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당장의 생계가 막막해서
집까지 내놓은 상태지만
내가 좀 살만해지면
나는 남은 생을 봉사하며, 기부하며
살려고 한다.
이런말을 지인이나 친구들에게 하면
니 앞가림이나 해,라는 응답이 쏜살같이 돌아오지만...
몇년전부터 한달에 일정금액을 자동이체 형식으로
후원하는 단체가 있다.
그곳에서 방금 후원으로 개선된
아프리카 현지의 소식을 전한다는 톡을
보내왔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밥대신 흙을 먹던 아이들이 이제는 밥을 먹게 되었다'는
문구는 나를 짠하게 만든다.
기부나 후원금에 관한 이런저런 잡음들,
그돈이 중간에 인건비나 그밖의 행정비, 심지어는 횡령으로
남용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보낸 돈의 반이라도 아니 1/3이라도
어려운 이들을 돕는데 쓰이리라 믿기에
나는 결심한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할것이다.
친척 형부중에 s대 법대를 나온 수재가 있었다.
결국은 70에 암으로 가셨지만.
그분이 하던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나는 이 나이에도 수학만 보면 기운이 솟고 기분이 좋아져'라던.
알고보니, 그분은 낮에는 경영 컨설턴트를 하고
밤이면 야학에서 중고등 수학을 강의하였다.
와이프가 제법 살만 한 상황이라
처음에는 그 결혼도 '빤한 계산'에 의한 것이라고들 하였지만
둘이 사는 동안 한번도 돈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들리거나
재산갈등이 일어난 적이 없고
나중에 병원에서 더이상 손을 쓸수 없어 퇴원해서도
저렴한 민간요법이나 건강식품을 찾았다고 한다.
그분은 재혼이었는데 와이프의 외도로 그리 되었다고 했다.
보통 그런 경우면 아이들도 뺏고 와이프는 빈몸으로 내쫓았을텐데
집을 주고 아이들 키우라고 하고는 자신은 여동생네 문간방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조건 좋은 여자를 만났으면 당연 돈을 탐낼만도 한데
그런 부분없이 깨끗하게 살다 간 케이스였다.
말그대로 '노블레스 오블리쥬'였다 할수 있다.
내가 그와는 정반대의 돈만 탐하는 몹쓸 연애?를 당하고나니
그분이 얼마나 샤프한 사람이었는가를 느끼게 되었다.
내가 할수 있는것이라고 해봤자
약간의 외국어와 역시 약간의 글쓰기니
나중에 야학이든 어디서든 '재능기부'차원으로 강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하고 있다.
내가 비록 노블레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은 생만은 오블리쥬하게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비록 지금은 냉담의 생활을 해도
'신'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해서 좀더 나이들면
수십년 안다닌 성당도 나가고
거기 봉사활동에도 참여할 참이다.
그리 빡세게 후반에 '착한 생'을 살다보면
누가 아는가,
엄마 계신 '천국'에 가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