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노래
작가 로맹가리는 유태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모친을 따라 남프랑스로 이주했고 모친은 로맹가리가 온전한 프랑스인으로 살아가길 원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2차 대전때는, 직접 공군으로 참전해 아프리카까지 갔으며, 프랑스인으로는 평생에 단 한번밖에 수상할수 없다는, 공쿠르상에 두 번이나 지명이 됐다. 전쟁의 경험을 살려 쓴 장편 "유럽의 교육" (1945)으로 비평가상을 수상하였고, "하늘의 뿌리"로 1956년 공쿠르상을 수상, 그후,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앞의 생" (1975)으로 두 번째 공쿠르상에 지명된다.
그의 문학은 유태계 러시아인이라는 자기근본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된 정체감의 혼란,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가 남긴 인간에 대한 혐오감, 나아가 '유럽'으로 집약되는 '문명세계'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안에서 부유하는 인간본성의 연약함에 대한 연민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1980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는 20여년을 세계 각지에서 프랑스외교관으로 일했고, 남미에서도 한동안 있게 된다. '남미'라는 아직은 문명의 세례를 덜 받은 '원시'의 세계에서 그는 일말의 희망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을 가져보지만, 거기에서조차 인간들의 가증할 음모와 거짓이 횡행함을 목격하고 주인공은 (아마도 )자살을 택하게 된다.
그의 작품 속에서 '자살'은 이처럼 빈번한 소재이고, 또한 작가 자신이 자신의 생을 마감한방법이기도 했다. 세상이 말하는 '부와 명예'를 충분히 누렸음에도 로맹가리의 가슴 한쪽은 늘, 인간에 대한 깊은 절망감으로 탄식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닐까.
<벽>역시 허무주의를 깔고 있다.그것은, '서로간의 의사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의 오해가 빚어낸 자살'이라는 '부조리문학'의 한 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마력을 지닌다.
우선 부조리문학을 간락하게 살펴보면, ‘의사소통 불능으로 인한 오해’로 집약되는데 <벽>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부조리문학은 2차 대전후 기존의 전통문화와 문학의 본질적 신념과 가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고 사상적 기원은 실존주의에 있다 . 실존주의의 포괄적 의미를 든다면, '합리주의적 인간관에 대한 의심과 삶에 대한 근원적 반성, 새로운 생존의 길의 모색'등으로 요약할수 있다.
로맹가리 romain gary (1914-1980)
'부조리'란 용어를 최초로 문학에 도입하고 유행시킨 사람은 알베르 까뮈이다. 그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그의 선택에서 기인하지 않은 모순된 것이고, 그러므로 존재와 삶 자체도 부조리하다는 것, 즉 개인은 이유 없이 낯선 우주에 던져진 존재이고, 우주는 그 어떤 내재적인 진리나 가치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것, 인간의 삶은 무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부조리문학의 중심 주제는, 삶과 죽음, 고립과 소외의식, 의사전달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일례로 까뮈의 <오해>를 살펴보면,
" 마르타-당신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만 쓰는군요...오해가 있었죠. 이 세상 일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리 크게 놀랄 만한 사건도 못되죠...그런데 나는 달라요. 어머니는 나를 버리고, 그리고 이번에는 죽어버렸단 말예요. 나는 두 번이나 잃은 셈이 되죠...죽기 전에 피가 통하는 따뜻한 인간의 손에 내 몸을 더럽히고 싶지 않을뿐더러, 또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지저분한 인간의 애정같은 것에 골치를 썩히다니 , 그건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고 피가 끓어오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해>는 개인을 절망시키고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 세계의 의사소통 불능과 오해임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서 비롯되는 죽음은 '인간이라는 구질구질한 존재'로부터의 해방이며 또한 '신이 가버린 시대'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하고, 이 모순된 양가의 감정이 바로 부조리문학이 말하고자 하는 그것이다.
<오해>가 이처럼, 오해와 불신, 의사소통의 불능으로 인한 죽음 (자살)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로맹가리의 <벽>역시 같은 문제를 같은 해결책 -죽음(자살)-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화자인 "나"가 지인인 닥터 "레이"로부터 허망한 두 젊은이의 자살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전개되는데, 이미, 작품 도입부에서 화자인 '나'역시 언젠가 그런 비참한 종말을 맞을수 있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존재의 영원한 불안정성을 말하고 있다.
" 내가 오랜 친구인 그를 찾아온 것은, 원기와 낙관주의와 집중의 힘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기적의 약' 한가지를 처방해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화자의 이 말에서 이미, 원기와 낙관주의가 결여된 이 세계에서 인간의 상처와 고독을 치유하는 '기적의 약'은 없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지고 있다.
이 말을 들은 닥터 레이는 '그런 이야기'대신 '벽'으로 상징되는 두 젊은이의 처참한 자살이야기를 들려준다.
"난 자네의 약을 처방하지 않겠네...하지만 그 대신 벽에 대한 실화 하나를 들려줄 순 있네. 여기서 말하는 벽은 원래의 뜻도 되고 비유적인 뜻이기도 하네. 이 사건은 혹한의 추위가 몰아치던 어느해 성 실베스트르 축제일 (12월 31일)에 일어났네. 사람들이 우정과 따스함과 기적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때 말일세"
성탄을 지나 연말 무렵이라면, 닥터 레이의 말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이 '우정과 따스함과 기적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그런 시기이다. 바로 그 때 얇은 '벽'을 사이에 둔 자살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는 말 자체가 우리 삶의 허망함과 소외된 개인, 그들의 단절감, 다시말해,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자살현장에 대한 묘사 역시 추잡하고 부조리한 느낌을 준다.
"그곳의 서글픔과 더러움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동전을 넣어야 가스 난로가 작동하는 초라한 방으로 들어서자 그날 밤 목을 매어 자살한 스무살 가량의 젊은 남학생의 시신이 내 앞을 가로 막았네..."
이렇게 생을 마감한 젊은이는 세상에 대해 매우 '신경질적인 '유서를 남겨두었다. 욕망했으나 가질수 없는 생에 대한 미련과 회한이 그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 불쌍한 청년은 자신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적어두었더군. 얼핏 보기에 그는 고독의 발작에 꺾이고 만 것 같았네. 그에게는 가족도, 친구도, 돈도 없었네. 크리스마스가 되자 그의 전 존재가 애정을 갈구하게 되었지 사랑과 행복을..."
그러나 젊은이가 꿈꾼 '전 존재'를 행복하게 해주는 '애정'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그는 '천사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한 처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그와 바로 '얇은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살고 있었다. 그 벽은 너무나 얇은 것이어서, 서로의 의지와 노력만 있었다면 충분히 허물수도 있었을 그런 벽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는 결에 그녀를 몇번 보았을 뿐, 한번도 말을 붙여보지 않았기에 그녀에 대해 자기만의 상상을 키워가야 했다. 까뮈의 주인공들처럼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자기를 알린다는 것에서 철저히 실패했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그는 그녀의 방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거친 숨소리를 듣게 된다.
" 그런데 그가 슬픔과 낙담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안 옆방에서는 벽을 통해 삐걱임, 신음, 그리고 특이한 소리가 들려왔네. 그 소리를 두고 청년은 그 성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독특한 소리'라고 유서에 써놓았더군...그 가엾은 청년은 분노와 경멸에 차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듯 그 소리를 자세히 묘사해 놓았으니 말일세. 그의 글씨는 몹시 흥분한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있었네. 영국 청년이 쓴것치고 그 글은 상당히 노골적이었네. '
"영국 청년이 쓴 것 치고"라는 부분에서 로맹가리의 '유럽'으로 집약되는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을 읽어낼 수 있다. 문명은 인간을 고립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그녀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그것이 '성교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분노와 경멸'에 차서 유서를 쓴다. 누구보다도 그녀를 '천사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자기인데도 그녀는 다른 상대와 성교를 나누고 있으므로 '부조리하다'고 느낀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석에서 '질투망상'에 해당한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다른 대상이 있지 않을 때는 이 망상에 빠지지 않지만 그 대상이 다른 대상과 관계를 맺고 있거나 그럴거라고 짐작하면 치밀어 오르는 것이 이 질투망상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내지른 신음소리는 성의 오르가즘 상태에서의 '쾌락의 소리'가 아니라 죽음 직전의 '고통의 절규'였음이 밝혀진다. 아래서 '얇은벽'은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 ...얇은 벽-얼마나 얇은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걸세-...주인 여자가 일그러진 얼굴로 방에서 달려나왔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커튼을 젖혔네. 침대 위를 한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벽을 통해 들려와 청년을 절망적인 행동으로 몰아간 그 탄식과 소스라침과 신음 소리의 정체를 청년이 완전히 오해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네. 베개 위에서 나는, 비소 중독으로 인한 온갖 증상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금발머리 여인의 얼굴을 보았네...그녀의 마지막 고통은 길고 고통스러웠던 모양이야.."
그녀 역시 탁자 위에 자신의 유서를 남겼다. '그'가 남긴 것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의 유서였다. 그녀 역시 '고통스러운 고독과 삶에 대한 총체적인 혐오감 '으로 인해 죽음을 택했다. 바로 얇은 벽 너머에서 그토록 자기를 원하는 한 존재가 있음을 알지 못한 채.
부조리문학의 특징인, '의사소통의 불능'은 이렇게, 개인들은 노력하는데 되지 않는 차원의 일이라기 보다는, 노력조차 포기하게 만드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 시도한다면 상처받을 것이기에 처음부터 포기하게 만드는 그 위축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해를 낳고 비극을 가져온다. 그래서 개인은 서로에게 진정한 자기를 알릴수 없고, 내뱉는 말은 모두 공허한 독백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해 '벽'은 외부가 아닌 개인들 내면 속에 버티고 있는 상처 받지 않으려는 자의식을 말한다. 이렇게 그와 그녀는 '크리스마스를 방금 지내고 새해가 밝아오는 ' 한해의 마지막날, 똑같이 목숨을 끊는다.
"그렇다네 벽은...자네의 아주 참신하고 흥미로운 크리스마스의 이야기의 주제가 될걸세.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이제 신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으니 말야. "
여기서의 '신비의 계절'은 환원하면 '착란과 실망의 계절'쯤 되지 않을까?
이상 살펴본것처럼, 까뮈의 <오해>와 로맹가리의 <벽>은 '의사소통의 불능으로 인한 오해와 죽음 (자살)'이라는 똑같은 부조리문학의 코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까뮈가 보다 정교하고 억제된 언어형식을 취했다면, 로맹가리는 보다 육화되고 직접적인 '몸의 언어'를 택한 것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같은 부조리문학이라 해도, 까뮈의 것이 '보다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 느낌을 준다면 로맹가리의 그것은 '처연함' 그 자체로 와 닿는다 .
여기서 잠깐 자살의 정의를 보기로 한다.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은,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자살을 크게 세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그리고 아노미적 자살이라 분류하고 있는데, 이기적 자살은 '사회집단에 강력하게 융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행하는 자살로, 사회적 유대가 끊어져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지지기반을 잃게 됨으로써, 고립감과 소외감에 빠진 상태에서의 자살하는 것을 말한다. 이타적 자살은, 사회집단과 지나치게 융화돼서 사회를 위해 자살하는 경우를 주로 말하고,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에 적응 또는 융화되는 것이 차단되거나 와해됨으로써 행동의 일상적 기준을 상실했을 때, 또는 개인적 요구와 사회집단적 양심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에 나타나는 자살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의 자살 같은 것이 그런 예가 된다.
단편 <벽>에서의 자살은 이 가운데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적 자살에 해당한다 볼수 있고, 그들이 소외된 채 버려진 삶을 산 원인을 근본적으로 사회에 있다 본다면, 아노미적 자살에 보다 가깝다 할 수 있다. 부조리한 사회가 그와 그녀를 죽인것이다. 물론 모든 자살은 본질적으로 타살이다. 자살 속엔 죽기, 죽이기, 죽임을 당하기의 세가지 심리가 공존한다.. 그래서 자살은 새도 매저키즘적 성격을 띄게 된다. 매저키즘이 본래는 대상에게 향했던 새디즘이 자아에게 되돌려진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그'는 추잡하고 냄새나는 누추한 공간에서 사는 '소외된 자'이다. 이것은 '그녀'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신경증의 원인은 소외된 노동에서 비롯된다... "
이렇게 가난 속에 버려진 그들은 자기들만의 신경증에 시달렸고 최후의 선택으로 자살을 택했다 보여진다. 그토록 혐오하는 '세상'이었지만 , 그 세상 속에 속하지 못한다는 열패감이 두 젊은이의 꿈을 무참히 짓밟고 그럴수록 더더욱 자신 속으로 움츠러드는 병적인 나르시시즘에 몰두하고 그렇게 해서 자폐의 과정을 밟으며 타자를 타자로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채 자기만의 상상 속에서 재구성하고 왜곡하며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근대병이며 도시가 개인을 마멸시키는 과정이 아닐까. 외부세계의 모든 즐거움을 박탈당한 그들에게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이 가버린 세계'에서 무의미하게 되풀이하는 방황외의 그 무엇도 아니었으리라. 그런 상황에서, '성애의 환상'은 비록 상상 속에서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 ...에로틱한 만남을 할 때 순간적이나마 단절과 유한성이 깨진다...요컨대 에로티시즘은 죽을 때까지 내내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에로틱함이란 소모되고 초과된 상태를 뜻한다. 소모와 초과는 바타유에게 핵심적인 용어다... 비 생산성은 실용적인 것을 지나 성스러운 감각을 회복할때 필요하다. "
그녀 역시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그'에 대해 똑같은 상상과 욕망을 갖지 않았다고 단언할수 있는가.
잠깐 프로이드의 ‘죽음본능’을 살펴보기로 한다.
인간에겐 두가지 큰 본능이 있는데, 생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그것이다.
"...개체의 생명과정은 내적인 이유로 해서 화학적 긴장의 소멸, 다시 말해서, 죽음으로 향하고, 반면에 다른 개체의 살아있는 물질과의 결합은 그러한 긴장을 고조시켜 이른바 신선한 '생명고취적 차이'를 도출해낸다는 것이다...정신생활 및 신경 생활전반의 지배적인 경향은 자극 때문에 생긴 내적 긴장을 줄이거나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 혹은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바라 로우의 용어를 빌리자면 '열반원칙'이다). 이런 경향은 쾌락 원칙 속에서 발견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죽음 본능의 존재를 믿는 가장 강력한 이유중 하나다"
유기체의 최초의 상태를 복구하려는 내적 충동, 그것을 프로이트는 '죽음 본능'이라 명명하고 모든 생명활동이 정지하는 상태가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파괴를 통해 어떤 궁극적인 안정상태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을 '생의 본능' (에로스)이라 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이 두가지 본능은 인간의 내면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갈등을 일으킨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둘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쾌락원칙'임을 프로이트는 강조하고 있다.
" ...우리가 얻을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인 성행위가 고도로 강화된 흥분의 순간적 소멸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경험한 바 있다"
'벽'으로 인해 '훔쳐보기'마저 거세된 상황 속에서의 예민해진 ‘청각’이 불러일으킨 그 상상의 힘이 어느 정도였을까는 쉽게 상상이 간다.
"적어도 한시간에 걸쳐 침대가 삐걱이고 요동치는 소리와 명백한 쾌락의 헐떡임이 들려왔다는 거야. 내가 그 소리를 묘사할 필요는 없겠지..."
'벽'을 사이에 두고, 그는 그녀와 상상의 성교를 즐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신음소리가 고조되면서 그의 상상 속의 성교도 절정을 향해 치닫고 그것이 마침내 절정에 달했을 때 자살을 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론으로 들어가, Lopata는 고독을, 고립 isolation과 쓸쓸함 desolation으로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고, 홀로 있어서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일정하게 필요로 하는 관계나 일련의 관계가 소멸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고 했다. Rogers는, 고독은, 타인들로부터 거절될 것을 예상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라 말한다.
<벽>'의 그와 그녀는 지독히 소외되고 고독한 상황 속에서 유일한 출구인 성애의 환각을 연출해냈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달했을 때 , 자기들을 버린 이 세상을 미련없이 버리고 떠나갔다.
- 참고자료/ "부조리문학" 황동규역,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4/ '오해' "알베르 까뮈 "까뮈 문학전집" 아카데미, 1983/ '벽-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로맹가리지음, 김남주 옮김,문학동네, 2002/ '에밀 뒤르켐 자살론' 청아출판사, 김충선역. 2000/ "쾌락 원칙을 넘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 열린책들 1997/ 'waiting' Ruby,Cohn, "Samuel Beckett's Waiting for Godot", Chelsea House Publishers, 1987/ "모더니즘 문학의 병리성 연구" 한만수, 도서출판 박이정. 2002. / 그 외 , 부조리문학, 소외, 고독, 자살 관련 인터넷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