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끔찍한 사건 A Painful Case>에 나타난 멜랑코리아
20세기 최고의 난해한 작가로 평가받는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리너스>에 수록된 단편 <끔찍한 사건>은 더블린이라는 도시의 집단적 우울증과, 그것에 감염된 한 중년남자의 비극적인 정신상태를 그림으로써, '마비'(paralysis)로 집약되는 죠이스의 주된 테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조이스는 약관의 나이에 조국 아일랜드를 등지고 남은 생을 유럽의 다른 지역을 전전하며 스스로 '추방된 자'로 살았다.
당시의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하에 700년간이나 놓여있었고, 국민들은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수도인 더블린은 그 모든 것의 집결지였고, 조이스는, 그런 조국을 떠나게 되지만, 떠남으로써 더 강하게 붙들리는 정신적외상 trauma을 경험하고, 그로서 더블린은 그에겐 영원한 악령이자 뮤즈가 되었다.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우울증을 정의하자면 ‘주요우울증' '신경증적 우울증' '가면성 우울증'등이 있고, '멜랑코리아'는 '명백한 우울 기분, 정신운동지연, 격정, 불면증, 반응의 감퇴, 쾌락을 느끼지 못함, 심한 식욕감소와 체중감소, 심한 죄책감'을 특징으로 하는 우울증의 한 종류다. 또한, 우울증은, 자폐증의 여러 부분과 겹치는데, 자폐증 autism은 말 그대로, 자기의 내면세계에 틀어박히는 정신분열증의 일종으로, 1911년 스위스의 정신병학자 블로일러 (1857-1939)가 사용한 용어다. 환자는 현실과 외부세계가 모두, 자신의 바람이나 콤플렉스, 환각과 망상에 적합한 형태로만 존재한다 생각하고 그것에 역행할 경우, 현실이 존재치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자폐적인 세계에서만 안전하다 믿고, 거기서, 현실과 외부, 꿈과 현실을 분간치 못하는 분열된 정신현상을 보이게 된다.
<끔찍한 사건>의 히어로 Mr.Duffy는 멜랑코리아와 자폐증이 결합된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생활에 따라붙는 타인과의 접촉, 그에 따른 불협화음, 속임수와 시끄러움을 피해, 혼자만의 삶을 고집하고 있다.
"제임스 더피씨가 채플리죠드에 사는 이유는 우선 자기가 시민인 도시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져 살고 싶기 때문이었고 , 또 더블린의 다른 근교는 모두 천하고 현대식이며 거들먹거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거무칙칙한 낡은 주택에 살았고..."
또한 그는 밝을 것을 싫어하고, 늘 피로에 지쳐있는 모습을 보인다. 우울증의 증상이며, 그것은,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리피강에 잘 투영돼있고, 도시 더블린의 모습이기도 하다.
"...문에서는 버려진 증류주 제조장 안을 들여다보거나, 더블린 아래로 흐르는 얕은 강 (리피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그의 얼굴은 더블린 길거리처럼 갈색이었다"
이처럼, 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이성과의 접촉도 갖지 않고 오랜 기간을 금욕주의자처럼 지내왔다.
또한 더피는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그는 한 은행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왔고, 그의 일상은 늘 같은 것이 되풀이되는 정체와 마비의 생활이다. 조이스의 주된 테마가 바로 '마비'paralysis임이 잘 드러나고 있다.
더피에게 ’변화‘란 자신의 '신성한' 금욕주의를 파괴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내부의 외로움은 극에 달한 법이고, 정반대의 삶을 갈구하게 돼 있다. 바로, 이중 자아를 갖게 되며, 그때 나타난 대상이 유부녀 시니코Mrs. Sinico이다. 그런데, 이 Sinico라는 철자를 살펴보면, "I cooperate in Sin"이 돼서, 더피의 죄의식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다시말해, 시니코부인은, 더피의 또다른 자아이며, 그 자아는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죄의식이 또한, 우울증의 주된 증상이다.
그녀를 처음 만나, 그녀와의 관계가 진전되는 부분을 살펴보면, 그의 억압돼 온, 성적이고 쾌락적인 생활에 대한 동경이 드러나고 있다.
"....어느날 저녁, 그는 로턴다 극장에서 두 숙녀 옆에 앉게 되었다. 극장 안은 사람이 적고 교교한 것이 침울하게도 공연의 실패를 예언하고 있었다 . ( '실패'라는 말은 둘의 관계가 맞는 파국을 암시한다 볼 수 있다.)...예전에도 분명 수려했을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지적이었다. ('지적'이라는 표현은 더피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일 수 있다.)...그녀의 딸이 다른 데 정신을 파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녀와 친해졌다. 그녀는 한두번 남편이 있다는 것을 암시했지만, 그녀의 어조는 경고의 투는 아니었다 (시니코부인은 경고의 뜻으로 했을지 모른다-)"
여기서, 시니코 부인이, 남편 아닌 다른 남자와의 밀회를 즐기는 것은 매우 통속적인 이유에서다. 그것은, 남편이 선장이므로 집을 자주 비운다는 것과 남편으로부터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더피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그녀에게 끌리며 자신과 그녀를 동일시하는데 이것은 우울증 환자들의 관계망상의 한 예라 할수 있다.
그러나 시니코부인의 격정이 드러나면서 더피는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그날은 시니코 부인이 평소와 다르게 흥분한 온갖 징후를 다 보이다가 열렬하게 그의 손을 잡아들고 그것을 자기 뺨에 가져다 눌렀다. 자신의 말을 그녀가 그렇게 해석한 것이 그는 환멸스러웠다. 그는 일주일동안 그녀를 방문하지 않았다...그들은 교제를 끊기로 합의했다. 그는 인연이란 하나같이 슬픔으로 가는 인연이라고 말했다....4년이 지나갔다. "
이렇게, 더피는, 시니코 부인의 솔직한 감정표현 앞에서 도망친다. 자신의 숨겨진 부분이 발각됐을 때 오는 당혹감과 무책임함이 우울증의 또 다른 증상이다.
이렇게 시니코부인은 더피에게 버려진다. 남편에게선 이미 버려진 존재였고,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찾아낸 더피라는 남자에게서 또다시 버려지는 이중의 아픔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더피는, 그녀를 버림으로써, 자신의 죄의식 SINico에서 벗어났다고 느낀다.
"...그는 평탄한 삶의 방식으로 돌아갔다...문장 중 하나는 그가 시니코 부인과 마지막 만나고 2개월 뒤에 쓴 것으로 이러했다. 남자와 남자 사이에 사랑은 불가능하다. 왜냐면 성교가 있어서는 안되므로, 그리고 남자와 여자 사이 우정은 불가능하다 왜냐면 성교가 있어야 하므로...그녀를 만나게 될까봐 그는 연주회를 멀리했다"
남자 여자 사이엔 성적인 접촉이 불가피함을 고백함으로써, 더피의 은폐된 에고가 폭로되고 있다. 이렇게,시니코 부인에 대한 병적 동일시 현상이 깨어지자 더피는 잔인한 인간으로 돌변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죽음이 바로 자신들의 추억을 더럽혔다고 생각하며 분개한다.
"....'씨드니 퍼레이드에서의 한 숙녀의 죽음-가슴 아픈 사건'...드러난 증거를 보면 고인은 철길을 건너려다가 10시 킹스타운 발 완행 열차에 치어 두부와 우측 전신에 부상을 입고 사망하였다...(이상 신문기사)....이렇게 죽다니! 그는 그녀가 죽은 이야기 전체가 역겨웠고 ...그녀는 단순히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린 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품위를 떨어뜨린 것이었다..영혼의 반려자라구!"
그러나 곧 더피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자책하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이피퍼니epiphany,현현, 깨달음’가 시작된다.
"...빛이 흐려지고 그의 기억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녀의 손이 자기 손에 와 닿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시니코부인에 대해 가졌던 욕망을 고백한다.
"그녀와 기만의 희극을 연출할 수야 없었다. 그녀와 공개적으로 함께 살 수도 없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녀의 체취를 그리워하며 그녀의 죽음을 실존적 차원으로까지 인식하게 된다.
"그는 그들이 4년 전에 걸었던, 이제는 쓸쓸한 좁은 길을 걸어갔다. 그녀가 근처의 어둠 속에 있는 것 같았다 . 때때로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와 닿는 듯, 그녀의 손이 자기 손에 와 닿는 듯 느꼈다....왜 그는 그녀에게 삶을 주지 않았던가? 왜 그는 그녀에게 죽음을 선고했던가? 그는 자신의 도덕적인 본성이 산산조각나는 느낌이었다"
자폐환자나 심화된 우울증 환자에게 공통된 증상 가운데 하나는 바로, '청력'의 예민함이다. 그것이 심해지면 환청이 되는데, 이 작품에선 기차소리가 그 역할을 한다. 기차(전차)소리는, 작품의 도입부에서부터 시작돼 끝까지 등장하면서 더피의 신경을 교란시킨다. 그리고 끝내 그것은, 시니코 부인의 이름을 되뇌이는 것처럼 (환청)더피에게 들리게 된다. 그리고 물론 기차는 남성의 심볼로, 더피의 숨겨진 욕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이피퍼니를 경험했음에도, 더피는 새로운 생을 시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로 돌아간다. 나이 40이 넘어서도, 이렇다 할 사회적 지위( 은행의 일개 출납계원일 뿐)도 없고, 돈도 배경도 없고, 비록 '불륜'으로 다가온 연애였지만, 그것마저 실패하고 말았다는 자멸감에 빠진다. 이 무력감이 바로, 더블린과 닮아 있는 것이다.
주목할것은 시니코 부인의 열차사고가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문)...고인은 밤 늦게 플랫폼에서 플랫폼으로 철길을 건너는 버릇이 있었고, 사건의 다른 정황으로 보건대 그 (철도회사 대표)는 철도 직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다. 그것은 또다른 더피의 죽음이기도 하다. 즉, 생중사의 마비된 삶, 이것이 조이스가 하고픈 이야기는 아니었을까.
프로이드는 '정상인'의 개념을 "약간 강박적이고 약간 히스테리적이고 약간 편집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Dubliners>는 곧잘, T.S Eliot의 시 <프루프록의 연가>와도 비교된다. 황폐한 도시적 스케치와, 그 안의 고립되고 무기력한 인간군상이 매우 흡사하다.
" 자 우리 가볼까, 당신과 나, / 수술대 위에 누운 마취된 환자처럼/저녁이 하늘을 배경으로 사지를 뻗고 있는 지금/우리 가볼까, 어느 반쯤 인적 끊어진 거리, /싸구려 일박호텔의 불안한 밤의 /속삭거리는 으슥한 길/ 굴 껍질 흩어진 톱밥 깔린 레스토랑을 지나/... 나는 내 삶을 커피 스푼으로 재어 왔기에...“
참고자료/ <더블린 사람들>, 창작과 비평사 ,창비 교양문고 32, 2000/ <James Joyce 소설 연구>, 박성수. 한신문화사, 1993/ <프로이트와 한국문학>, 조두영, 일조각, 2000/ <심리학 통론>, 정양은, 법문사,1998 <Modern Critical Interpretations, Dubliners>, Chelsea House Publishers, NY. 1988 <The Critical Heritage James Joyce, volume1 1907-27> edited by Robert H. Deming, Routledge, 1997/ 기타, 인터넷 검색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