본래적 성격인 종교적 의미가 아직도 남아있는 경우 보통 이 ceremony 혹은 rite, ritual 의 표현을 사용한다.


아이누족의 곰제의 관련신화는 그 신화 속에 지하여행 모티브를 갖는다. 이 모티브는 시베리아 샤머니즘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여기서의 지하여행은 샤먼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일종의 제의이자 무병의 과정이 아니다. 이것은 아이누인들이 민간신양의 형태로 갖고 있는 곰 숭배사상과 연결시켜야 한다

요약하면, 곰을 잡으러 곰을 따라 지하세계로 들어가 결국에는 그곳의 지하세계 여인과 결혼하게 된다는 내용인데 이는 주인공이 곰 사냥을 하다가 죽게 되고 다시 곰의 세계로 들어감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결혼은 죽음을 의미한다. 이 신화에서 곰과 인간의 애정 관계는 매우 중요한데, 이런 애정론은 북반구 지역에 아주 넓게 펴진 모티브이다.

곰제의는 두가지 형태로 나누어지는데 사냥곰을 가지고 하는 사냥곰 제의와, 집에서 기른 곰을 갖고 하는 집 곰 제의가 그것이다. 이를 각각 북방-퉁구스형 곰 제의, 남방-퉁그형 곰제의라 부른다. 대체로 북방형에 비해 남방형이 그 제의의 규모나 축제적 성격에 있어 풍성하다. 아이누족의 곰제의는 전형적인 남방형이다. 보통 어린곰은 2월쯤 태어난다. 3월경에 마을 사냥꾼들이 이 어린곰을 포획하러온다. 마을에 데리고 온 어린곰은 아이를 가지고 젖이 잘 나오는 여성 (곰어미)의 집에서 길러진다. 이런식으로 부족별로 여러 집에서 곰이 길러진다.

곰제의를 치루려면 누구든 어린곰을 집에서 길러야 한다. 어린곰이 성장을 하여 젖만으로 식량이 안될때는 음식을 입으로 잘게 씹어 준다. 그 후엔 곡식과 연한 잡풀을 섞어준다. 곰이 각 가정에서 하나의 친척으로 인정되기는 하지만 보통 기둥에 묶여있다. 외출할 때도 곰은 줄에 매어진다.

그러다 곰이 충분치 커지면, 우리 안에 가두어진다. 어린 곰은 약 3-4년동안 길러진다. 곰을 키우는것은 이들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며 액운과 질병을 막아주며 마을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곰이 적당히 성장하면 제의를 치룰 적절한 날짜를 받는다.

날짜는 주로 겨울, 즉 1월에 잡는데 가끔 3,4월에도 행사를 치룬다. 이 축제기간은 보통 1,2주일 동안 연희되고 여러집이 연쇄적으로 축제를 벌인다. 축제가 벌어지는 순서는 대개 각 부족의 장의 곰을 희생시키면서 시작되는데, 그 다음은 부족내 연장자 순으로 진행된다.

곰을 잡는 집은 사전에 여러 가지 장식으로 잘 꾸며진다. 제의용 창고에서 제의에 필요한 여러 도구를 가져온다.

그밖에, 곰이 다시 환생하길 기원하는 대나무 잎으로 된 장식을 집안 성역에 장식한다. 그리고 활과 화살, 화살통, 칼도 준비되는데 만약 곰이 암컷이면 반지와 끈을 따로 준비한다.

곰제의 첫날, 한 남자가 곰 우리의 위로 올라간다. 곰을 묶기 시작하고, 곰이 끌려나오면 손님 중 용감한 이가 나와서 곰을 더 단단히 묶는다.

여기서, 이웃 길리약족은 더 재밌는 과정을 거치는데 묶인 곰을 데리고 집집을 방문한다. 사람들은 곰과 온갖 장난을 한다. 그러면서 마을은 축제 분위기가 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곰에게 축제의 모든 것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곰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룰것 (죽일것을)을 약속한다.

곰은 드디어 살해장으로 인도된다. 두 기둥 사이에 묶이고 곰축제의 제장이 등장해서 활을 쏜다. 한번에 이 곰을 죽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쏜 활에 곰이 죽어도, 이 제장이 죽인 것으로 간주된다. 죽은 곰은 두 개의 나무 받침대가 있는 곳으로 옮겨진다. 여성들은 통곡한다. 남자들을 때리고 소리 내며 운다. 그러면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둘째날, 곰은 다시 살해장이자 제의장인 그 전날의 장소로 옮겨진다. 죽은 곰에게 한잔의 술이 권해진다. 사람들은 엄숙해지고 이어서 곰은 해체된다. 곰의 영혼을 위한 주문같은 노래가 불려진다. 살해된 곰 영혼에게 부탁하기를, 곰 세계로 가서 잠시 쉬다가 다시 인간 세계로 내려와 만나자는 내용이다. 이는 곰의 영혼을 달래는 의미도 있지만, 다시 곰을 잡게 해서 곰제의를 치를수 있게 해달라는 순조로운 삶의 순환에 대한 기원이 담겨있다.

곰의 배를 갈라 몸체를 들어내고 머리는 남겨둔채 몸통만을 들어낸다. 머리의 뒤를 구멍을 내고 골은 빼낸다. 이 골은 다시금 술에 섞어 한바퀴 돌리면서 나눠마신다. 이로써 곰은 완전히 해체되고 일부는 다음날을 위해 남겨둔다. 곰 쓸개는 약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잘 보관한다.

셋째날이 절정인데 , 곰고기 먹기 (음복)과 곰머리 제의가 행해진다. 곰고기를 먹을때도 이들은 계속해서 곰영혼을 혼란스럽게 하는 속임수를 쓰는데, 까마귀 흉내를 내기 위해 ‘쿡쿡’ 소리를 내며 고기를 먹는 것이다. 특별히 제작된 곰제의용 특별집기도구가 사용된다. 그것들은 각 부족의 곰 신화가 가지고 있는 내용을 말해준다.

음식을 다 먹은 뒤 사람들은 여러 놀이를 하게 된다. 죽은 곰은 집안의 성역에 안치되고 온갖 치장을 하게 된다. 죽은 곰이 암컷이면 반지와 끈으로 머리를 특별한 모양으로 장식해주고 수컷이면 칼을 선물한다. 곰의 앞에는 음식으로 가득찬 그릇들이 놓여지고 온갖 위로의 말이 늘어진다. 그들은 이 말을 산신인 곰이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누족 곰축제는 살해장과 제의장을 다양하게 장식한다는 자체가 공간의 초월성을 말해준다. 그리고 곰제의는 제의 기간 내내 곰 신과 동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곰신이 인간과 같이 한다는것은 이 현실에 곰의 세계를 잠시 건설하고 그 안에서 인간들이 신계의 생활을 영위함을 말한다.

그런식으로 트랜스의 경지에 빠져보는 것이다. 즉 곰제의는 황홀경 외에 일상의 활기를 위해서도 행해진다. 소비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생산적이고 반복적인 것을 위함이다. 이처럼 아이누족의 곰축제가 갖는 원시성은 완벽한 신인합일의 희구와 일상의 재생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곰제의는 축제의 원형과 제의의 시원을 함께 드러내는 사례라 하겠다. 그래서 제의이자 축제라 불리는 것이고 곰은 인간과 신의 세계를 이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한다.



< 한국의 축제>

한국의 축제역시 그 연원은 신화시대의 시간, 성역관념, 종교적 신앙적 주체와 연관된다. 전통적 농경사회가 그 기반이 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에 보이는 고천 제의의 국중대회는 풍요제의의 계절적 감각을 띄고있다. 계절에 맞추어 풍요의식으로서 죽음과 삶을 재현하고 부활과 생명력 ․ 활성의 획득을 시도하는 제의의 기본적 구조는 보편적이다. 그것은 창조적 어둠과 카오스속에서 우주 창생과 천지창조를 이루어낸 초자연적 권능에 기대어 일상에 의해 쇠퇴해버린 생명력과 활성의 소생과 회복을 기대하는 주술 심리적 고대 심성의 발로라 할만하다. 어둠과 카오스 가운데서 창조의 대업을 이루어낸 신화를 재연하는 의식절차의 집행자이자 고대의 사제는 ‘무당’이며 그들이 집행하는 제의절차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무속, 샤머니즘으로 불리운다.

작은 공동체 집단인 마을에서 벌어지는 동제 洞祭가 대부분 무속적 마을굿인 경우 그 ‘굿’이라는 표현 자체가 잔치, 향연의 뜻을 포함하는 축제적 성격을 띈다. 이런 무속적 마을굿은 동해안 별신제처럼 여러지역 공동체와 연계하여 보다 대규모의 무속적 제의를 거행한다. 이런 무속적 제의가 종교적 신앙적 측면을 강조하며 기복신앙의 형태를 띈다 해도, 그것은 제의의 구술상관물로서의 신화적 측면과 그 신화의 재연에 따르는 ‘창조적 카오스’의 재현이라 볼수 있다. 이렇듯 한국 축제의 특수성으로 무속적 마을굿에서 연행되는 제의절차와 연관된 축제적 놀이 성격은 실로 중요하다.


뒷전거리

무속 제의 절차는 크게 나누면, 부정거리, 영신, 가무오신, 그리고 신탁이라고 하는 예언의 공수, 그리고 송신거리로 이루어진다. 소단위 단락의 굿거리가 여러개 모여 대단위 무속 제의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런 대단위 무속 제의 절차는 경기도 굿의 경우 부정거리, 가만거리, 만명거리, 산상거리, 성주맞이, 별성거리, 대감놀이, 제석거리, 호귀거리, 군웅거리, 창부거리, 뒷전 등 열두거리 기본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열두거리는 한국의 연희전승체계의 기본 구조이며 이 구조는 지역의 역사와 환경에 따라 7,8거리로 축소되어지거나 20여 과정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구경거리로서의 굿거리가 첨가되면서 굿놀이의 축제적, 놀이적 성격은 강해지고 있다.


신성한 제의 절차 가운데 노래와 춤이 어울리고 세속적인 성의 에로스가 몸짓으로 연희되며 이것은 사회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은유 역할을 한다. 탈춤같은 민속 예능은 풍요․ 계절제의의 일환으로 연회되었던 가무오신이나 뒷전거리의 축제적 놀이적 절차가 제의의 쇠퇴나 절차의 탈락으로 독립 전승된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무속제의가 한국의 고대 신앙체계의 전승형태라면 오늘날 남아있는 마을굿이나 향토축제의 ‘가무오신’ ‘뒷전거리’ ‘무감(서기)’같은 현상은 신화적 카오스를 추상 追想하고 추체험하는 원초적 신앙공동체의 행위양식이다. 축제를 통해 추체험하는 난장은 새로운 창조이며 세속적 현실에서 잃어버린 생명력과 활력을 획득해가는 과정이다. 근원 회귀의 신화적 시간, 성역, 그리고 신앙주체에의 귀의를 통해 우리의 축제는 낭비나 일탈이나 파괴의 양상을 지양한다. 그리고 이런 난장의 조성은 근원회귀의 징표이다.

< 불을 사용한 축제 비교>

독일 뤽데시와 제주시 들불축제를 비교해보자. 세시행사는 각 민족의 생업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발전한다. 다양한 민속행사가운데 불놀이는 큰 역할을 해왔는데 불이 갖는 의미는 불관 관련된 동서양의 다양한 전통문화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불과 관련된 민속으로는 새해를 맞이하여 겨울의 음기를 없애고 대지에 봄기운을 더해 한해의 생산력을 촉진하는 정초의례, 하지 동지 춘분 추분같은 계절적 통과의례, 동식물의 번식, 다산, 성장을 위한 감응의례, 사당의 산신제나 부락제 등에서 보이는 ,부정한 것을 정화하고 잡귀를 물리치는 벽사의례 그리고 경배의례와 같은 여러 연중행사들이 있다. 이는 물론 불이 지닌 강한 상징성에 기인한다.

또한 불은 일상에서 빛과 따스함, 음식을 조립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리고 불순물과 부정한것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화학작용을 통해 일체의 것들을 무형체로 바꾸며 초자연적 영역으로 전이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불은 고대 이래 민간풍속과 종교의례에서 생명, 풍요와 벽사력에 관한 표상으로 나타났다.

독일민족도 이런 불과 관련된 다양한 축제를 즐겨왔는데, 불놀이는 주로 여름에 집중돼있다. 불놀이의 종류로는 크게 짚의 횃불을 들고 다니는 놀이, 불이 붙은 원반을 던지는 놀이, 짚으로 싼 수레바퀴를 동산에서 굴리는 놀이, 불 위를 뛰는 놀이, 장식된 짚 인형을 태우는 놀이 등이 있다.

물론 유사형태를 지닌 불놀이라 해도 세시에 따른 축제의 의미성은 차이를 보인다. 그 예로, 사육제의 불놀이는 겨울과 여름의 대결 양상과 여름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례를 보이면서 한해의 생산력을 촉진하고자 한다.

제주 들불 축제

부활절 불놀이는 새로운 생명의 도래와 태양을 초대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요한제는,태양의 정점인 하지를 맞아 하늘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불을 피우고, 성마틴제는 농경 추수제가 지닌 기쁨을 표현하는데, 이듬해의 좋은 결실을 기원하는 감사제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불놀이는 특히 춘분후 첫 번째 만월을 지나 맞게 되는 부활절에 독일의 중부와 서부의 많은 지역에서 행해진다. 그중 독일 서부 도시 뤽데는 작은 도시지만 불과 관련된 축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어스름한 저녁, 도시 주변 가파른 동산에서 떡갈나무 수레바퀴에 짚을 채운 후 불을 붙여 굴리는데 가파른 경사면을 따라 이 바퀴는 작은 강인 에머강 계곡을 향해 돌진한다.

축제행사를 알리는 예포소리와 함께 불붙은 수레바퀴는 언덕 아래로 굴러간다. 수많은 관중들이 기대감에 차서 지켜보고, 불타는 바퀴는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다 점차 속도를 받아 탄력있게 여기저기를 돌파하고 뛰어넘으며 굴러간다.

언덕 아래 도착지점에서는 음악대의 연주와 관중들의 환호가 기다리고 있다 .수레바퀴들이 골짜기 아래로 도착하면 요란한 불꽃놀이가 이어진다. 그리고 불이 붙은 바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교회종이 크게 울린다.

이는 민간신앙 풍습을 기독교적으로 의례화해서 상징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놀이의 기원은 고대부터 봄을 깨우는 주술적 행위의 성격이 크다 . 불타는 수레바퀴를 동산에서 굴리는 관습은 사라져가는 겨울을 보내고 다가오는 여름을 촉진하려는 태양주술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불놀이에 앞서 수레바퀴들은 에머강변 수면이 얕은 곳에 약 일주일간 담겨져서 물을 충분히 흡수한다. 이는, 바퀴가 계곡을 타고 내려갈 때 바퀴에 불이 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각 수레바퀴의 테두리에는 상징적인 각명이 새겨지는데, 과거에는 ‘영광속에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등의 기독교 복음이 주로 쓰여졌다. 그러던 것이 시대가 흐르면서 때로는 신랄하며 의미있는 메시지로 변하기도 하였다. 노후한 수레바퀴들은 여러 독일내 박물관들에 기증된다.

전술한것처럼 이 불火행사의 유래는 대략 2000년전 기독교 전파 이전 게르만족의 태양숭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신화속의 이들 조상들은 불에 애착을 느꼈으며, 불 수레바퀴는 다가오는 봄에 대한 기대를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

고대 게르만 세계관은 태양이 전투용 마차를 타고 하늘을 횡단하는 전사의 왕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불 수레바퀴와 관련된 의례는 천상을 가로질러 회전하는 태양을 모방하여 지상으로 빛과 열을 확보하고자 하는 태양의 주술의식이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이 불놀이들 속에는 기독교에 의해 민간신앙이 억압받으면서도 잔존하고 있음이 엿보인다. 그래서 이 불수레바퀴 놀이는 기독교의 부활을 (부활제) 축하하기 보다는 고대의 의례와 더 관련있다는것을 확인하게 된다. 즉, 이들 부활절 불놀이는 기독교 개종 이전의 게르만족의 봄 축제중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제주의 들불축제는 정월대보름에 연희되는데 이 행사는 가축방목을 위해 해묵은 풀을 없애고 병충해를 방제하기 위해 마을별로 매년 해온 들불 놓기에서 유래했다. 그것을 북제주군 관청이 1997년부터 관광상품화해서 운영하고 있다. 예전엔 주로 들판을 태우던 놀이였는데 지금은 10만평의 드넓은 목야지에 불을 놓는 대행사로 변했다.

정월 대보름은 예부터 생산을 하지 못했던 겨울을 보내고 새로이 봄을 맞아 생산에 참여하는 시점을 상징했다. 이것과 함께 농경민들은 한해의 소원과 풍작을 빌고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봄맞이 잔치의 의미로 이 행사를 거행한다.

축제는 불놀이 행사에 앞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이는데, 제주조랑말의 말싸움 놀이, 돼지․오리몰이 경주, 민속노래자랑 등이 있고 주변에 특산품이나 주막,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사진교류전 등이 열린다. 행사의 핵심은 대보름 저녁에 펼쳐지는 오름 들불놓기와 그해의 수만큼 (2005년이면 2005발)터지는 불꽃놀이다.

횃불점화와 달집 점화를 시발로 해서 준비해둔 언덕에 불을 놓는다. 불을 통해 잡귀를 쫓고 액을 달아나게 해서 1년동안 아무 탈없이 지낼수 있다고 믿어온 민간신앙에 기초하여 자욱한 연기와 함께 불을 사방에서 일어나게 하여 온 들판이 불로 장관을 이루게 한다. 불의 크기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 또는 그 마을의 길흉이 점쳐진다.

정월대보름은 지금은 그 명성을 많이 잃었지만 설날, 단오, 한가위와 더불어 한국인의 4대 명절가운데 하나다. 이 대보름 민속행사에는 특히 불과 관련된 많은 민속놀이가 있어, 들불놓기, 쥐불놀이, 횃불사움, 불깡통 돌리기, 달집 태우기, 도깨비불 보기 등이 있다.

제주도의 민속에서 정월 대보름날은 ‘액막는 날’로 지켜져 왔다. 주로 불을 지펴 사악한 것이 가져올 불행과 재앙을 예방하는 액막이로서 또는 불기운을 쏘여서 인간이나 식물을 정화하는 기능을 행하였다. 생업에 있어서는 방목을 위해 들판의 마른 풀에 붙어있는 해충을 비롯한 잡충을 제거하고 타고 남은 재가 건강한 자연초지를 이루는 풍습으로 행해졌다.

제주도와 함께 이러한 대보름 불놀이는 강릉 망월제, 청도 달집 태우기, 금산 장동의 달맞이 축제와 경남 창령 화왕산의 억새 태우기 행사가 있다. 또한 제주도의 불놀이는 이곳 무속신앙과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제주 전역에 퍼져있던 당제에서 무당이 굿을 하고 최종적으로 신에게 송신할 때 모든 것을 불사르는 풍습을 통해 불놀이의 민간신앙적 벽사력의 성격이 확인된다.

이상 독일과 우리의 불놀이 축제를 살펴보았다. 독일의 부활절 불놀이는 겨울의 음기를 없애고 다가오는 태양의 힘을 보태고 자극하고자 수레바퀴를 이용하여 태양의 운행을 모방하는 연행이었던 반면, 제주의 정월보름 불놀이는 우리의 농경문화와 관련하여 부정한 것을 정화하고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기능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이 두 축제는 전승형 축제모델과 산업형 축제모델, 이 두가지 민속축제 유형으로 나눌수 있는데 독일의 그것은 오랜 전승과정을 거치면서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애향심을 바탕으로 한다.

이상 축제의 다양한 개념과 정의를 살펴보고 세계의 여러 축제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일본 아이누족의 곰제의는 희생과 제의라는 프로이드적 터부의 개념을 환기시키는 좋은 예다. 축제란 무릇 현장감을 필요로 하는 테제이다. 축제는 일탈과 광기의 순간이며 유토피아를 희구할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현실을 부정하는것은 아니며 오히려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축제는 민중들이 자신의 한풀이를 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위정자들의 통치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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