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해수

by 박순영

규원은 자신이 잘못본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본다. 담배를 사러 거의 매일 드나들던 편의점을 며칠 거른 사이 아르바이트생이 바뀐듯 하다. 이번에는 여자다. 보통은 밤샘작업을 하는터라 남자를 쓰기 마련인데 이번엔 여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그 옆모습이 눈에 익다.... 그는 왠지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가기가 망설여진다. 생각해보니 집엔 전자담배도 있고 해서 오늘은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하지만 규원은 집에 와서까지 카운터 그녀의 옆모습이 계속 아른거린다. 설마..

"여보, 저녁은?"

아내 난희가 주방에서 손의 물기를 닦으며 묻는다.

"좀 줘...라면 없나?"

"왜 라면을 먹어. 순두부 끓였어"라며 그녀는 맞춤하게 덥혀진 순두부찌개와 몇가지 반찬을 늘어놓는다. 수북한 공기밥을 보자 규원은 피식 웃음이 나온다.

"웬 머슴밥?"

규원이 싫지 않은 타박을 하자 난희는 기분이 좋은지 규원의 정수리에 살짝 입을 맞추고 거실로 나간다.



규원과 난희는 둘 다 재혼이었다. 규원은 결혼 3년만에 상처했고 난희는 전남편의 계속된 외도끝에 이혼한 케이스였다. 둘은 이른바 '돌싱까헤'에서 만났다. 서로의 통성명이 끝나고 대략 서로의 사정이야기가 오간 다음 규원은 '이 여자다'싶은 감이 와서 용기를 내서 난희에게 만날것을 제안했다. 난희는 잠시 주저하더니 마침 사는 곳도 서로 멀지않고 하니 사거리 까페에서 보는게 어떻냐고 나왔다.

그렇게 만난 둘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렸고 그로부터 반년도 되지 않아 혼인신고를 했다. 규원에겐 전처가 남긴 아들이 하나 있지만 아내가 죽고 난 뒤 남자 혼자 키우기 어려울거라며 처가에서 아이를 데려갔다.. 규원은 내심 짐을 던듯한 기분이었지만 차마 내색할수는 없었고 난희는 한번의 유산끝에 이혼한 케이스라 둘다 홀가분한 처지였다.

그렇게 밖에서 처음 본 그날, 규원은 난희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갔고 수북히 방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며 난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작가님 방은 역시 다르네요"

그당시 규원은 그 돌싱까페에 '재혼해도 고독할까"라는 우리 사회 다양한 결혼문화를 쓰고 있었고 그렇게 조금씩 이혼녀들의 인기를 얻어갈 즈음 난희를 만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둘은 밖에서 만난 첫날 , 밤을 같이 보냈다. 이 여자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규원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이없는 젊은 이혼녀, 안정된 직장, 수준급 외모, 고분고분한 말투...이 모든게 '그녀'와는 판이했고 그래서 더더욱 끌렸다. 이여자정도면 여생을 같이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모든건 빠르게 진행돼 결국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해수는 난희와는 정반대, 아니 최소한 고분고분한 여자는 아니었다. 어느정도 자기주장도 있고 그래서 서로 자주 싸우기도 했고 한번 돌아서면 먼저 화해를 청하는 법이 없는 싸늘한 구석이 있는 그런 여자였다. 하지만 무명기의 규원을 먹여살려준 여자였다. 생계며 용돈, 지방 강연이라도 잡히면 차 기름값까지 대주던. 규원은 그런 해수가 싫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배우자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웬만하면 섹스는 피하려고 했고 그것이 자주 말썽을 일으키곤 했다.

"나 왜 보는 거야? 돈때문에? 당신 이러다 돈좀 벌고 유명해지면 나 버리겠다?"

이런말까지 해수는 스스럼없이 해댔다. 그러는 그녀가 규원은 마땅치 않았고 그렇게 둘 사이엔 암묵적인 거리가 생겨났다.

"남자 여자가 꼭 섹스로만 정의되니"라고 아무리 그가 항변을 해도 영리한 해수는 말려들지 않았다.

"나랑 나중에 살아, 안살아?"

그렇게 그녀는 극단적 질문까지 쏟아내게 되었다. 그렇게 둘이 대판 싸움을 벌인날 그녀의 미장원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 규원은 대상소식을 전해들었다. 남도에서는 제법 큰 문학상으로 회자되는 그 상의 대상으로 자신의 소설이 뽑혔다는 내용이었다. 상금도 적지 않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응모한게 대상을 안겨준 것이었다. 이런걸 꿈꾸는 기분이라고 하는걸까... 그리고는 얼른 해수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는 마음에 미장원 유리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무언가 그의 발목을 잡는것 같았다. 지금 알리면 상금은 물론 자신의 남은 삶 자체가 해수의 손에 떨어져버릴 것 같다는 육감 같은 것이었다. 그는 혹시나 유리너머로 해수가 자신을 보기라도 할까 그 길로 자신의 옥탑으로 냅다 달렸다. 그렇게 그는 그녀로부터, 그녀의 부양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녀가 들인 1억에 가까운 돈을 한푼도 갚지 않고...


뒤늦게 그의 대상수상을 알게 된 해수가 그에게 연락을 해왔지만 그는 수신차단을 했고 시상금으로 방부터 옮겼다.. 그리고는 그녀의 이메일이며 메시지를 모두 차단했다. 그렇게 흐른 세월이 한참이다.. 어떤땐 그녀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은 해수의 말처럼 된것이다. 어느정도 원하는걸 갖고 나서는 자기를 버릴것이라던...



이후 그는 크고작은 문운이 트여주면서 제법 명예와 돈도 쥐게 되었고 그러다 여자 생각이 나서 들어가본게 그 돌싱까페였다. 거기서 난희를 만난 것이다.



난희가 끓인 순두부찌개는 매콤하니 먹을만했다. 난희는 거실에서 회사일을 하는 모양이다. 자판두드리는 소리가 주방까지 들려온다...

마 아니겠지...미장원에서 본것도 아니고 편의점이면...설마 해수는 아니겠지....규원은 머리를 저으며 조금전 편의점 유리너머의 카운터 여자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애를 쓴다.



다음날 규원이 편의점을 지나칠 무렵, 카운터의 그녀는 등을 보인채 매대를 정리하고 있다. 뒷모습의 그녀는 좀 부한 실루엣이다. 해수는 말랐었지. 저렇지 않았어...규원은 편의점 유리문을 밀다 다시 멈칫한다. 그동안 흐른 세월이 얼만가 .나이들면 몸도 불고....그런 일련의 생각과 추측들이 그를 다시 편의점 밖으로 내몬다.



그렇게 자기 서재로 들어온 그가 간신히 숨을 고르는데 왼쪽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그는 의식을 잃는다.

그가 눈을 뜬곳은 k대병원 응급실이다. 방에 쓰러져있는 자신을 발견한 아내 난희가 119를 불렀으리라. 일단 응급처치를 받은 뒤 추가 검사를 위해 그는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심근경색이라는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에 들어갔다.

"담배 끊으셔야 돼요. 안그럼 죽어요"라며 이제 쉰이 조금 안돼보이는 시술복 차림의 담당의가 질책하듯 말을 한다. 저만치 시술실 밖에는 서성이는 난희가 보인다...


한동안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주치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번 한 뒤 그는 난희가 운전하는 차에 타서 집으로 향한다...

난희는 언제나처럼 편의점앞 도로를 지나려 한다.

"길좀..."

"응?"

"아니...꼭 이길로 가야돼?"

"새삼...맨날 다니던 길을"하며 난희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차를 골목으로 넣는다.

그때 편의점 문이 열리며 '그녀'가 나온다. 분명 해수였다. 예전보다 몸이 좀 불어나긴 했지만 분명 해수였다...

규원은 왼쪽 가슴을 움켜쥔다.

"또 아퍼?"

놀란 난희가 급정거를 하며 물어온다.

"아냐..그냥...가자 얼른" 하며 그가 재촉을 한다.


그때 해수가 이쪽으로 방향을 잡는게 보인다. 규원은 사지가 떨려온다.

해수가 뚜벅뚜벅 자신을 보며, 아니, 그렇게 느껴지는 눈길을 보내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둘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친다....모든게 끝났어. 그녀로부터 도망쳤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이런걸 천벌이라고 하는거구나....규원은 고개를 떨군다...그러나 그 순간, 그녀 해수는 그가 타고 있는 조수석 옆을 지나쳐 건너편 약국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약을 살게 있어 잠시 편의점을 나온거 같다.

"빨리 가"라며 그는 난희를 채근한다.

"당신 이상해 오늘..." 하며 난희가 차를 몬다.

난희의 차가 약국을 스치는 동시에 해수가 약을 사들고 약국에서 나온다. 규원의 온몸은 이미 땀으로 뒤범벅돼있다...



"어떻게 된거야. 미장원은"

연이틀 계속해서 해수에게 쫓기는 꿈을 꾼 뒤 규원은 둥 떠밀리듯 그 편의점으로 향했고 맞아죽어도 할수 없다는 심정으로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해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해수는 "손님 무슨 일이신데 그러세요"라며 그를 낯설어한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규원은 두어걸음 뒷걸음치고 그 순간, "여보"하고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규원을 지나쳐 카운터의 해수에게 간다.

"얼른 가서 밥 먹어"라며 남자는 해수의 유니폼을 벗겨낸다. 해수는 넋이 나간 규원을 힐끔거리며 편의점 유니폼을 벗고 "금방 올게"라며 남자와 눈을 맞추고 편의점을 나간다..



"저기요..."

규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카운터 남자에게 묻는다.

"저분 혹시 성함이..."

"와이프요? 저사람, 자기 이름도 모릅니다."

"네?"

"길거리에 쓰러져있는걸 제가 발견했어요. 기억상실이라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

규원의 몸이 휘청거린다.

"아마 심한 트라우마를 겪었을거라고 의사가 말했는데..."

규원은 얼결에 사지도 않은 담뱃값을 놓고 편의점을 뛰쳐나온다. 이상하게 여긴 해수의 남편이 "손님!"하며 따라 나오지만 규원은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있는 힘을 다해 그로부터 달아난다.


바람이 차다..

봄바람치고는 아직은 겨울을 담은 바람이다...



googl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