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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겨울 화분 물주기

by 박순영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것이 어찌보면 타인과 나의 다름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아닌가 한다.

그래도 이젠 나이를 먹어선지 대중속에 묻히고 튀지 않는 방법이나 길을 택하는 거 같다.


예로, 옷을 하나 산다해도 예전에는 내 눈에 이쁘면 주저않고 선택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게 좀 퇴지는 않나, 내 나이에 맞나,를 고민하고는 여러날 장바구니에 담아놓기만 하다가 결국엔

삭제하는일이 많아졌다.


한마디로 '크리에이티브'한 것들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 거부감같은 것인데,

이러다 내 밥줄까지 이런식으로 물들까 그게 걱정이다.



그냥 필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정부분 '창작'을 하는 직업이라면 좀 튀거나 달라보이도 뚝심있게 밀고나가는 패기, 용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며칠전에 쓴것처럼, 나는 이미 '자체 정화'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래선가 브런치 플랫폼에서도 용기무쌍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칼라를 확실히 하는 글과 작가를 눈여겨보게 된다.


문학이니 예술이 굳이 사회에 저항하고 반대편에 설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아닌것은 아니라고 용기를 낼 필요는 있다. 그리고 세상엔 다양한 패턴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존재함을 드러내고 그것들 하나하나를 관용의 눈으로 바라볼것을 요구할 정도의 권력은 갖고 있다 생각한다.


예전에 남친과 영화 '미저리'를 얘기한 적이 있다. 나에게 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대중과 문학 (예술)의 갭이며, 대중의 요구에 굴복해야 살아남는 예술가의 운명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나는 대답했다.

대중의 요구라는걸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고 , 한편 문학이니 예술의 지나친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하였다.


예술엔 정답이 없다. 늘 질문을 던지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게 나을듯 하다. 해서, 내가 잠시 주춤하고 사람들 사이에 숨으려고 할때는 그나름의 글을 쓰면 되는것이다. '대중과 크게 벌어지지 않으면서도 크리에이티브 한 글'은 무엇인가,를 좀 장황하게 쓴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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